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처럼 열쇠를 꽂거나 리모컨을 작동하지 않아도 저절로 자동차의 문이 열리고 전원이 켜지는 스마트키가 등장한 것은 이미 한참 전의 얘기다. 목적지를 말하기만 하면 알아서 집까지 차를 이동시켜 주는 스마트네비게이터가 등장할 날도 머지않았다. 스마트카드를 장착한 자동차는 유료도로 요금소에서 굳이 멈출 필요 없이 요금이 계산된다. 적외선 스마트센서로 자동화된 ‘스마트 하이웨이’가 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나 회사 등 주차장은 적외선카드나 RF카드를 통해 출입을 자동 통제한다. 일종의 스마트 주차장이다. 시내버스가 어느 정류장을 몇 시 몇 분 몇 초에 통과했는지, 같은 정류장에 다음 버스는 언제 들어올 예정인지를 각 정류장에 설치된 단말기는 물론 안방의 컴퓨터나 개인 스마트폰에서도 읽을 수 있는 인터넷 실시간 교통정보 시스템도 스마트교통 시스템의 발달 덕분이다.
도시 전체가 어느 한 곳 빈틈없이 CCTV로 관찰되는 관제시설을 갖추고 보안 방재에서 교통 방범 복지 보건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주민서비스를 지향하는 신도시도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스마트시티다. 이곳에서는 쓰레기수거차도 볼 수가 없다. 모든 쓰레기는 대형 우체통을 닮은 수거 부스에 넣기만 하면 지하통로의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하치장으로 자동 운반된다. 아이들은 무거운 책가방이 필요 없는 스마트스쿨로 등교한다. 교문, 또는 교실문은 아이가 등교하는 것을 감지하여 자동으로 출석기록을 남긴다.
과연 이런 세상은 스마트한 세상이 된 것일까. 대체 스마트하다는 게 무슨 뜻일까. 어휘의 본뜻을 따지기 전에 요즘 매스컴들이, 상인들이, ‘스마트’라는 표현을 어디에 주로 가져다 붙이고 있는지를 우선 살펴보자.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전통적 개념들 가운데서 대체로 이런 것들이 해당하는 것 같다. 만능, 효율, 신속. 그러니까 적어도 하나의 물건으로 두세 가지 이상의 기능을 이용할 수 있거나 예전보다 획기적으로 작업의 단계나 소요시간을 줄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여기에 더한다면 의외성? - 이 물건에서는 흔히 기대하지 않는 의외의 기능을 갖춘 스마트 기술도 자주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우리나라의 스마트化가 빠르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만능 효율 신속, 이 세 가지 모두가 바로 현대 한국인들(‘빨리빨리’族)의 특성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게다가 한국의 신세대들이 지닌 창의적 의외성이 금상첨화로 맞아떨어지는 듯도 하다.
그런데 스마트(smart)란 어휘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Smart는 영리하다 멋있다 빈틈없다와 같은 뜻만을 지닌 말이 아니다. 그것은 동사로서 ‘쓰리다 아프다 욱신거리다 상심하다 후회하다’와 같은 뜻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아픔 비탄을 나타내는 명사로도 쓰인다. 첨단 기술에 기댄 거대 상업주의 기술주의의 주도 아래 만능 효율의 스마트시대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다. 기계 한 대가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고 그런 기계를 움직이는 한 사람이 수십 수백 명의 일할 몫을 차지해버리면 그 일을 나눠 하던 많은 사람들이 일을 잃게 된다. 단순히 그것을 소비하는 잉여인간이 되는 수밖에 없다. 첨단 기술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운영하느라 인간다운 삶을 잃어버린 ‘스마트 인간’과 그 ‘스마트 기술’에 할 일을 잃어버린 더 많은 ‘잉여인간’. 둘 다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임에 분명하다. 진정한 스마트 세상이라면 인간과 자연이 함께 행복해져야 하는 것 아닐까.
정해용 상임 논설위원(peace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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