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의 바다는 303.8ha다.
숫자로 쓰면 단 한 줄이다. 행정의 언어로는 공동어장의 면적이고, 지도 위에서는 하나의 구역이다. 그러나 해녀에게 그 바다는 그렇게 납작하지 않다. 물때와 조류, 바람의 방향, 바당밭의 위치, 계절마다 달라지는 해조류의 색과 결까지, 바다는 몸으로 익히는 세계다.
유용예 작가의 전시 '두 번째 살갗, 303.8ha'는 바로 그 간극에서 시작된다. 숫자로 측정되는 바다와 살갗으로 기억되는 바다. 같은 바다를 가리키지만, 두 언어는 서로 완전히 포개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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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가에서 해녀로, 다시 바다의 기록자로 자신의 작업을 확장해온 유용예 작가. [유용예 작가 페이스북] |
유용예는 사진가다. 동시에 해녀이고, 가파도 어촌계장이다. 처음부터 바다의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제주 남쪽 섬 가파도로 이주했고, 처음에는 해녀들을 바라보는 사진가였다. 바다의 가장자리에서 카메라를 들고 그들의 얼굴과 노동을 기록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는 보는 사람에 머물지 않았다. 직접 물질을 배웠고, 숨을 참고 바다에 들어갔고, 뿔소라 한 마리를 손에 쥐기 위해 몸이 어디까지 버텨야 하는지 알게 됐다.
그때부터 해녀들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바다는 피사체가 아니라 삶의 장소가 되었고, 기록은 관찰이 아니라 증언이 되었다.
작가가 기록하는 것은 단지 해녀의 노동만이 아니다. 그가 오래 바라본 것은 바다의 변화다. 과거 풍성했던 해조류가 사라지고, 바당밭의 풍경이 달라지고, 해녀들의 몸이 기억하던 바다가 예전과 같지 않아지는 일이다. 기후위기는 보통 평균기온, 해수면, 탄소 배출량 같은 숫자로 말해진다. 그러나 유용예의 작업에서 기후위기는 먼저 피부로 온다. 물의 온도가 달라지고, 예년에 있던 해조류가 보이지 않고, 몸이 알고 있던 길이 낯설어진다.
그래서 전시 제목의 ‘두 번째 살갗’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해녀에게 바다는 몸 바깥에 있는 풍경이 아니라, 매일 통과하고 부딪히는 또 하나의 피부다. 차가움, 짠기, 압력, 숨의 길이, 물속에서 느끼는 미세한 변화가 그 살갗에 새겨진다. 작가는 그 감각을 사진과 영상, 설치와 표본, 지도와 증언으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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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용예 해녀. [유용예] |
특히 ‘해녀여지도’ 작업은 유용예의 기록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일반 지도는 바다를 위에서 내려다본다. 그러나 해녀의 지도는 몸이 지나간 길에서 만들어진다. 어느 바당밭에 무엇이 있었는지, 어느 물길이 어떻게 흐르는지, 어떤 이름으로 불러왔는지, 그 지식은 문서보다 몸에 먼저 저장된다. 유용예는 해녀들의 기억과 언어를 따라 가파도의 바다를 다시 그린다. 그것은 사라져가는 공동체의 지식이자, 바다를 살아온 사람들의 감각적 지리다.
해조류 표본 작업도 마찬가지다. 표본은 단순한 수집이 아니다.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그 모습을 가능한 한 온전하게 붙잡으려는 행위다. 톳과 미역, 감태와 모자반 같은 이름들은 식물도감 속 항목이 아니라 해녀의 삶과 연결된 존재들이다. 바다의 생태가 무너지면 해녀의 노동도, 마을의 시간도 함께 달라진다. 유용예가 해조류의 형태를 기록하는 일은 생태계의 변화를 눈앞에 가져다 놓는 방식이자, 사라지는 바다를 향한 조용한 애도다.
그의 삶이 감동적인 이유는 예술과 생활이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작업실과 사진관을 열고, 섬을 찾아온 사람들과 만나고, 물질이 있는 날에는 바다로 나간다. 연구팀과 함께 바다를 살피고, 해녀들과 함께 공동체의 일을 나누며, 다시 사진과 기록으로 돌아온다. 예술은 전시장 안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유용예에게 예술은 바다에 들어가는 일, 사라지는 것을 알아차리는 일, 그것을 누군가에게 전하기 위해 다시 기록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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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용예 개인전 '두 번째 살갗, 303.8ha' 설치 현장. 바다에서 온 해녀의 몸과 기억, 사라져가는 해양 생태의 기록이 공간 풀숲 전시장에 자리 잡고 있다. [유용예 작가 페이스북] |
그래서 '두 번째 살갗, 303.8ha'는 바다를 재현하는 전시가 아니다. 바다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삶의 언어로 말하는 전시다. 통계가 설명하지 못하는 온도, 숫자가 담지 못하는 노동,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기억을 불러내는 자리다.
가파도 바다는 303.8ha다.
그러나 유용예에게 그 바다는 면적이 아니라 숨의 길이이고, 물살의 방향이고, 사라진 해조류의 자리이며, 해녀들이 몸으로 익힌 이름들이다. 그는 그 바다를 찍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그 바다 안으로 들어갔고, 그 안에서 살아왔고, 이제 그 변화를 기록하고 있다.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기록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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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진옥 해녀. [유용예] |
우리는 사라지는 것을 언제 알아차리는가.
몸이 먼저 알고 있는 변화를, 사회는 언제 들을 수 있는가.
'두 번째 살갗, 303.8ha'는 공간 풀숲에서 7월 31일까지 열린다. 전시는 유용예 작가가 직접 경험하고 기록한 가파도 바다 생태계의 변화를 사진, 영상, 설치 작업으로 선보인다.
‘303.8ha’는 가파도 마을 공동어장의 면적이며, 전시는 해녀들의 초상과 증언, 몸의 기억으로 그려낸 '해녀여지도', 사라져가는 바다를 기록한 작업들을 통해 기후위기를 통계가 아닌 감각과 삶의 언어로 마주하게 한다. 작가와의 만남은 7월 25일 오후 4시 공간 풀숲에서 열린다.
토요경제 / 마리아김 문화전문기자 kimjjyy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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