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문화산책] 사라지기 전에, 그곳을 본다는 것

마리아김 / 기사승인 : 2026-07-21 20: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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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다큐멘터리 사진 페스티벌 '그곳, 남겨진 이야기'

한 사진가의 시선이 제도 개선의 물꼬를 튼 적이 있다.

20세기 초 미국의 사진가 루이스 하인은 공장과 탄광,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아이들을 찾아다녔다. 기계 옆에 선 작은 몸, 피곤한 얼굴로 하루를 견디던 아이들, 어른의 세계에 너무 일찍 내몰린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사진들은 가난을 구경거리로 만든 이미지가 아니었다. 보이지 않던 현실을 사회 앞에 세우려는 책임 있는 기록이었다.

하인은 1908년부터 미국아동노동위원회(National Child Labor Committee·NCLC)의 조사 사진가로 활동하며 공장과 광산, 농장과 거리에서 일하는 아이들의 현실을 기록했다. 그의 사진은 대중의 양심을 흔들었고, 아동노동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구체적인 증거를 보탰다. 그 흐름 속에서 1916년 미국 의회는 키팅-오언 아동노동법을 통과시켰다. 아동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의 주간 거래를 금지하고, 일정 연령 이하 아동의 노동과 장시간 노동을 제한하려 한 미국 최초의 연방 차원 아동노동 규제 법안이었다.

물론 사진 한 장이 세상을 단번에 바꾸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법도 이후 연방대법원에서 위헌 판단을 받았다. 그러나 하인의 사진이 남긴 힘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진은 보이지 않던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문제로 만들었고, 이후 아동노동을 둘러싼 제도적 논의와 개혁의 토대가 됐다. 끝까지 바라보려는 눈, 외면하지 않겠다는 시선이 현실을 움직일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단지 사건을 찍는 일이 아니다. 사라질지 모르는 장소, 말할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 지워질 위기에 놓인 기억 앞에 머무는 일이다. 카메라는 누군가를 대신해 말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보지 않았던 곳을 다시 보게 만들고, 이미 지나갔다고 믿은 시간이 아직 우리 곁에 남아 있음을 깨닫게 한다.

제3회 다큐멘터리 사진 페스티벌 '그곳, 남겨진 이야기'는 그런 시선들이 모인 전시다. 박종면, 변성진, 이동근, 이재갑, 장영진 다섯 작가는 저마다 다른 장소를 향해 카메라를 든다. 그러나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사라지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그곳에 남겨진 이야기는 누가 기억할 것인가.

이 전시에서 중요한 것은 장소성이다. 여기서 장소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누군가의 삶이 남아 있고, 제도가 지나갔고, 폭력이 감춰졌고, 개발의 이름으로 곧 사라질지도 모르는 자리다. 다섯 작가가 바라보는 ‘그곳’은 각기 다르지만, 그들이 카메라를 드는 태도는 닮아 있다. 사라지는 풍경을 아쉬워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곳에 새겨진 사람과 역사, 침묵과 상처를 다시 보게 한다.
 

▲ 박종면, 〈동두천시 성병관리소2〉. 작가는 철거 위기에 놓인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를 통해 기지촌 여성들의 인권 유린과 국가 폭력의 기억을 되짚는다. [스페이스22]

 

박종면의 카메라는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앞에 선다. 한국전쟁 이후 국가 주도로 주한미군을 상대해야 했던 기지촌 여성들, 이른바 ‘미군 위안부’의 역사가 남아 있는 장소다. 그곳은 단지 오래된 건물이 아니다. 강제 성병 검사와 인권 유린의 기억이 남아 있는 국가 폭력의 현장이다. 철거 위기에 놓인 건물 앞에서 그의 사진은 묻는다. 건물이 사라지면, 그 안에 남아 있던 고통의 기록도 함께 희미해지는가.

 

▲ 변성진, 〈1997 성남모란시장〉. 스물세 살 사진가의 시선은 성남 모란시장의 거친 풍경 속에서 삶의 방어 본능과 온기를 포착한다. [스페이스22]

 

변성진의 '1997 모란시장'은 삶의 날것을 향한다. 스물세 살 젊은 사진가가 카메라 하나를 들고 들어간 성남 모란시장은 정돈된 풍경이 아니었다. 낯선 카메라를 향한 거친 몸짓, 생존을 위해 먼저 반응하는 몸, 그 안에 숨어 있는 방어 본능과 온기. 그의 사진은 시장을 이국적인 풍경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을 지키고, 버티고, 하루를 이어가는지를 보여준다.
▲ 이동근, 〈낡은 집-요새 사령부로부터〉. 신공항 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부산 가덕도 외양포 마을의 낡은 집은 군사적 통제와 주민의 삶, 개발의 압력이 겹쳐진 장소로 남아 있다. [스페이스22]

 

이동근은 부산 가덕도 외양포 마을을 기록한다. 신공항 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이 마을은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요새를 구축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외부인의 접근이 막혔던 탓에 자연은 보존됐고, 일본군 병사들이 쓰던 건물에는 광복 이후 주민들의 삶이 켜켜이 쌓였다. 그의 사진 속 낡은 집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다. 군사적 통제와 자연의 시간, 주민의 생활과 개발의 압력이 한곳에 겹쳐진 장소다.

▲ 이재갑, 〈10월항쟁 80주년 발굴〉. 작가는 대구 10월항쟁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의 역사를 따라가며, 뒤늦게 이뤄지는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시간을 기록한다. [스페이스22]

 

이재갑의 작업은 대구 10월항쟁과 민간인 희생의 역사로 향한다. 해방 이후 최초의 민중항쟁으로 불리는 대구 10월항쟁, 그리고 한국전쟁 전후 가창골과 경산 코발트 광산 등지에서 벌어진 적법 절차 없는 처형의 기록은 아직도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그의 사진은 비극을 거대한 구호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현장과 위령의 공간을 통해, 뒤늦게 이름을 되찾고 있는 사람들의 시간을 조용히 불러낸다.

▲ 장영진, 〈자매공판장 #002〉. 작가는 광주대단지 사건의 기억을 품은 논골마을에서 재개발을 앞둔 장소와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을 기록한다. [스페이스22]

 

장영진은 논골마을을 바라본다.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배경이자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의 기억을 품은 그곳은 이제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마을을 사라질 풍경으로만 찍지 않는다. 그곳에서 살아온 어르신들의 얼굴, 가게 앞에 앉은 사람들, 이웃과 온기를 나누며 버텨온 삶의 결을 바라본다. 개발의 언어가 땅의 가격을 말할 때, 사진은 그 땅에 기대어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을 말한다.

이 전시의 신선함은 고발만을 앞세우지 않는 데 있다. 물론 사진 속에는 분명한 사회적 메시지가 있다. 국가 폭력, 개발, 전쟁 이후의 상처, 시장의 생존, 사라질 공동체의 문제가 놓여 있다. 그러나 작가들은 그것을 구호처럼 밀어붙이지 않는다. 조용히 바라본다. 그 시선은 차갑지 않다. 장소와 사람을 대상화하지 않고, 그 앞에 머무는 방식으로 관객을 불러 세운다.

그래서 '그곳, 남겨진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낸다. 사진은 증거인가, 예술인가. 기록인가, 해석인가. 이 전시는 그 둘을 나누지 않는다. 사진은 증거이면서 예술일 수 있고, 기록이면서 감각의 언어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카메라가 무엇을 향했는가가 아니라, 그 시선이 어떤 책임감으로 그곳에 머물렀는가이다.

기억해야 할 역사는 늘 기념비로만 남지 않는다. 때로는 허물어질 건물에, 오래된 시장의 몸짓에, 개발을 앞둔 마을의 벤치에, 이름을 되찾지 못한 사람들의 위령 공간에 남아 있다. 다섯 작가는 바로 그곳을 본다. 사라질지 모르는 장소를 향해 카메라를 들고, 아직 충분히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를 이미지로 남긴다.

사진의 가장 중요한 일은 아름다운 장면을 만드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보지 않으려 했던 곳을 다시 보게 하는 일, 지나간 줄 알았던 시간이 아직 현재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일, 한 장소가 사라지기 전에 그곳에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를 조용히 붙잡는 일도 사진의 몫이다.

제3회 다큐멘터리 사진 페스티벌 '그곳, 남겨진 이야기'는 2026년 7월 24~8월 14일까지 서울 강남구 스페이스22에서 열린다. 박종면·변성진·이동근·이재갑·장영진 작가가 참여한다.

 

토요경제 / 마리아김 문화전문기자 kimjjyy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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