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용병이 된 과학자들

전성운 / 기사승인 : 2012-02-06 11: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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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을 팝니다> 출간

지난 2009년,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의 보고서가 조작되었다”는 ‘기후 게이트’ 사건이 있었다. 지구 온난화 부정론자들은 이를 근거로 “기후 과학은 날조이며 음모라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내놓았다.


상당수의 언론이 이를 대서특필 했고, 대중들에겐 ”인간에 의한 기후 변화는 과학계에서 여전히 논쟁 중인 사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지구 온난화는 과학적 사실이며, 그것은 인간의 활동에 의한 것이다”라고 결론 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 문제가 과학적으로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고 과학계에서 여전히 논쟁 중인 이슈로 여기고 있는 것일까?


‘합리적 의심’으로 불리는 과학의 탈을 쓴 회의주의의 번성은 지구 온난화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담배와 폐암의 관계, 산성비, 남극 상공의 구멍난 오존층, 살충제 남용의 문제 등 20세기 후반의 주요한 환경적, 사회적 이슈들에서 등장한 회의론은 모두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책 <의혹을 팝니다>의 저자 나오미 오레스케스와 에릭 콘웨이는 “오늘날 지구 온난화 논쟁에서 쓰이는 수법은 과거 담배 논쟁에서 쓰였던 것과 동일할 뿐만 아니라 기업의 용병 역할을 하는 과학자들 역시 동일한 인물”임을 밝혀냈다.


이는 1950년대에 흡연과 폐암의 관계가 밝혀지기 시작하자 커다란 위기감을 느낀 담배 회사들이 대대적인 거짓 과학 캠페인을 벌인 데서 비롯된 이른바 ‘담배 전략’이다. 기업의 후원을 받는 극소수의 과학자들은 과학계의 지배적인 견해에 의혹을 제기하고, 과학적 근거가 결여된 주장을 포장해, 언론을 통해 대중에게 논쟁 중인 사안처럼 보이게 한다.


이들은 2차 세계 대전 중 물리학자로 과학적 명성을 날렸으며, 냉전 시기에는 정부에서 주요한 국방 관련 업무를 수행했던 이들은 냉전이후 환경주의자들을 새로운 적으로 상정, 비슷한 성향의 학자들과 함께 보수적 싱크 탱크 및 민간 기업과 세력을 규합, 현대의 수많은 쟁점에 관한 과학적 증거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들은 시장에 대한 정부의 모든 환경 및 보건 규제에 반대하며 미국 보수주의 정부의 강경 정책에 대한 고문 역할을 자임했으며, 냉전이후 지구 온난화 문제에 대해서는 기후 과학 그 자체를 공격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들의 첫 활동은 “흡연과 암 발병 사이의 연관성이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레이건 집권과 함께 도래한 신 냉전 시기에는 전략 방위 구상의 위험성과 한계에 관해 동료 과학자들이 잘못 알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산성비와 남극에 생겨난 오존 구멍은 배기가스 때문이 아닌 화산 활동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라고 우겼다.


가장 최근엔 지구 온난화라는 현실마저 부정했다. “지구 온난화 같은 현상은 없다”는 주장으로 시작해 “자연적인 변화에 불과하다”로 말을 바꿨고, 결국 “설사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고 인간 때문이라고 할지라도 거기에 적응하면 되니 큰 문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모든 사례마다 그들은 과학적 합의의 존재를 꾸준히 부정했다. 자신들이 극소수여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냉전 시기 무기 개발 프로그램에서 행한 연구 덕분에 이 사람들은 유명세를 떨치고 워싱턴 정가에서 대단히 존중 받았으며, 백악관으로 통하는 권력에 접근할 수 있었다.


이들의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은 대중 매체도 마찬가지였다. 기업의 용병이자 의혹의 상인인 이들은 소위 ‘전문가’로 불리며 지난 40년 동안 대중을 오도하고 확고한 과학적 지식을 부정하는 캠페인을 벌여왔다.


의혹의 상인들은 “일반 대중이 양쪽 모두의 말을 들을 권리가 있다면 언론은 양쪽 견해를 다루어야 한다”며 “이것이 공정한 것이며 민주주의”라고 주장하고 협박했다. 그러나 그들의 쟁점은 표현의 자유나 민주주의와 같은 숭고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자유 시장’이었다. 시장을 감독하는 정부의 규제를 없애는 것이야 말로 그들이 진짜 원하는 바였다. 그들은 시장에 대한 규제를 사회주의·공산주의로 몰아붙여 공격했다.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는 이런 관점을 가리켜 ‘자유 시장 근본주의’라고 지칭했다. ‘자유 시장’에 대한 그들의 광기는 종교적 광신과 다름없다고 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담배 전략’이다. 이 책은 우리의 삶과 우리가 사는 지구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하고 커다란 문제에 관해 우리를 혼란시키기 위해 과학과 과학자들을 공격하는 ‘담배 전략’이 어떻게 활용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오미 오레스케스 외 저·유강은 역, 2만5000원, 미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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