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버이 삼을 지도자를 찾아라

정해용 / 기사승인 : 2010-05-24 09: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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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더운 날씨가 종잡을 수 없게 오락가락했으나, 때는 어김없이 여름으로 접어든다. 잠시도 멈추지 않는 시간의 흐름에 이처럼 엄정한 계절의 질서가 있다는 건 백번 생각해봐도 다행한 일이다. 만일 계절이 이런 사정 저런 사정을 감안하여 갈팡질팡한다면 땅 위에 있는 생명체들은 어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늘이 不仁하다는 말도 어쩌면 이처럼 매정하리만치 법칙에 충실한 시간의 속성을 말하는 것일지 모른다.
5월의 마지막 햇살 아래 어미 오리들은 어느새 부화했는지 여남은 마리의 새끼들을 이끌고 물가를 뒤진다. 어미만 있으면 아무 것도 두려울 게 없는 새끼들은 신바람이 났다. 물살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다가 다시 발버둥쳐 오르면서 어미를 따라 물속을 뒤진다. 그러다가 낯선 새의 기척이라도 느꼈어봐라. 어미 새는 제 힘이 미치든 못 미치든 온 꾀를 다하여 새끼들을 숨기려 하고 또 온 힘을 다하여 맞서 싸울 채비를 하는 것이다.
동물의 세계 다큐에는 낯선 수사자들에게 둘러싸인 암사자의 얘기도 있다. 세 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암컷은 수컷들을 협박하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는 몸짓을 보이면서 새끼들을 안전하게 빼돌리려고 조바심친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새끼들은 낯선 어른 사자들에게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간간이 으르렁거리면서 제법 대들기라도 할 것처럼 앙탈을 부린다. 제 어미만 곁에 있으면 두려울 게 없는 새끼들의 믿음이다.
옛 사람들이 君師父一體라는 말을 썼을 때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어미 새가 새끼를 보호하듯, 감싸고 이끄는 지도자를 꿈꿨을 것이며, 어린 병아리가 어미를 믿고 따르듯 지도자를 의지하고 그 위세를 믿는 백성을 연상했을 것이다.
지자체의 대표들을 뽑는 전국 일제 선거가 눈앞이다. 저마다 지역 일꾼을 자처하고 뽑아주기만 하면 지역민을 위해 분골쇄신할 것처럼 목청을 높인다. 그러나 그 말이 얼마나 진실일까를 지역민들은 여간해서 믿지 못한다. 여태껏 대표에 선출된 사람들이 한 일을 보면, 물론 지역발전을 위해 정성을 다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지역대표로서의 초심을 지키지 못하고 자기 고집대로 가다가 지역 살림을 허비하기도 하고 지역발전보다는 자기 개인과 친지들의 이익을 위해 지역의 일을 그르치는 일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이권에 개입해 뇌물을 챙기고 공정하지 못한 행정 처리로 원성을 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수사를 받게 되자 위조여권을 들고 공항으로 달아난 단체장의 사례는 잘못 뽑은 선거결과가 어디까지 한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를 보여준 단적인 예다.
지역을 대표하는 시장 군수 지사는 옛날식으로 말하자면 지역의 수령, 즉 우두머리다. 지금이야 지역민들이 제 손으로 대표를 직접 뽑는 지방자치시대가 되어 지역 대표에게 수령이라든지 군사부일체라는 개념을 들이대기가 좀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자기 손으로 뽑는다 해도 지역 대표에게 단지 ‘머슴’의 역할만을 기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점은 대통령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지역을 대표하는 단체장, 국회의원, 대통령과 같은 사람을 ‘지도자’라 부르는 것은, 그들이 비록 옛날식 군주나 수령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에 못지않은 지도자로서의 책임과 지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 군주나 수령은 반드시 덕이 아니라 위압적인 힘이나 그보다 상위 권력의 비호에 의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도 많았다. 부패한 수령을 만나면 속이 터지고, 포악한 군주를 만나면 억울해 미칠 지경이 되더라도 그저 하늘이 심판해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행여 반발이라도 하면 반역자가 되어 오히려 죄인이 되니 하늘을 원망하는 수밖에 또 무슨 수가 있었을까. 그에 비하면 오늘날은 단체장의 임기가 한정되어 있는데다 새로운 지도자를 뽑을 때도 지역민 스스로가 신사적인 투표권을 통해 당당히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가 보장되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옛날을 어두운 시대였다고 한다면 이제는 대명천지라 비교해 말해도 좋을 것이다.
헌데, 민의를 거슬러 문제가 된 단체장들도 애당초 지역민들이 스스로 뽑았다라는 점을 냉정히 돌아보아야 한다. 투표권을 포기하거나, 어느 누가 진정 지역민을 제 식구 돌보듯 감싸며 책임을 다해 지킬 것인가 판단하기를 게을리 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지역살림 나라살림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에 불과한 투표의 권리조차 포기하고서야 지역살림 나라살림이 어디로 가든 무슨 염치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있을까. 지역의 대표, 지도자를 뽑는 선거에 지역민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이렇듯 엄연하다. [상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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