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귀향 - 4
며칠 후, 서울에 다녀오면서 산 발렌타인 한 병을 들고 현장소장을 찾아갔습니다.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책상 위에 다리를 올려놓고 때 지난 서울 신문을 들여다보던 그가 슬며시 미소를 지었습니다. 물론 나를 보고 웃은 건 아니었습니다. 내 손에 들린 것 때문이었지요.
새 여자가 생겨야 아내를 잊는다구.
발렌타인을 맥주 컵에 절반쯤 따라 입에 털어 넣은 그가 멸치를 고추장에 찍으며 말했습니다.
그게 아니란데요.
뭐가 아냐. 속이 빤히 보이는데.
어쨌든 그가 공감해준 덕분에 막사 곁 공터에 작은 밭을 일궜습니다. 일이 없는 시간을 활용했습니다. 그리고 현장의 폐자재를 가져다가 비닐하우스를 설치했지요. 그녀를 데려와 채소를 가꿨습니다. 감시원들은 이처럼 노골적으로 자기네 사람과 접촉하는 건 안 된다고 난리를 쳤습니다.
민족끼리 돕고 살아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도대체 누군데?
결국 이번에도 그들은 한 걸음 물러섰습니다. 남쪽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소근거리는 말들이 그들을 더욱 나약하게 만들고 있었던 모양이었습니다.
미국이 중국에 무역 보복을 하니까 중국도 어쩔 수 없이 북한에 등을 돌렸대. 북한에 보내는 송유관까지 끊게 될지 모른대.
비핵화를 약속대로 진행하지 않은 흔적이 발견되었다니까 그렇지.
이 가스 파이프 매설공사도 언제 중단하게 될지 몰라. 미국과 중국이 러시아만 좋은 일 시킨다고 막후에서 강력 반대하고 있다는군.
원수님인지 원쑤님인지 하는 사람이 외국으로 망명하면 하루아침에 통일이 될 건데. 그렇게 되면 미국도 그 사람을 보호해주자고 할까?
그때까지도 남북 정부는 협상을 비교적 순조롭게 이뤄 가고 있었어요. 그런데도 감시원들은 8.15해방 때 그랬다는 것처럼 협상과 무관하게 통일이 불쑥 이루어질까 걱정하는 기색을 얼핏얼핏 비치고 있었습니다.
송이밭을 망친 죄책감을 뒤늦게 깨우친 동료 기사들이 밭일을 푼푼히 거들어 주었습니다. 그녀는 일하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그것을 들켜 쑥스럽게 웃기도 했습니다. 서서히 희망을 키워가는 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그녀의 집에도 드나들었습니다. 공부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정말 모르는 듯 말하는 그녀의 아들에게 공부를 가르쳤습니다.
수학의 집합문제를 풀지 못한 아이에게 짜증을 낸 날이었습니다.
남조선 아바이, 이젠 우리 집에 오지 말라요.
아휴, 녀석아, 이렇게 공부하기 싫어해서 어디다 쓰겠니?
나는 아이의 머리에 꿀밤을 한 대 먹이려다 참았습니다.
아바이는 우리 아버지가 될 수 없단 말이야요.
아이의 뜻밖의 말에 나는 입을 하 벌렸습니다. 곁에서 채소를 다듬던 그녀 역시 일손을 멈추고 아이를 빤히 바라보았습니다. 내 진정을 몰라주는 아이가 안타까웠지요. 하지만 나는 이내 내가 이 아이의 아버지가 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새 여자가 생겨야 아내를 잊는다는 소장의 말이 그제야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이 정 :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2010년 <계간문예>로 등단했다. 경향신문에서 민족네트워크연구소 부소장을 지냈다. 현재 통일문학포럼 상임이사, 사단법인 공정세상연구소 소장, 6.15민족문학인남측협회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국경>(문체부 우수도서), <압록강블루>(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수혜작), <기억>이 있고, 단편소설집 <그 여름의 두만강>이 있다. 북한을 여러 차례 다녀왔다. 북한과 북한사람들에 대한 소설을 주고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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