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리를 어기면 반드시 난리가 난다

정해용 / 기사승인 : 2013-07-01 10: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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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흔들리는 주(周)

夫下事上 少事長 所以爲順 부하사상 소사장 소이위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기고 어린이가 어른을 따르는 것은
그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 (魯周公世家)
순리에 벗어난 명령을 내리면 장차 백성의 거역을 막을 수 없게 된다며 경계한 말



상속권이란 하나의 질서다. 질서를 어기면 반드시 난리가 나게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왕들은 왕위 승계의 서열 원칙을 중시했다. 나라에 따라서는 아들, 또는 형제에게 물려주는 경우도 적지 않았으나, 대체적으로 장자상속은 고대에 이미 확립돼 있었다. 간혹 맏아들 스스로가 왕위 승계를 거절한 경우가 아니라면, 누군가 억지로 계승권을 바꾸는 경우 어김없이 부작용이 따랐다.

주공 단의 영지인 노(魯)나라에서 처음 2백여년간 왕위 승계는 비교적 순조로왔다. 문제가 처음 발생한 건 무공(武公) 때였다.

그 때 주에서는 추방된 여왕(厲王)을 대신하여 제후들이 함께 나라를 다스려, 이를 공화(共和)라고 불렀다. 공화정 14년에 여왕은 본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체 땅에서 죽었다. 제후들은 여왕의 아들을 새 왕으로 세우니 그가 선왕(宣王)이다. 노나라 무공이 두 아들 괄(刮)과 희(戱)를 데리고 가 인사를 올리게 했다. 이 시절 사람의 이름은 대개 어떤 규칙보다는 인물의 특성을 따라 붙여진 경우가 많다. 이름자를 보면 그 사람의 특성을 짐작할 수 있다. 두 아들의 이름을 뜻으로 미루어 보면 첫째는 좀 괄괄하고 둘째는 사근사근했거나 재롱을 잘 부리는 사람이라 짐작할 수 있다. 무공은 아들들과 함께 선왕을 자주 조회했는데 선왕은 둘째를 마음에 들어 했다. 무공이 죽기 전에 선왕이 무공에게 노나라의 승계문제를 언급하여 둘째아들 희를 태자로 삼으라고 권했다. 질서를 깨뜨리게 한 것이다.

주나라 중신 번중산보가 놀라서 만류했다.

“장자를 제치고 둘째를 세우는 것은 순리를 벗어나는 일입니다. 순리를 벗어난 명령은 내리지 말아야 합니다. 대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기고 어린아이가 어른을 따르는 것은 그것이 순리이기 때문입니다. 천자께서 윗사람을 제치고 아랫사람을 올려 제후가 되게 하신다면 이는 백성에게 거역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만일 노나라가 그 명령을 따라서 다른 제후들에게도 본이 된다면 앞으로 천자의 명령은 옹색해질 것입니다. 순리를 어기도록 명령을 내리고 그 명령에 복종치 않는 자를 벌준다면 그것은 스스로 왕명을 징벌하는 것이니, 벌을 주어도 잘못이고 벌을 주지 않아도 잘못이 될 것입니다. 천자께서는 부디 헤아리소서.”

그러나 선왕은 듣지 않았다. 무공이 죽고 희가 즉위하여 의공(懿公)이 되니 노나라에 엄청난 재앙이 시작됐다. 의공 9년에 형 괄의 아들 백어(伯御)가 의공을 시해하고 군주가 됐다. 선왕이 괘씸하게 여겨 노나라를 정벌했다. 백어를 죽이고, 시해된 의공의 동생 칭(稱)을 새 주인으로 세워 효공(孝公)으로 칭했다. 반란은 진정되었으나, 화(禍)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중국의 제후들이 천자의 명령을 자주 어기게 된 것이 이때부터라고 <사기>는 말하고 있다.


- 이야기 Plus
이 사건은 주나라가 의왕(懿王) 이후 유왕(幽王)에 이르기까지 100여년에 걸쳐 쇠락해가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선왕의 아버지 여왕은 포악한 정치를 하다 백성들에게 쫓겨나 14년 뒤에 망명지에서 죽었다. 나라에 왕 없이 제후들의 공화정을 실시하는 동안 주 왕실이 통째 사라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여왕이 죽은 후 제후들은 어린 왕자를 추대하여 대를 잇게 하였다. 그가 곧 선왕이다. 주나라가 천하의 주인으로서 기사회생하느냐 그대로 쇠락하느냐 여부가 바로 선왕의 손에 달렸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때에 주나라의 건국정신은 간 데 없었다. 선왕은 그 누구로부터 왕도(王道)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당시 왕들은 적전(籍田)을 갖고 있었다. 적전이란, 농업이 주 산업인 시대에 왕이 손수 농사를 지어 천하에 모범을 보이도록 주어진 경작지다. 선왕은 적전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잡초가 무성했다. 외적이 쳐들어와 이 밭에서 왕의 군대와 전쟁을 벌였다. 무능한 왕의 나라가 전쟁에서 이길 리 없다. 패한 왕은 곧 군사를 모으려고 인구조사를 실시했다. 역시 대신들이 만류했다. 지금 나라를 살리는 데 필요한 것은 군사력이 아니라 천하의 민심을 수습하는 것이 우선이건만, 왕은 선정(善政)의 중요성을 몰랐다. 제후국의 후계를 천자 한 사람의 선호에 따라 멋대로 바꾸게 한 것도 역시 정치의 엄중함을 몰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선왕은 결국 전쟁을 하다 죽었다.

백성이 왕명에 복종하는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순리를 벗어나도록 명령을 내린다면 백성은 따라야 할까 따르지 말아야 할까. 선왕이 스스로 순리를 벗어나자 백성들도 왕명에 복종해야 한다는 순리마저 어기게 되었다. 주 왕실이 조만간 권위를 잃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국가나 기업에서 부하를 거느린 사람들이 아랫사람들에게 순리에 맞지 않는 명령을 내리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조직의 원칙과 기강이 무너져 위태롭게 되기 때문이다. 윗사람의 권위는 자리가 만들어주는 것이지만 그 권위를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리더는 스스로 무너지고 만다. 순리에 어긋난 일을 획책하는 것은 남도 죽이고 자신도 죽는 일이다.

선왕(宣王)이 노나라 무공에게 둘째 아들을 태자로 세우게 했다. 조신들이 만류했다. “백성이 왕을 섬기는 것은 순리 때문인데, 왕이 순리를 거스르도록 명령한다면 장차 백성들은 왕의 명령도 거스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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