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김시우 기자]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 그것이 다 증거인데 그 증거조차 인정하지 못하는 사법부나 가해 기업, 정부 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용서할 수 없다. 우리 피해자들과 함께 힘껏 다시 싸우겠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조순미 씨가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직 임원들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외친 말이다.
지난 2011년 공론화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피해자들은 무거운 산소통을 지니며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2016년에서야 첫 수사가 시작돼 그해 환경부 산하 기관이 집계한 누적 피해자는 5000여 명, 사망자는 1006명에 달했다. 검찰은 옥시·롯데마트·홈플러스 등 업체 주요 관계자 20여 명을 기소했고 이들은 대부분 유죄 판결을 받았다.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옥시는 신현우 전 대표가 2018년 1월 대법원에서 징역 6년을 확정받으며 유죄가 입증됐지만 이번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은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다.
SK케미칼이 애경산업과 함께 제조하고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메이트’는 사망자 12명, 부상자 87명으로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다음으로 많은 피해자를 냈다.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유영근 부장판사)는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에 대해 “공소사실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서로 다른 결과를 받은 옥시와 SK케미칼·애경산업의 제품의 차이는 ‘성분’이다. 옥시 등이 만든 제품은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성분이다.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이 제조한 제품은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이다.
재판부는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 가습기 살균제가 폐 질환이나 천식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CMIT·MIT 성분이 담긴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을 확인하기 위해 동물 실험과 역학조사 등이 이뤄졌으나 폐 질환과 천식에 영향을 줬다고 결론을 내린 보고서는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가습기 살균제 속 ‘성분’으로 평생 피해를 받고 사는 피해자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재판이다.
재판 당일 법원을 찾은 피해자들은 “납득할 수 없는 기만적 판결”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조 씨는 2008년부터 2010년 2월까지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과 애경 가습기메이트 등을 사용했다. 2009년 말 발작과 호흡곤란으로 입원해 천식과 독성간염을 현재까지 앓고 있다. 이날 메고 온 산소공급기는 9㎏짜리로, 2014년부터 24시간 착용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실제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한 2011년이 아닌 5년이 지난 2016년에서야 전담수사팀이 구성됐고 최대 가해업체인 옥시 대표 등에 대한 처벌이 이뤄졌다. 이전까지 피해자들은 살균제로 인한 고통과 많은 병원비를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최고위에서 “재벌과 대형로펌의 결합을 통해 다시 한번 유전무죄라는 대한민국 법조계의 현실을 보여줬다”며 “참으로 참담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허가를 담당했던 공무원과 이를 실험했던 대학연구책임자, 거기에 대형로펌까지 우리 사회의 검은 카르텔이 만들어 낸 비극”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번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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