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대리점 그만하고 싶으세요?”

유지만 / 기사승인 : 2013-05-10 18: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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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입수] ‘남양유업’ 횡포 입증자료

▲ 남양유업이 ‘막말’과 ‘떡값’ 파문에 무너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그동안 어렴풋했던 ‘갑의 횡포’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가 돼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은 남양유업 김웅(가운데) 대표이사와 본부장급 임원들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중구 LW컨벤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사과를 하는 모습.


[토요경제=유지만 기자] # 남양유업 보문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던 A씨는 남양 본사는 물론 영업직원들에게 매번 ‘떡값’과 ‘전별금’을 줘야만 했다. 잘 보이지 않으면 대리점 계약을 해지할 듯 눈을 부라리는 남양유업 측의 횡포 때문이다. 어느 날 “돈을 더 주기 힘들다”고 고충을 토로하자 남양유업 서부지점의 영업팀장은 “사장님, 대리점 그만 두고 싶습니까?”라며 윽박지르고, “내일부터 물량 더 나갑니다. 두고 보시죠”라는 등의 압박성 발언을 내뱉었다. 결국 A씨는 울며 겨자먹기로 ‘떡값’을 건넬 수 밖에 없었다.


# 또 다른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B씨는 어느 날 들어온 품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이 발주한 품목·수량과는 전혀 다르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B씨는 “20가지 품목을 시켰는데, 들어온 것은 47개였다. 게다가 230만원어치를 신청했는데 들어온 양은 500만원어치가 넘는다”고 하소연했다. 소위 ‘밀어내기’가 이뤄진 것이다.


‘갑’이 무너지고 있다.

지난 한 주 남양유업 측의 막말과 ‘떡값’의 실체를 입증하는 녹취가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결국 남양 측이 대국민 사과까지 하는 일이 벌어졌다. <토요경제>는 이 사건과 관련해 대리점 점주들의 고소장과 ‘떡값’ 및 남양 측의 밀어내기 등과 관련된 구체적인 내역이 담긴 자료를 단독으로 입수했다.

이번 사건은 ‘경제민주화’가 시대의 화두가 된 상황에서 알려진 일이라 더욱 충격이 크다. 그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갑’의 횡포에 대한 구체적 실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여론의 뭇매에 결국 남양 측이 대국민사과까지 했지만, 남양에 사과를 요구해 온 남양유업대리점피해자협의회 측과 시민단체 등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 각종 명목으로 돈 넘어가
‘토요경제’가 확보한 자료는 이 사건의 정식 고소인인 전 남양유업 대리점주 이창섭(41)씨와 정승훈(42)씨의 고소장 및 송금 내역과, 서울·경기·경남 3곳의 대리점주들의 ‘떡값’ 내역이다. 각각 남양유업 서부지점과 창원지점 등의 자료다. 피해자협의회 측은 기자에게 “현재 추가 고소를 준비중에 있어 이보다 더 많은 자료가 모일 것”이라며 “현재 수집 중에 있다”고 말했다.

남양유업 영업사원 측이 떡값을 요구한 방법은 매우 노골적이었다. ‘토요경제’가 확보한 고소장에 따르면 남양 영업사원들은 대리점주에게 직접 전화를 해 “지점 운영비가 필요하니 통장으로 50만 원을 입금해 줘라”라고 요구했다. 명절 때가 되면 “명절도 됐는데 떡값 좀 주시죠”라고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했다. 대리점주 측은 “떡값 요구를 거부할 경우, 보복적 밀어내기를 하거나 대리점 계약을 해지할 듯한 태도를 취해 겁이 나 돈을 줄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통장 내역을 보면 실제로 돈이 넘어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12년 1월 19일 남양유업 서부지점의 영업팀장 계좌로 50만1000원이 입금됐다. 이는 당시 ‘지점운영비’ 명목으로 넘어갔다. 2012년 3월 27일에는 10만원이 ‘추석떡값’으로 들어갔다. 이보다 이전인 2011년 8월에도 명절 떡값으로 40만원, 같은해 11월 30일 리베이트 명목으로 41만 4000원이 영업직원에게 넘어갔다.

‘떡값’의 명목도 다양했다. 남양유업 지점장까지 개입된 것으로 보이며 지점운영비, 명절떡값, 전별금 등의 명목으로 대리점주들에게서 돈을 뜯어냈다. 이렇게 받아낸 떡값의 액수를 더해보면 9년간 약 4500만원이 넘는 돈이 대리점주들에게서 남양유업 측으로 넘어갔다. 피해자협의회 측은 이에 대해 “이 자료들은 통장 내역에만 찍힌 것을 모은 것”이라며 “실제 돈이 건네질때는 현금으로 준 것이 더 많다. 이것까지 더하면 액수는 더 커진다”고 말했다.


◇ 떡값 ‘윗선’도 존재하나
‘떡값’의 존재가 구체적으로 증명된 것은 지난 7일 돈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남양유업 전 영업사원의 녹취록이 공개되면서부터다.

공개된 녹취록을 살펴보면 남양유업 전 영업사원인 권모씨가 자신이 돈을 받았음을 시인하고 있다. 권씨는 남양유업 전 대리점주인 피해자협의회 정승훈 총무와의 대화에서 “내가 사장님한테 받은 거는, 그건 저희들이에요”라며 ‘떡값’의 실체를 인정하고 있다.

녹취에는 이 돈의 어디까지 전달됐는지 짐작할만한 대화도 있어 눈길을 끈다. 권씨는 “사장님한테 (돈을)받은 건 저희들이에요”라고 말 한 뒤 “그것이 어디로 갔느냐. 그건 오리무중이에요”라고 밝히고 있다. 이어서 “받은 사람이 예스냐, 노냐...그 사람이 안 받았다 그러면 그럼 저는 그냥, 제가 떠안고 가야 돼”라고 말을 하고 있다. 영업직원들에게 건네진 떡값이 더 윗선으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피해자협의회 측은 이 ‘윗선’이 남양유업 본사의 핵심인물들일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피해자협의회가 제출한 고소장을 살펴보면 “남양유업에서 대리점주들에게 지급하도록 되어 있는 장려금의 경우 각 지점을 통해 대리점으로 지급한 다음, 영업사원인 피고소인들에게 ‘대리점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다’는 등의 위협을 하여 장려금을 다시 현금으로 뺏어갔으며, 도로 빼앗은 장려금은 영업팀장과 지점장을 통해 남양유업 본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근거로 협의회 측은 영업직원들의 말을 인용해 “영업사원들에 따르면 ‘본사에 상납할 떡값이 없으면, 자신들이 돈을 내서 이를 채워야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밝혔다.

윗선이 어디까지인지는 현재 상태로를 쉽사리 짐작하기 어렵다. 피해자협의회 측은 “영업사원들에게 통장 계좌로 들어간 떡값이 현금으로 ‘윗선’에 전해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입증하기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고 전했다. 협의회 측은 “중요한 것은 대리점 측이 심한 압박을 견디다 못해 돈까지 건네야 했다는 점”이라며 “이런 무자비한 관행은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 협의회 측 “전산자료까지 조작해 밀어내기”
남양의 밀어내기(부당영업)도 문제다. 협의회 측은 “남양유업 측이 전산자료까지 조작해 밀어내기를 했다”며 “대리점주들이 요청한 품목보다 더 많은 물품이 배송돼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소장에 포함된 증거자료를 살펴보면 구체적인 수량을 확인할 수 있다. 2012년 5월부터 12월 말까지 파악된 ‘변경 수량’을 살펴보면 총 542건, 총 3932박스에 달하는 양이 변경된 것을 알 수 있다. 협의회 측은 “영업 직원들에게 이에 대해 항의하면 ‘본사에서 지시가 내려온 것’이라며 ‘대리점 계약 해지’등을 운운하며 겁을 줬다”고 말했다.


◇ “관행은 다 있다, 남양이 좀 더 심한 것”
이같은 남양유업의 불공정 행위는 이번 사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확인한 결과 과거 2006년 12월 6일에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밀어내기’를 시정하라는 명령을 받은 바 있다. 또 피해자협의회 측은 이런 관행들이 시정명령을 받기 오래전부터 진행돼 왔으며, 전 업계에 걸쳐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협의회 측 정 총무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밀어내기 같은 관행은 남양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업계에서도 다 한다”고 말하며 “그런데 남양의 밀어내기 정도가 압도적으로 심했다. 다른 회사들은 대리점의 실정을 봐 가며 조금씩이나마 조절을 해 주는데, 남양은 5배에서 10배 가까이 많은 양을 대리점에게 밀어냈다”고 전했다.

오래 전부터 이뤄져 온 ‘악습’이라는 것도 강조했다. 정 총무는 “남양의 문제가 불거진 뒤에 오래 전에 대리점을 운영했다는 분들에게서도 연락이 온다”며 “그분들 말씀을 들어보니 십수년 전에도 똑같은 관행이 있었다고 하더라. 아주 오래된 ‘악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 결국 대국민 사과...협의회 측 “진정성 없다”
여론의 거센 비난에 견디지 못한 남양유업은 지난 9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중구 브라운스톤서울 엘더블유 컨벤션홀에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벌어진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 사과했다.

남양유업은 이날 영업현장 밀어내기(부당 강매행위) 등 잘못된 관행이 벌어진 사실을 인정했다. 아울러 잘못된 행위 개선책과 상생 방안을 발표했다.

아울러 10일 갈등관계에 있는 '남양유업대리점피해자협의회'를 경찰에 고소했던 것도 취하하고, 김웅 남양유업 대표가 직접 피해자협의회 측을 만나 사과했다.

김웅 남양유업 대표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회사 대표로 진심으로 고개 숙여 국민여러분께 사과드린다며" 밀어내기 행위 등 잘못된 관행이 일어난 사실을 인정하고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시스템을 만들어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수사와 공정위 조사에도 적극 협조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피해자협의회 측은 남양의 대국민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남양유업대리점피해자협의회와 시민단체들은 같은 날 오후 서울 중구 남양유업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남양유업은 대리점주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이날 근본적인 대책 마련 등을 위한 요구안을 발표했다.

이들 단체는 우선 밀어내기(대리점에 물품을 강매하는 행위) 영업방식과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에 대한 강매, 떡값 요구, 대리점주에 대한 폭언과 고압적 행동 등 불법행위에 대한 사죄를 촉구했다.

이어 재발 방지를 위해 협의회와 단체교섭을 실시하고 단체교섭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기 위한 지원을 할 것을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폭언 파문' 피해 대리점주 김모(53)씨는 "현재 공황장애까지 겪고 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대리점주들이 앞으로 영업하는데 힘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대리점주는 "지난 10년간 남양유업에 수없이 하소연했지만 그건 하소연이 아닌 절규였다"며 "음성파일 공개가 없었다면 남양유업의 사과도 없었을 것이다. 진정성 있는 사과가 있었으면 한다"고 촉구했다.

또다른 대리점주는 "지난 1월부터 남양유업 본사 앞에서 농성을 하며 자살까지 생각했었다"며 "자살을 하려고 배회하던 이곳까지 다시 오는데 너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한편 남양유업 측은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국민 사과와 피해자협의회 방문시 표명한 입장 외에는 달리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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