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한국 언론, 멸치 어군과 해로운 새 그 사이

김경탁 / 기사승인 : 2021-05-31 16: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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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money drives out good…단독이 특종을 구축한다


[토요경제=김경탁 기자] 중학교 1학년의 첫 체육수업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두 편으로 나누더니 축구공 하나를 던져 준 다음 어디론가 사라졌고, 20~30명의 아이들이 우르르 공을 쫓아서 끝없이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모습이 수업시간 내내 끝없이 이어졌다.


바닷속을 집단 유영하는 멸치나 꽁치 어군을 연상시키는 남자애 무리의 끝없는 움직임이 좀 징그럽게 느껴졌고 나중에는 아이들의 놀라운 체력에 감탄하기도 했다.


30년도 더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여전히 가끔씩 생생하게 눈앞에 떠오르는 풍경이다.


각 구성원들 사이에 서로 사적 연계가 약하거나 연계가 아예 없는 집단에게 아무런 역할과 포지션 배정도 해주지 않은 상황에서 단순한 하나의 목표(‘골을 넣는다’ 같은)만 던져주고 방치했을 때 벌어지는 현상은 아마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대형포탈 사이트가 던져주는 실시간 이슈를 따라다니며, 독자들이 보기에 정말 아무 의미 없는 복제 기사를 쏟아내는 것으로 클릭 수 따먹기에 열을 올리는 무수히 많은 언론매체들을 볼 때마다 중1 첫 체육시간의 그 풍경이 떠오르고는 한다.


10여 년 전부터 제목 앞에 ‘단독’ 표시를 단 기사가 많이 보인다.


자세히 보면 2~3개 매체가 똑같은 내용을 비슷한 시간에 올리면서 ‘단독’을 단 경우도 적지 않긴 하지만, 어쨌든 ‘단독’ 표기라는 건 남들이 쓰지 않은 내용이라는 자신감(?)을 담은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고작 이 정도 내용을 가지고?”라는 의문이 드는 때도 많아서, “이런 기사에까지 ‘단독’ 표현을 썼다는 건 ‘단독’ 표기 없는 기사들은 전부 남들 쓰는 것을 따라 쓴 거라고 스스로 인정한다는 의미인가?” 의문을 품게 되기도 한다.


언론학계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단지 타사보다 빨리 보도하거나 타사의 보도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단독’이 남용되는 경쟁이 한국 언론판에서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는 규모가 작은 인터넷 신문사뿐만 아니라 지상파 뉴스까지 가세하고 있는 실정이다.


관련된 여러 연구 논문들을 보면 이러한 단독 남발은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검색 알고리즘 정책 변화에 따라 언론사들이 출렁거려온 결과임을 확인하게 된다. 클릭 수의 변화가 매출 증감으로 즉각 반영되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지점은, ‘단독’이 진짜 수준 높은 ‘특종’이었다 해도 그 단독성을 유지하는 시간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특종 기사’에 의해 새 이슈가 떠오르고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시작하면 너도나도 따라 쓰고 베껴 쓰는 일이 한국 언론판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언론학 연구자들은 “타사의 특종에 얹혀가거나 타사 기사를 베끼는 관행이 빈번해지면서, ‘내용의 품질을 높이고 정공법으로 승부해봤자 그 효과가 미미하다’는 인식들이 포털 뉴스 생태계의 악순환을 가져온다”고 평가하면서 이런 악순환을 ‘공유지의 비극’에 비유했다.


오랜 시간 공들여 취재해서 양질의 특종기사를 단독으로 낸다 해도 수많은 따라 쓰기 기사들에 휩쓸려 희석되어버려 그 단독성이 유지되는 시간이 극히 짧아진다면 결국 언론사나 기자 개인에게 실제 이득으로 돌아오는 부분은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인용 출처라도 제대로 표시해주면 최초 단독 보도를 낸 특종 매체와 그 기자의 이름이라도 남겠지만 ‘한 매체(일간지인지 주간지인지 종류라도 표시해주면 양심 있는 편)에 따르면’이라고 쓰는 정도가 대부분이고 아예 그런 거 없이 마구 베껴 쓰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한동안 관할 하에 있는 기자들에게 인용시 출처 표시를 정확히 하도록 강요(?)한 적도 있기는 하다. 이른바 메이저 매체들 모두가, 심지어 뉴스 도매상인 연합뉴스조차 인용 출처 표시를 제한적으로 하는 걸 보면서 ‘아이고 의미 없다’하고 포기했지만 말이다.


한국 언론사들이 출처 표시에 인색한 이유는 뭘까? 오랫동안 ‘취재원 보호’라는 미명 아래 기사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등장인물을 익명 혹은 이니셜 처리하는 버릇이 오래도록 이어지다보니 출처 표기까지 익명으로 애매하게 뭉개고 넘어가는 습성이 생긴 거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얼마전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한국인 기자들에게 질문 기회가 주어진 다음 이어졌다는 ‘30초간의 정적’ 소식을 들으면서 참담했다. 비슷한 상황이 10여년 전부터 반복적으로 벌어지고 있어서 더 부끄럽다.


스스로 언론판에 소속된 일원이면서도 ‘이런 식이라면 세상에 이렇게 많은 언론사가 있을 필요가 있나’ 싶을 때가 있다.


전두환이 언론통폐합을 할 때도 아마 “이 신문이랑 저 신문이랑, 요 방송이랑 그 방송이랑은 또 뭐가 다른 거야. 관리하기 귀찮으니까 몇 개씩 합치고 말 안 듣는 것들은 없애버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한편으로 지금 소셜 미디어의 첨단이라 할 유튜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난장판들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게 된다.


이럴 때일수록 그리고 앞으로 더욱 ‘건강한 뉴스 유통 환경’과 ‘상식적인 언론매체’ 그리고 ‘훈련받은 기자’의 중요성·필요성은 커질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포기할 때가 아니라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할 때다.


1955년 마오쩌둥의 “참새는 해로운 새다”라는 교시로 시작된 참새 박멸 작전이 해충의 폭발적 증가-대흉년-아사자 수천만명 발생으로 이어졌던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한다.


삼국지를 소재로한 일본 만화 『창천항로』에서 조조와 모택동을 비교한 대목의 일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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