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문혜원 기자] 보수적인 금융업계에서 직급·호칭 변화를 시도하는 곳이 늘고 있다. 디지털 혁신시대를 맞아 기존의 엄격한 위계문화를 탈피해 수평적인 소통 조직문화를 이끌고 ‘젊은 경영’을 선두하면서 고객들에게는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해 나가겠다는 취지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재계에서 먼저 불던 ‘호칭’파괴 바람이 금융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호칭’파괴는 통상 외국계 기업이나 스타트업에서 직급에 상관없이 ‘님’이나 ‘매니저’라고 부르는 호칭 제도를 시행해 왔다.
하지만 전통적인 금융사들도 이 같은 시도를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혁신을 이끌 것으로 기대감이 모아지고 있다.
그동안 은행들은 행원-대리-과장-차장-부부장-부장(지점장)-본부장-임원(부행장) 등 복잡하고 수직적인 직급 체계를 고수해 왔다. 그러나 대리·과장·차장 등 기존 직급 대신 부서마다 자율적으로 호칭을 바꾸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은행권 중에서는 외국계은행으로 꼽히는 한국씨티은행이 2014년부터 님 호칭을 사용했다. 이에 따라 유명순 행장은 ‘명순님’으로도 불리고 있다. 이후에는 디지털시대가 도래하면서 인터넷은행인 카카오뱅크가 출범하면서 영어이름을 써왔다.
이후 두 번째 인터넷은행인 케이뱅크도 님 호칭을 사용했으며, 금융사 중 비교적 조직문화가 자유로운 분위기에 있는 카드사들이 호칭 파괴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들도 디지털 혁신 분위기에 동조하듯 호칭을 단순화하는 인사시스템을 개편하고 있다.
시중은행 중에서는 하나은행이 본사와 영업점에서 영어식 호칭제를 지난해 10월 20일 첫 도입했다. 하나금융은 은행, 카드 등 계열사에 공지를 내려 임직원들 간에 영어 닉네임을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
그룹 포탈의 직원 정보란에 영어 닉네임을 등록해 일상 업무나 회의 때 임직원 간에 부르자는 것이다. 다만 외부와의 소통 시에는 ‘이름+직급’의 기존 방식대로 호칭을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KB국민은행은 지난 1월부터 팀장급을 대폭 줄여 보고체계를 단순화했다. 기존에 부장-팀장-팀원으로 연결됐던 보고체계를 부장-팀원 체제로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신한은행은 지난 2월부터 기존의 직급 대신 부서별로 원하는대로 구성원 호칭을 정했다. 일례로, 관리자급(부부장급) 이상은 ‘수석’, 그 이하는 ‘매니저’ ‘프로’ 등으로 부르면 된다는 가이드라인이 주어졌다. 일부 부서에서는 ‘수석 매니저’, ‘마스터’, ‘시니어매니저’, ‘선임’ 등 새로운 호칭도 만들었다.
우리은행의 경우 사업그룹 3개를 폐지하고 임원수를 줄여 조직을 대폭 축소했다.
개인그룹과 기관그룹을 개인·기관으로 통합해 산하에 부동산금융단을 배치했다. 기업그룹, 중소기업그룹도 기업그룹으로 묶어 외환사업단을 산하에 배치했고, 인사관리(HR)그룹과 업무지원그룹 또한 경영지원그룹을 신설·통합 조직 효율성을 높였다.
NH농협은행 역시 고객과 시장의 변화를 감지하고 적시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 단행한 조직개편에서 애자일(민첩한) 조직인 ‘셀’을 확대했다.
카드업계에서는 신한카드가 2017년 2월부터 금융권 최초로 사내 호칭을 없애는 파격을 시도한 바 있다. 기존 팀장·부부장·차장·과장·대리·사원 6단계의 직급 호칭을 팀장·매니저·프로 3단계로 단축한 바 있다.
이어서 오늘(27일)은 마이데이터 출범 D-100일을 기해 임영진 사장을 비롯한 임원, 부서장과 같은 직책명 대신 ‘님’ 호칭으로 단일화하기로 밝혔다. 탈직급과 역할, 직무 중심의 조직문화 구축을 위해 현재 팀원에서 CEO 포함 모든 임직원까지 확대하도록 한 것이다.
BC카드도 호칭 인사 파괴제도에 긍정적으로 합류했다. 대부분 직원이 자신이 원하는 호칭을 등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BC카드에 앞서 카카오뱅크·하나은행 등은 직함 대신 영어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BC카드는 이를 뛰어넘어 한글·영어에 상관없이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닉네임을 사용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John’ ‘Mike’ 등 영어 이름뿐만 아니라 무빙워터·오시장·만수르·크크·원드래곤 등 다양한 닉네임이 등록됐다.
카드사들은 호칭 변화 시도 외에도 유연 근무제를 확대하기도 했다. 이는 근무환경이 빠르게 디지털화되고 있는 것에 따른 시도로 파악된다.
그간 금융권의 보수적인 조직문화는 AI(인공지능), ICT(정보통신기술) 등 디지털 혁신 시대의 금융사들의 창의적인 발상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사들의 이 같은 파격적인 인사체제의 변화는 권위적인 조직문화를 없애고 소통을 위한 수평적 조직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함이 크다”면서 “시대적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빠른 의사결정을 위해 조직 슬림화 속도변화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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