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공 단, 형제의 목을 베다

정해용 / 기사승인 : 2013-05-27 10: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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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周 왕자의 난

人無於水監 當於民監 인무어수감 당어민감
사람을 물(거울)에 비추지 말고 사람에게 비추어 보라 (書經 梓材)
무왕이 아들 강숙에게 준 훈계. 사람을 쓸 때 외모보다 여론에 물으라는 뜻



무왕이 새 나라를 세우는 데 가장 의지한 사람은 사상보와 주공 단(旦)이었다. 사상보는 아버지 서백(文王)이 위수(渭水)에서 만나 등용한 강태공이고, 주공 단은 무왕의 동생이다.

무왕이 새 나라를 세운지 2년째 되던 해에 병이 났다. 이에 주공이 단을 세우고 북쪽을 향해 서서 조상들에게 기도를 올렸다. “당신들의 원손(元孫)이 병들어 위태롭게 되었으니, 조상들이여 하늘에 자손을 바쳐야 할 빚이라도 있으시다면 이 단(旦)의 몸으로 대신하소서(是有丕子之責于天 以旦代某之身). 단은 재능이 많아 능히 귀신을 섬길 수 있을 것이나, 원손은 단과 같은 재능과 예능이 많지를 못하니 귀신을 잘 섬기지 못할 것입니다. 이미 그에게는 땅을 다스리라는 명령을 주신 바 있으니 사방의 백성들이 그를 공경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부디 그 보배로운 천명을 실추하지 않는 것이 저와 조상들께서 영원히 귀의할 바이옵니다.” 주공이 기도문을 적은 글을 쇠줄로 묶은 궤짝에 봉하여 넣어두고 하루가 지나니 임금이 병석에서 일어났다. 이 궤짝이 금등지궤다.

무왕이 공신들을 포상할 때 형제들에게 제각각의 봉지(封地)를 주었는데, 소공 석에게 연(燕)을 주고 숙선과 숙탁에게 각기 관(管)과 채(蔡) 땅을 주었다. 작은 아들 강숙(康叔)에게는 위(衛)나라를 주었는데, 은나라가 술로 망한 것을 본받지 않도록 주고(酒誥)를 지어 경계하고 또 국가경영에 관한 지혜를 자재(梓材)에 담아 전해주었다.

그 후에 무왕이 타계하였는데 후계자인 성왕(成王)은 아직 어렸다. 주공 단은 민심의 이반을 막고 국가의 기강을 보호하기 위해 어린 왕을 섭정하게 되었다.

왕이 제 구실을 못하게 되면 여러 가지 말이 많아지는 법이다. 일찍이 무왕은 멸망한 은(殷)의 유민들을 거두기 위해 주왕(紂王)의 아들 무경녹보(戊庚祿父)를 세웠는데, 은을 안정시키며 혹은 감시할 필요도 있었으므로 숙선과 숙탁이 은을 함께 돌보도록 부탁했었다. 그런데 무왕이 죽고 주공이 섭정을 맡게 되자 아우 숙선과 숙탁은 단을 의심하면서 좋지 않은 소문을 만들어 퍼뜨리기 시작했다. “왕이 아직 어리므로 주공은 장차 왕에게 이롭지 않을 것이다.”

얼마 뒤 숙탁 숙선은 무경과 함께 무리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다. ‘왕자의 난’이다. 두 사람은 무왕과 주공의 형제이자 성왕의 삼촌들이었다. 주공은 곧 성왕의 이름으로 제후들을 모으고 나아가 이들을 토벌하였다. 역모를 주도한 숙선은 주살하고 무경을 죽였으며, 동조자인 숙탁을 추방하였다. 본래 은의 유민인 무경의 백성들은 주왕 때에 투항했던 은 왕족 미자 계(微子 啓)에게 맡기고 송(宋)으로 명명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나자 나라가 안정되었다. 주공은 섭정을 맡은지 7년이 지나자 곧 성왕에게 정권을 넘겨주고 신하의 자리로 물러났다.

후일 주공이 병들어 죽었을 때 성왕은 주공을 장사지낸 후 할아버지 문왕과 함께 모시고 감히 신하로 여기지 않았다. 그 해에 큰 바람이 불었는데, 아직 추수하기 전에 폭풍우가 몰아쳐 벼가 모두 쓰러지고 나무가 뽑혀나갔다. 온 백성들이 떨며 농사가 실패할 것을 걱정하게 되었으므로 왕은 제사를 지내며 금등지궤의 봉인을 열게 하였다. 그 안에 병든 무왕을 대신하여 죽게 해달라는 주공의 기도문이 있는 것을 보고 성왕이 사관들에게 물어보니 그들이 대답하기를 “분명히 그랬사옵니다. 옛날 주공께서 이 궤짝을 봉할 때에 그 내용을 감히 발설하지 말라 하시기로 지금껏 비밀로 하였던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당시에 어려서 아무 것도 몰랐던 성왕은 주공을 위하여 왕의 예로 제사를 지냈다. 곧 비가 그쳤으며 태공망과 소공이 백성들을 동원하여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고 나무를 수습하니 그 해에 풍년이 되었다.

왕은 또 주공의 후손인 노(魯)나라에 대하여 교외에서 제사지내는 것을 허락하였다. 이때부터 노나라는 선조인 주공을 제사지낼 때 천자의 음악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 이야기 Plus
아직 어린 임금과 능력이 많은 삼촌.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구도다. 부왕과 형을 도와 주 나라를 세운 주공 단은 삼엄한 주왕(紂王) 치하에서 지략으로 살아남고, 많은 제후들을 끌어들여 세력을 확장했으며, 70만 대군으로 둘러싸인 주왕을 심판하는 전쟁을 치르기까지 산전수전을 다 치르며 최고의 지도자 자리에 오른 사람이다. 그만큼 실력도 있었고 신망도 두터웠다. 그에 비하면 무왕의 태자 송(誦)은 젖먹이에 불과했다. 만일 성왕이 아직 어릴 때 실권을 한손에 쥐고 있는 주공이 국가의 안정 같은 것을 구실로 내세워 스스로 왕이 되고자 했다면 그리 큰 어려움 없이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주공의 충성심을 의심하여 두 형제 숙선과 탁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주공의 충성심은 한결 같았다. 역모(逆謀)를 지닌 형제를 참수하여 왕권을 지켰고, 왕이 스스로 국정을 챙길 나이가 되자 지체 없이 신하의 자리로 내려왔다. 세상이 자신을 의심할 때는 2년간이나 스스로 초에 망명하여 왕의 부름을 기다렸다. 이로써 주공의 덕망이 선대의 문왕 무왕과 함께 역사에 기리 남아 성인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우리 조선역사에 비슷한 시기가 있었다. 세종의 아들 수양대군은 형이 일찍 죽고 어린 왕 단종(端宗)이 즉위하자 곧 그를 죽이고 왕위를 빼앗았다. 이에 저항하는 어질고 현명한 문무 대신들까지 잔혹하게 죽여 없애자 조정은 나약하고 비굴한 자들의 소굴이 되었다. 틈만 나면 권리를 다투면서 남의 나라에 사대하지 않고는 왕이 그 권위조차 지킬 수 없는 치욕스런 왕조사가 이 때 시작된 것이다.



“저는 재능이 많아 귀신도 즐겁게 할 수 있으나 왕은 그런 재능이 없습니다.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왕 대신 저를 데려가소서.”
주공이 기도하고 이틀이 지나자 무왕이 병석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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