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유지만 기자] 지난 1월 일어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국정원과 검찰 측이 제시한 증거들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측이 확보한 자료들이 정 반대로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간첩으로 지목돼 수사를 받고 있는 전 서울시 공무원 유모(33)씨의 여동생이 “국정원으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했고, 증언을 조작했다”고 주장하면서, 사건은 점점 진실공방 양상을 띄고 있다.

지난 4월 27일 민변은 기자회견을 갖고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에 허위자백이 있었고, 이는 국정원이 조작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국정원이 회유·협박해 허위자백을 하게 됐다고 주장한 이는 유씨의 여동생이다. 이 사건에서 유씨의 간첩 혐의를 입증할 가장 핵심적인 증인인 유씨 여동생은 오빠인 유씨의 간첩 활동을 자백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측은 “진술내용이 구체적이고 일관된다”며 유씨의 간첩 혐의를 확신했다.
하지만 민변의 기자회견과 언론보도를 통해 유씨 여동생의 반박이 이어지면서, 국정원의 ‘조작’ 의혹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유씨 여동생은 지난 4월 28일 ‘한겨레’를 통해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합신센터)에서 오빠의 간첩 혐의에 대해 조사받을 때 ‘큰삼촌’이라 불리는 국정원 직원이 미리 제목이 쓰여져 있는 종이를 건넸다. 내가 거짓 증언을 대충 간단하게 쓰면 ‘큰삼촌’이 구체적으로 살을 붙여 프린트해서 줬고, 그걸 보고 다시 내가 손으로 쓰는 식으로 증언이 완성됐다”고 폭로했다.
증언 과정에서 국정원의 회유와 협박, 폭행 등이 가해졌다고도 주장했다. 유씨 여동생은 “국정원 직원이 머리를 때리고 몸을 차기도 했다”며 “협조하지 않으면 추방해버리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국정원 직원들이 ‘오빠가 간첩활동을 했다’고 인정하라고 압박해 저항했지만, ‘오빠가 다 자백했다’는 식으로 말하자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국정원 측에서 ‘너만 인정하면 오빠가 1~2년만 형을 살고 한국에서 둘이 살 수 있게 해주겠다’고 회유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심리적인 괴롭힘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여동생 등에 ‘화교 유OO’이라고 써붙여 합신센터 내 탈북자 사이를 몇 바퀴씩 돌게 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여동생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가해 결국 거짓 증언에 동의하게 했다는 것이다.
◇ 유씨 간첩활동 증거 깨져
국정원 측이 제시한 유씨의 간첩활동을 입증하는 증거들에 대한 반박도 나왔다. 기소 내용을 뒤집는 사진과 구체적인 증언들이 나왔고, 유씨가 입북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참고인 진술도 대부분 근거가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일 민변 소속 변호사들로 구성된 유씨의 공동변호인단은 유씨 가족이 지난 1월 22일과 23일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에 의하면 공안당국이 제시한 유씨의 간첩활동 근거들이 깨지게 된다. 1월 22일 찍은 사진은 연길에서 찍은 것이고, 23일 찍었다는 사진은 유씨가 노래방에서 여동생과 아버지를 찍은 것이다. 공소장에는 유씨가 지난해 1월 21일 중국에 도착해 1월 22일 밤 북한으로 넘어간 뒤 아버지를 만나 간첩 행위를 하고 1월 24일 다시 나온 것으로 기록돼 있다.
유씨 지인들의 증언도 유씨가 입북해 간첩활동을 했다는 국정원 측의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유씨의 지인은 언론보도를 통해 “지난 1월 23일 연길시 우리 집에 유씨 가족이 와서 밥을 먹고 밤늦게 다 같이 노래방에 갔다”고 말했다. 민변 측이 제시한 증거사진과 부합하는 증언이다.
참고인들의 진술도 구체적이라기보단 ‘추측성’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참고인 진술을 한 인사에 따르면 “유씨가 간첩이라는 얘기는 들었는데 누구로부터 들었는지 모르겠다”거나 “북한 회령에 있는 유씨 아버지 집에 젊은 남자가 있길래 아들이라 생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 “국정원, 여동생 강제출국시키려 압박”
국정원 측이 핵심 증인인 여동생을 강제출국시키려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민변과 함께 이 사건을 오랫동안 지켜봐 온 천주교 인권위원회는 지난 5일 성명을 내고 "국정원은 이 사건 증인인 여동생 유모씨의 폭로로 조작사실이 드러나자 유씨를 출국시키려는 데 혈안이 돼 있다"며 "법정 증언을 방해하기 위한 위법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국정원에 수용돼있던 유씨는 지난달 26일 인신구제청구 재판에서 '본인이 희망하는 곳에 머물다가 이달 23일까지 중국으로 출국'하도록 허용됐다"며 "이에 유씨는 국정원이 아니라 변호인들과 동행해 국정원 시설이 아닌 별도의 장소에서 머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도 국정원은 재판 전에 지정한 거소지인 국정원 시설을 이탈했다는 이유로 국정원 시설에 복귀하도록 요구하거나 강제추방을 위한 조치를 할 수 있다는 경고를 해 왔다"며 "국정원이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업무를 남용해 법정증언을 막으려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유씨 여동생 증인 채택 ‘공방’
유씨 여동생의 입장이 국정원 합신센터에서의 증언과 정 반대로 나오자, 유씨 여동생은 결국 법정의 증인으로 서게 됐다.
지난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부장판사 이범균)는 9일과 13일 두차례에 걸쳐 유씨 여동생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재판부는 "유씨 여동생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겠다"며 "증인신문을 통해 진술을 번복하게 된 경위와 진술 과정에서 문제점이 있었는지 등을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유씨의 변호인 측과 검찰 측은 이날 증인신문 기일 지정을 놓고 날선 공방을 벌였다.
유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민변 측은 "여동생이 오늘 법정에 나온 만큼 증인신문이 바로 이뤄지게 해달라"며 "인신구제청구 재판에서 이달 23일까지 출국하도록 허용됐지만 강제추방 조치 등에 따라 오늘 법정 밖을 나가면 증인으로 출석하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 측은 "인신구제청구 이후의 과정을 보면 과연 여동생이 법정에서 진실을 얘기할 지 의구심이 든다"며 "진술 과정에서 위법과 강압이 있었다고 하지만 아무런 증거가 없고 사실과 다른 내용"이라며 증인신문을 반대했다.
이어 "왕재산 간첩단 사건과 탈북 간첩 이경애 사건에서도 변호인들은 증인에게 진술을 바꿀 것을 회유한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법정에 출석했던 유씨의 여동생은 고함을 쳤고, 변호인도 "재판부를 압박하려는 치졸한 잣대를 중단하라"고 맞받아쳤다.
이에 재판부는 "여긴 법정이지 시장 싸움판은 아니다"라며 "감정을 자제해달라"고 양측의 공방을 제지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검찰 측을 통해 유씨의 여동생이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거소지와 연락처를 신고하면 23일 출국 때까지 강제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는 확인을 받고 여동생의 증인신문 기일을 정했다.
현재 이 사건은 9일 1차 증인신문을 비공개로 진행했고, 13일 2차 증인신문을 할 예정이다. 검찰 측의 반대로 신문 과정으로 비공개로 진행됐다. 유씨 여동생이 23일 출국하는 것으로 정해진 가운데, 증인 신문 과정에서 어떤 증언들이 나왔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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