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돈과 권력의 전당’

전성운 / 기사승인 : 2012-06-29 15: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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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층, 백인, 남성’ 우월주의를 대변

“만약 하버드가 개교 300주년을 기념해 학교를 완전히 불태워 버리고 그 자리에 소금을 뿌려 다시는 하버드 대학이 생기지 못하게 한다면 그 기념식은 나에게 가장 강렬한 만족을 줄 것이다.” - 조지 버나드 쇼


하버드는 “돈과 권력에 오염되지 않고 오롯이 ‘진리’를 추구하는 순수한 학문의 전당이며, 무엇보다 진보적인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란 세간의 평가를 받지만 사실 “진리보다는 돈과 권력을 좇느라 여념이 없다”는 표현이 더 적당하다.


1636년 신대륙으로 이주한 앵글로색슨계 개신교 목사 양성에 뜻을 두고 세워진 하버드는 오랫동안 ‘상류층’, ‘백인’, ‘남성’을 위한 교육기관이었다. 사실 이것이 하버드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말해 주는, 세 개의 핵심 키워드다.


하버드에 유색인종인 흑인이 처음 입학한 건 1865년. 1865년 수정헌법 13조가 비준되어 노예 해방이 본격적으로 실현되면서였다. 하버드는 이미지 관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흑인 학생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흑인에 대한 학내 차별은 여전했다. “흑인과 백인을 함께 거주시킬 수 없다”는 당시 총장 로웰의 확고한 신념 덕분에 흑인 학생들은 캠퍼스 안 기숙사에는 입주할 수 없었고 이런 하버드의 인종주의는 인류사에 큰 상처를 남긴 우생학으로 이어진다.


수많은 하버드의 학자가 인종 간의 차이와 백인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데 학문적 열정을 쏟았고, 이런 과정을 거쳐 탄탄해진 우생학은 독일에, 특히 히틀러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결국 하버드의 인종주의가 유대인 학살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준 셈이다.


유색인종만큼 하버드 진입이 어려웠던 이들이 바로 여성이다. 배움을 갈망하는 여성들의 끊임없는 요구에도 하버드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토록 남성주의에 젖어 있던 하버드도 여성을 받아들이라는 결국 시대의 물결 앞에서는 거역할 수 없었다.


하버드를 민주주의의 수원지로 여기는 이도 있지만 사실 하버드는 폐쇄적이고 비민주적으로 운영된다. 교수와 직원만 2만 여 명을 둔 보스턴 인근에서 두 번째로 큰 ‘기업’인 하버드를 움직이는 것은 고작 13명(최근까지만 해도 7명)으로 구성된 하버드 법인이다. 법인 이사들은 한번 뽑히면 계속 유임할 수 있고, 회의 내용과 결과를 공개할 의무조차 없다.


하버드를 움직이는 ‘법인 이사’들은 과연 누구일까. 이들은 거대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업의 중역들로 특히 초창기 하버드의 큰 자금줄이었던 J. P. 모건과 록펠러 가문 출신이거나 이들과 연결된 자들이 대부분이다.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법인 이사인 로버트 루빈은 골드만삭스 회장, 클린턴 정부 재무장관을 거쳐 록펠러 제국의 기반인 시티그룹 회장을 지냈다. 결국 법인 이사들은 자신의 계급과 자신이 속한 기업의 이익을 위해 하버드를 운영해온 셈이다.


<하버드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의 저자 존 트럼보우 박사는 하버드를 “미 지배계급을 위한 봉사기관”이라고 잘라 말한다. 하버드 출신들은 외교협회(CFR)와 삼각위원회, ‘현재의 위험위원회(CPD)’와 같은 민간외교압력단체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 조직들은 사무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를 정도로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미국 외교정책뿐만 아니라 세계질서 밑그림이 이곳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란의 인권을 거론했다가 이들의 심기를 건드려 재선에 실패한 카터의 예처럼, 자신들의 계획에 걸리적 거리는 사람은 가차 없이 버릴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다. 신은정 저, 1만8000원, 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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