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소가치 18% 절하...환율 달러당 287페소서 350페소 급등
|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이 14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21%포인트 인상했다. 이날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에서 여성 한명이 100달러짜리 지폐 모양이 그려진 벽화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제공> |
정부가 하룻밤 새 기준금리를 21%포인트 올리고, 페소가치를 18.0%절하하는 파격적인 정책을 내놨다. 경제파국으로 치닫는 남미의 아르헨티니의 얘기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로 인해 최악의 경제난에 빠진 아르헨티나가 초강경 긴축 정책을 발표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물가랠리를 어떤식으로든 잡아보겠다는 특단의 조치다.
기준금리를 0.75%포인트만 올려도 '자이언트스텝'이라 불리며 시장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지는 선진국에선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 남미 아르헨티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BCRA)은 14일(현지시간) "오늘 이사회에서 기준 금리를 21%포인트 인상할 것을 의결했다"며 "이에 따라 기준금리가 종전 97.00%에서 118.00%로 올랐다"고 발표했다.
■ 예비선거 패배로 인한 정부와 여당의 위기의식 반영
지난 6월15일 기준금리를 97%로 인상한 후 꼭 두 달만의 파격적인 인상이다. 아르헨티나가 1980∼1990년대 경제 대위기를 거친 후 2000년대 들어 기준금리가 세자릿수를 넘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르헨티나의 기준금리는 2002년 4월30일(91.19%)과 지난 6월(97.00%)에 100%에 육박한 적은 있지만, 100%를 넘기지 못했다.
| ▲ 하루 만에 22.45%나 평가절하된 환율이나 21%나 인상된 기준금리 소식에 아르헨티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상점들은 기습적으로 상품가격을 인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연합뉴스> |
특히 한 번에 21%포인트에 달하는 인상폭 역시 2002년 6월30일 44.74%에서 7월31일 67.60%로 22% 포인트 넘게 올린 이후 21년 만에 두 번째 높은 수치다.
현지 영문 신문 부에노스아이레스타임스는 이날 정부가 페소 가치를 18%절하했다고 밝혔다. 아르헨티나 공식 환율이 달러 당 287페소에서 350페소로 22% 급등한 것이다.
하지만, 비공식 환율은 공식환율의 두 배인 700페소에 거래되고 있어 정부가 ‘패닉버튼’을 눌렀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BCRA는 이번 조처가 환율 기대치 고정, 외환 보유 압박 완화, 아르헨티나 페소 통화 투자에 대한 긍정적인 수익 등을 목표로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선 물가상승률이 전년 동기 대비 세 자릿수까지 폭등, 아르헨티나 국민의 약 40% 가량이 빈곤층으로 전락했다는 보고서가 나오는 등 고물가로 인한 경제위기로 재집권의 위기에 몰린 현 정권의 마지막 초강수로 해석하고 있다.
오는 10월 대선을 앞둔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정부와 여당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를 잡고, 정치적 변동성을 가중시키는 보유 외환의 고갈 사태를 해소, 집권을 연장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란 얘기다.
10월 대선의 전초전 성격으로 전날 치러진 예비선거 결과가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앙은행의 폐쇄'를 주장하는 극우 성향의 하비에르 밀레이 하원 의원은 이번 예비선거에서 예상을 깨고 깜짝 1위를 차지했다. 정부와 여당의 경제파탄에 대한 불만이 일시적으로 표심을 움직인 것이다.
10월 본선에서 재집권에 사활을 걸고 있는 여당으로선 물가와의 전쟁에서 실패하면 정권을 내줄 수도 있는 불안감을 증폭, 고물가를 잡기위한 파격책으로 이어진 것이란 분석이다.
게다가 페르난데스의 바통을 이을 여당의 차기 대선후보는 세르히오 마사 현 경제 장관이다. 아르헨티나 경제가 이대로 몰락한다면 1차 책임은 경제장관에 집중될 것이고, 민심이 정부여당으로부터 등을 돌릴 것이 불보듯 뻔하다.
| ▲ 천정부지 물가의 아르헨티나 국민 10명중 4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했다고 분석이 나온다. 사진은 부에노스아이레스 마트 모습. <사진=연합뉴스> |
그러나 정부와 여당이 치솟는 물가를 잡고 재집권이란 목표를 달성할 지는 회의적이란 시각이 팽배하다. 정권의 사활을 건 파격적 긴축정책애도 불구, 1년 이상 이어져온 고물가 랠리가 멈출 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현재 아르헨티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6월 기준 115%를 넘어서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는 지난 6월에도 대폭적인 기준금리를 인상한 바 있으나 약발이 먹히지 않은 것이다.
외환보유고도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다. 국제통화기금(IMF) 부채 등을 고려할 때 아르헨티나의 외환보유액은 사실상 마이너스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극심한 가뭄 등 이상 기온으로 농산물 작황 부진까지 겹치며 농식품가격이 치솟고 있다.
이에 따라 세자릿수를 돌파한 물가상승곡선이 아직은 둔화될 기미가 없다. AFP통신은 최근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필두로한 수도권 기준 생활비가 올들어 연초 대비 31% 치솟았다고 보도했다.
중앙은행인 BCRA가 이번 긴축 정책 평가를 위해 전반적인 물가 수준과 금융·환율 시장 변동성을 지속해서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시장은 따로 움직이고 있다.
정부가 10월 대선까지 페소달러 환율을 350페소로 고정하겠다고 천명했지만, 시장은 이를 무시하고 700페소 전후에서 거래되고 있다.
특히 시장 개장 시간 전에 발표된 페소화 평가절하 소식으로 일부 상점은 재빠르게 상품 가격을 올리기 시작했다. 수입품을 판매하는 상점들은 최소 25% 이상 가격을 기습 인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토요경제 / 김태관 기자 8timem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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