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 작가의 단편소설] 시인의 귀향 ⑥

토요경제 이정 작가 / 기사승인 : 2021-07-05 15: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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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귀향 - 6



북쪽 경계 안으로 열차가 들어섰습니다. 그가 창밖에 계속 눈을 팔며 말을 이어 가는 통에 나는 그가 옛 조국을 마음대로 볼 수 있도록 놔주기로 합니다. 얼마나 보고 싶었던 곳이었을까요?

우리가 매설한 가스 파이프라인의 위치를 알리는 노란 팻말들이 철로 변에 보입니다. 나는 좀 으쓱해지는 기분이 됩니다. 도 선생이 저걸 누가 했느냐고 물었으면 좋겠는데, 그럴 기미가 안 보이네요. 러시아산 가스가 파이프라인을 통해 서울로 들어온 뒤부터는 도시가스 값이 3분의 1로 뚝 떨어졌습니다. 파이프라인이 통과하는 북측 8개 도시에 통과세조로 떼어 준 가스로 그들 도시의 에너지문제도 해결되었다고 하네요. 이것이 준공될 때 언론은 바다거북이 너른 바다에 뜬 판자 구멍에 드디어 목을 내민 격이라고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내가 지금 지나는, 모스크바를 거쳐 유럽까지 연결된 이 철도의 개통과 함께 분단 이래 양측 정부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라고 칭찬해 댔습니다. 남한은 이제 고립된 섬이 아니라고, 세계를 향한 마지막 혈맥을 이었다고 떠들어 댔습니다. 그런 대역사들을 통해서 통일은 성큼성큼 발걸음을 떼었지요.

"그래도 전 재혼하지는 않았어요."

도 선생이 큼큼 헛기침을 하면서 네게로 고개를 돌립니다. 자신 때문에 침묵이 길어지는 게 어색했나 봅니다. 아내에 대한 미안함을 이렇게 위안삼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나를 매정한 놈이라고 욕하지 마세요, 라는 말인 듯도 하고요. 사실 나도 그녀를 만난 뒤부터는 다른 여자와의 재혼을 꿈꾸지 않았습니다. 공사가 완료되어 우리가 철수할 때 그녀는 내게 선물을 하나 내밀었습니다. 우리가 밭에서 일하는 장면을 그린 유화였습니다. 밀레의 ‘저녁 종’처럼 황혼녘 풍경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림을 잘 볼 줄은 모르지만, 나와 자신을 동료들보다 조금 크게 그려 넣은 것만은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동료들이 어쩌다 집에 와서 그 그림을 보면 애고, 통일이 돼야 저 여자가 네 품에 안기겠는데, 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뻐근하게 가슴을 조이는 통증에 시달렸지요. 눈길이 저절로 먼 하늘로 줄달음질쳤지요.

"선생님은 어떤 일로 가시나요?"

"조금 전에 노란 표지판 보였죠? 아, 저기도 보이는군요. 저기."

내 손가락을 따라 그의 시선이 움직입니다.

"5년 전까지 가스 파이프 매설공사를 했거든요. 함북 화성 공사구간서. 거기에 아는 분이 있어요."

나는 조금은 자랑스럽게, 조금은 설렘에 젖어서 말합니다.

"이런! 저도 화성에 가는데. 아는 분이라면…… 혹시 그때 사귄 여자친구?"

"그렇게 보여요?"

"선생님 표정이 그걸 말해 주고 있어요. 저보다 더 들떠 계셔요. 인생의 새 출발을 앞둔 분처럼."

표정과 제스처의 의사 전달효과가 말의 여덟 배에 이른다는 글을 본 기억이 납니다. 그녀가 내 맘과 같았으면 정말 좋겠다고 말하려다가 나는 피식 웃고 맙니다. 정말 내 맘과 같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근심을 키우고 싶지 않기 때문이지요.

"제가 원래 살던 곳은 함흥이라요. 그런데 아내가 지금은 화성에서 살고 있다고 하네요. 그리로 추방을 시켰다는 거야요."

나는 잠시 멈칫합니다. 생각 하나가 낚시에 채인 물고기처럼 머릿속에 딱 걸렸습니다. 행방불명되었다는 그녀의 남편이 이미 그녀를 찾아왔다면? 말도 안 됩니다. 10년이 넘도록 오지 않은 사람이 오겠나요? 아닙니다. 도 선생은 12년 만에 찾아가고 있습니다. 미리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그것이 설렘의 한편에 께름칙한 먹물방울을 떨어뜨립니다.

"혹시 부인께서 재덕산맥 부근 장덕노동자구에 사시진 않나요?"

그곳 지리에 대해 아는 척할 겸 한 번 물어 봅니다.

"맞아요. 그런데 어찌 아시나요?"

"제가 일한 곳이 거기니까요. 만날 분도 거기 살구요."

대답을 해 놓고 보니 머릿속에 걸린 게 또 하나 있군요. 추방이란 낱말이 어쩐지 낯익습니다. 감시원들이 장덕노동자구를 추방골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설핏 깨어납니다. 그땐 조선시대의 귀양지겠거니 여겼습니다. 그녀가 추방당해 와서 산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게 다행이군요.

그런데 우리가 공교롭게도 같은 목적지를 가졌다는 사실이 반갑지 않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시를 썼다는 말을 했나 곰곰이 따져 봅니다. 남편에 대해서는 그녀가 무슨 말을 했대도 내 귀가 담아 두었을 겁니다. 하지만 남편이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것 빼놓고는 들은 게 전혀 없군요. 그녀에게 남편을 상기시키면, 그녀가 나와의 세계에서 남편과의 세계로 도망칠까 봐 의도적으로 묻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 아내는 원래 중학교 교사였어요. 산골서 어떻게 농사를 지었는지……."

:선생님 연세로 보면, 아이가 한 스무 살은 되었겠죠? 아이가 어머니를 돕지 않았겠어요?"

일부러 아이의 나이를 그녀 아이의 나이보다 너덧 살 높여 묻습니다.

"아들이 네 살 때 떠나왔으니까 이제 열여섯 살이 되었지요."

아! 그러고 보니 아이의 성이 도 가입니다. 왜 이런 중요한 것들이 이제야 생각날까요? 내 뺨을 찰싹 때리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힙니다.

"혹시 우리 가족에 대해서 뭘 좀 들은 이야기가 있어요?"

"듣긴 뭘 들어요."

나는 심기를 추스르려 애쓰며 대꾸합니다. 하지만 내 말이 퉁명스러웠나 봅니다. 도 선생이 나를 멀뚱히 바라봅니다. 나는 벌떡 일어납니다. 통로를 왔다 갔다 합니다. 미친개처럼. 그렇게 시간이 흐릅니다.





작가소재


이 정 :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2010년 <계간문예>로 등단했다. 경향신문에서 민족네트워크연구소 부소장을 지냈다. 현재 통일문학포럼 상임이사, 사단법인 공정세상연구소 소장, 6.15민족문학인남측협회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국경>(문체부 우수도서), <압록강블루>(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수혜작), <기억>이 있고, 단편소설집 <그 여름의 두만강>이 있다. 북한을 여러 차례 다녀왔다. 북한과 북한사람들에 대한 소설을 주고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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