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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종호 토요경제신문 편집국장 |
그러나 환호는 오래가지 않았다. 23일 코스피와 코스닥에는 매도 사이드카가 잇따라 발동됐다. 사이드카는 선물 가격이 급변할 때 프로그램 매매 호가 효력을 5분간 멈추는 시장 안정 장치다. 시장이 너무 빠르게 한쪽으로 쏠릴 때 잠시 브레이크를 거는 제도다. 하루 전 사상 최고치를 외치던 시장이 하루 뒤 제도적 브레이크에 걸린 것이다.
문제는 지수의 높이가 아니다. 문제는 시장의 두께다. 코스피가 9천을 넘었다고 해서 한국 자본시장이 곧바로 강한 시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특정 업종, 특정 종목, 특정 수급에 기대 오른 시장은 빠르게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그만큼 빠르게 흔들릴 수 있다. 반도체가 오르면 시장 전체가 환호하고, 반도체가 흔들리면 시장 전체가 멈춰서는 구조라면 그것은 넓은 시장이 아니다. 좁은 시장이다.
증시의 체력은 상승장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하락장에서 드러난다. 주가가 오를 때는 모두가 낙관한다. 그러나 매물이 쏟아질 때도 가격이 질서 있게 움직이는가. 정보가 공정하게 퍼지는가. 개인투자자가 숫자에 끌려 뒤늦게 뛰어들지 않도록 시장이 위험을 충분히 알리는가. 이것이 선진시장의 조건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1만피 구호가 아니다. 더 단단한 질서다. 기업은 주가 상승을 홍보자료로만 써서는 안 된다. 실적, 현금흐름, 배당, 자사주, 지배구조를 숫자로 설명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지수 상승을 성과처럼 말하기 전에 쏠림과 과열을 점검해야 한다. 거래소는 반복되는 사이드카가 시장에 주는 신호를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증권사는 레버리지와 테마성 상품의 위험을 더 분명히 알려야 한다.
투자자도 냉정해야 한다. 9천피라는 숫자는 그 자체로 투자 이유가 될 수 없다. 시가총액 1위 교체도 마찬가지다. 주식시장은 순위표가 아니다. 돈이 들어간 기업이 실제로 돈을 버는지, 이익이 현금으로 남는지, 주주에게 돌아오는 몫이 있는지를 봐야 한다. 지수가 오른다는 말과 내 계좌가 안전하다는 말은 다르다.
한국 증시가 여기까지 온 것은 의미가 있다. 반도체 경쟁력, 글로벌 자금 유입, 기업가치 제고 기대가 맞물린 결과다. 그러나 높이 오른 시장일수록 낮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상승은 실적인가, 유동성인가. 랠리는 넓은가, 좁은가. 투자자는 정보를 보고 움직이는가, 숫자에 끌려가는가.
코스피 9천은 끝이 아니다. 시험의 시작이다. 시장은 이제 축하받을 차례가 아니라 증명할 차례다. 1만피를 말하기 전에 9천피를 견딜 체력부터 보여줘야 한다. 한국 증시가 진짜 커졌는지는 최고점에서가 아니라 흔들릴 때 판가름난다.
토요경제 / 임종호 기자 yimjongho196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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