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고전 읽기]망군(亡君)이여, 여자 핑계대지 마라

정해용 / 기사승인 : 2013-07-05 15:3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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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천자의 체통을 잃다

山崩川竭 亡之徵也 산붕천갈 망지징야
산이 무너지고 물이 마르면 (나라가) 망할 징조다. (周語 上)
주나라 여왕(幽王)이 즉위한 후 지진이 일어났을 때 伯陽父가 경계한 말



중국 역사속의 4대 미녀(美女)라든가 10대 미녀라든가 하는 말을 종종 들어보았을 것이다. 오랜 역사를 거슬러 가다보면 아름다운 여인이야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러나 기록에 남을 만큼 영향력을 가진 여자는 많지 않다. 그들은 대개 왕과 연관된 여자들이다. 그것도 미모로 왕을 사로잡아 분발하게 하거나 타락하게 만든 여자들이고 보면 ‘역대 미녀’라는 말이 과장만은 아닐 듯하다. 군주나 영웅의 마음을 사로잡아 나라의 역사를 바꾼 미녀들을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 한다. 줄임말은 국색(國色)이다.

여자 때문에 망한 군주는 한둘이 아니다. 고대 하나라의 망군 걸왕(桀王)을 사로잡은 여인은 말희(末喜)라 했고 은나라를 망친 주왕(紂王)이 정신을 빼앗긴 여자는 달기(妲己)였다.

말희는 비단 찢는 소리를 좋아한데다 3천명의 궁녀를 뽑아 궁녀들마다 색색의 비단옷을 입게 했으므로, 왕실재정은 바닥이 나고 전국의 비단과 옷 만드는 사람들이 부족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달기는 주왕과 함께 궁 안에 주지육림을 만들고 그 못에 배를 띄워 늘 취해 지냈다. 복숭아 꽃잎으로 색을 내서 뺨에 붉게 바르는 ‘연지’를 처음 발명했다고도 한다. 달기는 성정이 잔혹해서 사람 죽이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했다. 주왕은 달기를 위해 점점 더 잔혹한 형벌을 고안해서 마침내 사람을 포(脯)뜨거나 불 위를 걷게 해 태워죽이는 포락(炮烙)형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주(周) 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킬 때 때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牝鷄無晨 牝鷄之晨 惟家之索)는 고사를 운운한 것도 바로 달기 때문이었다.

천하를 얻은 지 5백년이 되자 주나라에도 바로 그런 여자가 나타났다. 주나라 유왕(幽王)이 좋아한 여자로, 이름은 포사(褒姒), 포나라에서 바친 사씨 성의 여자였다. 포사가 아들 백복(伯服)을 낳자 유왕은 백복을 태자로 삼으려고 본처 신(申)씨와 그녀가 낳은 큰아들을 내쫓고 포사를 왕비로 삼았다. 신씨가 본국으로 돌아가자 제후 신씨는 앙심을 품었다.

유왕이 좋아한 포사는 잘 웃지 않는 여자였다. 유왕은 포사가 한번이라도 웃는 것을 보는 게 소원이었다. 그때 유왕은 오랑캐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하여 봉수(烽燧)대와 큰 북을 설치하였는데, 봉화를 올려 제후들의 군대가 여기저기서 달려오자 포사가 크게 웃으며 좋아했다. 본래 봉수란 외적이 침입할 때 신호로 사용하여 응원군을 부를 목적으로 설치된 것이다. 주나라는 천자의 나라이므로 모든 제후국들이 보호할 의무가 있어 봉수대에 연기나 불꽃 신호가 피어오르면 최대한 빨리 달려와 왕실을 구원해야 했다. 그런데 유왕이 포사를 즐겁게 해주려고 낮에 연기를 피우거나 밤에 불꽃을 올려 제후들을 몇 차례나 출동하게 만들자 제후들은 봉화를 신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럴 무렵에 제후 신씨가 이웃한 증(繒)나라와 이민족 지원군까지 끌고 도성에 들이닥쳤다. 유왕이 황급히 봉화를 올렸지만 제후들은 또다시 장난으로 여기고 아무도 출동하지 않았다. 신후(申侯)는 유왕을 처형하고 포사를 잡아갔으며 오랑캐들은 도성의 재물을 마음껏 훔쳐갔다. 친정으로 돌아갔던 왕비 신씨가 귀국하고 맏아들 의구가 돌아와 왕이 됐다. 그가 평왕(平王)이다.

이제는 주변 야만족들이 자주 침범해도 막을 도리가 없었으므로 평왕은 도성을 호경에서 낙읍(洛邑, 뒤에 낙양성)으로 옮겼다. 호경에 도읍했던 제국의 시대가 사실상 끝나고, 주나라는 명목뿐인 천자국으로 전락했다. 사람들은 호경시대의 주를 동주(東周)라 하고 서쪽의 낙읍으로 옮겨간 이후의 주를 서주(西周)라 부른다. 주나라 800년 역사 가운데 515년의 동주시대가 이렇게 마감되었다.

경국지색 포사의 행적은 신후에게 잡혀간 이후 알려진 게 없다. 다만 죽었다는 기록이 따로 없기 때문에, 포사는 중국의 여러 전설 속에서 끝까지 죽지 않고 둔갑술을 부리는 존재로 자주 등장하게 됐다. 구미호나 천년 묵은 여우 등의 상징이 된 것이다. ★


- 이야기 Plus
주나라가 동주와 서주로 구분해 불리게 된 것은 유왕 이후부터다. 동주시대에는 모든 제후국들이 천자의 명령을 순리로 여기고 따랐으나 서주시대에는 제후들이 천자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천하의 주인이 없으므로 제후끼리 몰려다니며 전쟁을 일삼고, 주나라는 천자의 체통에도 어울리지 않게 다른 제후들과 더불어 다투거나 눈치를 보는 처지가 됐다. 이 시대를 가리켜 춘추전국시대(春秋時代)라 일컫는다.

유왕의 재위 초기에 도성 근처에서는 지진이 있었다. 그때 중신 백양보가 “주나라는 곧 망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자연 재해는 사람이 일으키는 것이 아니요, 아무리 정치가 좋은 시대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인데, 한 가지 재해를 보고 나라의 ‘망조(亡兆)’를 느낀다는 것은, 그 일 말고도 나라에 위태로운 조짐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말한 망국의 징조는 자연현상이 아니라 군주와 백성들의 이완된 언행을 지칭한 것이다. 여왕(厲王)과 선왕(宣王), 그리고 유왕의 실정이 이어짐으로써 신(神)이라 해도 막을 수 없는 망국의 조짐이 나타났던 것이다.



유왕은 포사(褒姒)를 즐겁게 해주려고 몇 차례나 거짓 봉화를 올렸다. 제후들은 더 이상 봉화를 믿지 않게 되었다. 오랑캐가 쳐들어왔을 때 봉화를 올려도 출동하는 군대가 없었다. 유왕은 죽고 포사는 잡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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