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호 칼럼] 쿠팡은 털렸고 카카오페이는 보냈다

임종호 기자 / 기사승인 : 2026-06-12 14:3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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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킹과 제공은 다르지만, 소비자 불안은 매한가지

▲ 임종호 토요경제신문 편집국장
옛날 어느 마을에 금고를 맡아주는 부자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쌀도 맡기고, 돈도 맡기고, 집 열쇠도 맡겼다. 부자는 말했다. “나를 믿으시오. 우리 금고는 아주 튼튼하오.”


그런데 어느 날 도둑이 금고를 털었다. 부자는 억울하다고 했다. “나도 피해자요. 도둑이 나쁜 것 아니오.” 맞는 말이다. 도둑이 나쁘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물었다. “그럼 관리 책임은 무구의 몫이요.”

다른 마을에는 심부름을 잘하는 장부꾼이 있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의 거래 내역을 꼼꼼히 적었다. 누가 어디서 무엇을 샀는지, 얼마를 냈는지 다 알았다. 어느 날 장부꾼은 그 장부를 이웃 마을 상인에게 넘겼다. 그는 말했다. “더 좋은 서비스를 해주려고 그랬소.” 마을 사람들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우리한테 물어봤소?”

쿠팡과 카카오페이 개인정보 유출 논란에 만들어진 우화식 이야기다. 쿠팡은 고객정보를 해킹당했다. 카카오페이는 고객 동의 없는 정보 제공 문제로 법원 판단까지 받았다. 하나는 도둑이 든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주인 허락 없이 장부를 넘긴 사건에 가깝다.

법적으로는 다르다. 원인도 다르다. 책임 구조도 다르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결론이 비슷하다. 내 정보가 밖으로 나갔다. 내가 충분히 알지 못한 채 내 정보가 움직였다. 그래서 불안하다.

쿠팡은 한국인의 장바구니를 안다. 무엇을 샀는지, 언제 샀는지, 어디로 보냈는지 안다. 쌀, 생수, 기저귀, 약, 책, 전자제품까지 다 안다. 장바구니는 그냥 소비 기록이 아니다. 생활기록부다. 가족 구성도 보이고, 소비 수준도 보이고, 때로는 건강 상태까지 짐작된다.

카카오페이는 돈의 길목에 있다. 어디서 결제했는지, 얼마나 썼는지, 어떤 소비 패턴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 금융정보는 더 민감하다. 결제는 취향이 아니라 습관이고, 습관은 곧 신용과 연결된다.

그래서 이번 사안을 단순히 과징금 뉴스로만 보면 안 된다. 쿠팡 과징금이 얼마냐, 카카오페이 과징금이 얼마냐를 따지는 순간 본질이 흐려진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플랫폼 기업은 고객정보를 누구의 물건으로 보고 있는가.

기업들은 늘 말한다. 고객 편의를 위해서라고 한다. 서비스 고도화를 위해서라고 한다.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고객이 빠진다는 점이다.

고객은 앱을 설치했지, 자신의 생활기록을 백지위임한 것이 아니다. 결제 버튼을 눌렀지, 개인정보 해외출장 동의서를 쓴 것이 아니다. 로켓배송을 신청했지, 내 정보까지 로켓처럼 날아가라고 한 적은 없다.

플랫폼 기업들은 데이터를 먹고 큰다. 유통 플랫폼은 장바구니를 먹고 크고, 금융 플랫폼은 결제정보를 먹고 큰다. 여기까지는 시대의 흐름이다. 그러나 많이 먹는 회사라면 소화도 잘해야 한다. 데이터는 잔뜩 삼키면서 보안은 허술하고, 설명은 어렵고, 책임은 약관 뒤에 숨는다면 소비자는 납득하기 어렵다.

요즘 기업 약관은 현대문학보다 어렵다. 소비자는 읽다가 포기한다. 그리고 “동의합니다”를 누른다. 이것을 기업은 동의라고 부른다. 소비자는 그냥 빨리 결제하고 싶었을 뿐이다. 동의와 체념은 다르다.

해킹은 범죄다. 하지만 큰 플랫폼은 “우리도 피해자”라는 말만으로 끝낼 수 없다. 고객정보를 모아 사업을 키웠다면, 그 정보를 지킬 책임도 커진다. 금고업자가 금고 털렸다고 억울함만 말하면 장사가 어렵다.

정보 제공도 마찬가지다. 좋은 서비스를 위한 목적이었다고 해도 고객이 제대로 알지 못했다면 문제다. 내 장부를 남에게 넘기면서 “당신에게 결국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친절이 아니다. 오지랖이다.

쿠팡과 카카오페이 사건은 한국 플랫폼 산업에 같은 질문을 던진다. 고객정보를 맡길 자격이 있는가. 많이 모을 능력은 이미 증명했다. 이제는 잘 지킬 능력, 제대로 설명할 능력, 사고가 나면 책임질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개인정보는 회사 자산이 아니다. 고객이 잠시 맡긴 물건이다. 맡긴 물건을 잃어버려도 문제고, 주인 허락 없이 남에게 줘도 문제다. 둘 중 무엇이 더 나쁘냐를 따지는 건 별 의미가 없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둘 다 기분 나쁘다.

기업들은 이제 고객에게 쉽게 말해야 한다. 어떤 정보를 모으는지, 왜 쓰는지, 누구에게 주는지, 언제 지우는지 알려야 한다. 고객이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사고가 나면 피해를 설명하고 책임져야 한다.

금고를 맡겼더니 도둑이 들었다. 장부를 맡겼더니 남에게 갔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은 다음부터 묻는다. “이 사람에게 계속 맡겨도 되나.”

쿠팡과 카카오페이가 답해야 할 질문도 같다. 빠른 배송과 간편결제만으로는 부족하다. 고객정보를 안전하게 다루는 회사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편리함은 중요하다. 그러나 내 정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편리함은 위험하다. 그건 서비스가 아니라 복불복이다.

 

토요경제 / 임종호 기자 yimjongho196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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