[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지붕 없는 박물관 '군산 이야기'(5)

김병윤 기자 / 기사승인 : 2022-05-17 10:37:01
  • -
  • +
  • 인쇄
수탈의 근거지‘나가사키18은행 군산지점', 한국은행 강탈한‘조선은행', 미즈카페, 장미공연장, 장미갤러리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는 아픔과 고난의 연속이다. 그 가운데 일제강점기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다. 일제는 36년간 우리의 삼천리 금수강산을 수탈하고 농락했다. 군산은 그런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대표적인 도시다. 김병윤 대기자는 지난 100여 일 이런 아픔의 도시 군산의 이곳저곳을 돌았다. 그리고 다시 웅비하는 군산을 목도했다. 김병윤 대기자가 둘러본 ‘군산 이야기’를 ‘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 일환으로 매주 2회 독자에게 전하려 한다. [편집자 주]

 

수탈의 근거지 ‘나가사키18은행 군산지점’ 

▲ 군산근대미술관  <사진=김병윤 대기자>

 

일제강점기 수탈의 근거지였다. 상업과 무역금융, 대부업을 주로 했다. 당시 우리 쌀을 일본으로 반출하는 데 주요 역할을 했다. 토지강매에 깊숙이 관여했다. ‘나가사키18은행’은 일본인에게 돈을 대줬다. 아주 싼 이자로 돈을 빌려줬다. 일본인은 이 돈으로 조선인에게 다시 돈을 꿔줬다. 아주 비싼 이자로. 악질 고리대금업을 했다. 조건도 있었다. 토지를 담보로 요구했다. 주로 농촌 지역이었다. 원금상환을 못 하면 땅을 빼앗았다. 그리고는 우리 국민을 소작농으로 전락시켰다. 억울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우리 국민이 소유한 땅은 점차 줄어들었다. 일본인은 이렇게 농장을 확장해 나갔다. 농장에서 생산한 쌀은 일본으로 실려 나갔다. 일제의 치밀한 계산이 숨어있었다. 속과 겉이 다른 일본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18은행은 쌀 수탈을 위한 터전이었다. 본점은 일본 나가사키에 있었다. 일본의 18번째 국립은행으로 설립됐다. 18은행은 1890년 인천에 지점을 개설했다. 국내 최초의 18은행 지점이다. 한국에 총 9개의 지점을 세웠다. 군산18은행은 1907년 7번째 지점으로 문을 열었다. 18은행 군산지점 건물은 폐쇄적인 외관으로 지어졌다. 부분적으로 인조석을 사용해 장식했다. 일제강점기 초반에 지어진 은행 건축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근대미술관으로 개관해 사용되고 있다. 기증된 미술 작품과 지역 작가의전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은행을 강탈한 ‘조선은행’

▲ 군산근대건축관(구 조선은행) <사진=김병윤 대기자>

 

일제가 강탈한 은행이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와 대륙의 경제 수탈을 위해 세운 ‘중앙은행’이다. 1909년 옛 대한제국 시절에 세워진 ‘한국은행’이 모태다. 일제는 1911년 한국은행을 빼앗았다. ‘조선은행법’을 만들었다. 명칭도 ‘조선은행’으로 바뀌었다. 조선총독부 직영은행으로 운영했다. 화폐도 총독부 직영 공장에서 발행했다. 1910년 국권침탈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조선은행은 국내에 10개의 지점과 출장소를 열었다. 일제는 대륙침략을 본격화하면서 해외 지점도 늘려나갔다. 일본, 중국, 미국, 등에도 진출했다. 일제의 침략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조선은행은 일제의 대외침략을 충실히 뒷받침했다. 전형적인 제국주의 금융기관으로 활동했다.

해방 이후 조선은행은 우리 정부가 접수했다. 정부는 1950년 ‘한국은행법’을 제정했다. 한국은행이 정식 출범했다. 한국은행이 현재까지 중앙은행 역할을 맡고 있다. 조선은행 건물은 복원돼 근대건축관으로 탈바꿈했다. 근대건축 모형 및 은행관련 자료 등의 전시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미즈카페, 장미공연장
‘미즈카페’는 미즈상사로 불리었다. 1930년대에 건립되었다. 무역회사 건물로 사용됐다. 군산항이 가까운 미즈카페 자리에는 상업시설이 많았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쌀 수탈의 거점으로 사용됐다. 일본인은 이 거리에 사무실을 차렸다. 대부분이 무역회사였다. 수탈한 쌀과 물품들의 수출이 주를 이뤘다. 그들만의 정보교환이 이뤄졌다.

현재 건물은 1930년대 무역회사 흔적을 갖고 있다. 지금은 카페테리아. 근대문화 소통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2층은 다다미방으로 구성됐다. 다리를 편히 뻗을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장미공연장’은 옛 대한통운 창고였다. 아픔을 간직한 건물이다. 장미(藏米)는 ‘쌀을 보관 한다’는 뜻이다. 1930년대에 쌀을 보관했던 장소다. 수탈한 쌀을 보관했던 근대건축물이다. ‘조선미곡창 고주식회사’에서 관리했다. 당시 쌀 수탈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지붕이 매우 높다. 쌀을 보관하기 위해서다. 현재는 공연장과 전시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77석의 다목적 소극장이다.

장미갤러리
‘적산가옥(敵産家屋)’이다. 적산가옥은 적의 재산을 의미한다. 일본인은 패망과 함께 모든 재산을 한국에 남겨놓고 떠났다. 남겨진 재산은 주인이 없었다. 미군정은 일본인의 재산을 일반인에게 불하(拂下)했다. 그때 불하하지 못한 재산이 남았다. 이승만 정부가 1949년 12월 ‘귀속재산처리법’을 제정해 일본인 재산을 합법적으로 소유하게 됐다. 국가의 소유가 된 것이다. 동시에 ‘귀속재산 또는 적산가옥’이라 불렀다. 

 

이승만 정부는 미군정 때 다하지 못한 일본인의 재산을 불하했다. ‘장미갤러리’는 해방 이후 위락시설로 사용했다. 현재 1층은 문화예술 체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2층은 갤러리로조성했다. 지역 문화예술인이 창작공간으로 쓰고 있다. <계속>

 

토요경제 / 김병윤 대기자 bykim7161@hanmail.net 

[저작권자ⓒ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병윤 기자
김병윤 기자 안녕하세요. '토요경제' 김병윤 기자입니다.

기자의 인기기사

관련기사

[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지붕 없는 박물관 '군산 이야기'(2)
[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지붕 없는 박물관 '군산 이야기'(3)
[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지붕 없는 박물관 '군산 이야기'(4)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