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광주엔 그녀들이 있었다

전성운 / 기사승인 : 2012-11-02 15: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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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낮은 목소리로 들여다본 5월 18일

기록된 역사 속에 기록되지 못한 이야기들이 있다. 5.18 당시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건네주고, 부상자를 치료하고, 시신을 수습하는 등의 역할을 했던 간호사, 시장 상인, 여공 등 당시 5.18 현장에서 다양한 역할을 담당했던 여러 계층의 여성들의 목소리가 그것이다.


이것을 기록하려는, 아니 기억하려는 시도가 있다. 이 책 <광주, 여성>은 5.18을 직접 체험한 여성들의 ‘80년 5월’의 기억뿐만 아니라 5.18을 전후로 한 그녀들의 전 생애까지 직접 그녀들의 목소리를 통해 담아내려 시도했다.


무엇보다도 국가가 자행한 거대한 폭력 앞에서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고 있던 그녀들이 어머니로서, 간호사로서, 노동운동가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자신과 주변인들의 삶을 지켜내고자 했는지, 그간 5.18 담론에서 주변화 돼온 주체들을 전면화하면서 ‘저항’의 의미와 역사를 다시 쓰려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들의 평범한 삶 속에서 어떤 점이 5.18의 투쟁을 가능케 했고, 이로 인해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했으며, 이후에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살펴봄으로써 5.18의 ‘현재’를 담아내고 있다.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살아온 여성들의 전 생애를 보여 주고 있는 이 책은 60, 70년대 한국 여성들의 질곡 어린 삶을 보여 주면서 80년 5월 광주에서 이루어졌던 실천들이 바로 이들의 이전 삶 속에서 연원하는 것이라는 점을 웅변해 주고 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딸이라는 이유로 배운 것도 없이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여성들과 얼굴 한번 제대로 못보고 돼지 팔려가듯 결혼해 고된 시집살이를 견뎌 내고 병들거나 자기 자유만 챙기는 남편 대신 생계를 이어가야 했던 여인들, 배고프다는 자식들에게 풀을 쒀먹이면서도 질기게 악착같이 삶을 이어온 어머니로서의 그들의 삶이 이 책에는 가득하다.


시집살이를 견디며, 밥벌이를 할 수 없는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이어 가야 했던 시장 상인, 일용직 노동자 등의 삶과 자기 일터에서 노조를 결성하고 임금 인상 투쟁을 진행하며 5.18 투쟁을 예비했던 여공 등 이전까지 평범했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부상자와 사망자로 가득한 병원에서 갖가지 참상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시체를 수습해야 했던 간호사들, 고등학교 때 5.18을 경험한 이후 대학에 와서 학생운동에 뛰어든 이들,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고 취직을 못해 생계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운동을 멈추지 못한 여성들의 삶을 통해 5.18은 여전히 ‘진행형’임을 깨닫는다.


이들은 시위 학생들을 내 자식처럼 이녁 동생처럼 여겼고, “아무라도 배고프믄 먹여야 된다”는 생각에 주먹밥을 만들고, 시신을 수습하고, 부상자들을 보듬었다. 이것이 80년 5월 광주에서 시민공동체 구성을 가능케 했던 원동력이었다.


5.18 이후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갖가지 봉사 활동을 하며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의 삶을 돌보는 일을 멈추고 있지 않은 이들의 삶 역시 이 책의 이름 없는 여성에 대한 관심이 살려내고 있는 중요한 이야기다. 이들에게 5.18은 잊힌 역사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역사다. <광주, 여성>, 이정우 편집,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기획, 1만7000원,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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