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고전읽기]군대는 폭군(暴君)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

정해용 / 기사승인 : 2013-05-06 09:58:10
  • -
  • +
  • 인쇄
시인과 함께 읽는 史記 - 15. 천명

撫我則后 虐我則? 무아즉후 학아즉수
나를 보듬는 이가 임금이요, 나를 해치는 이가 원수다 (書經 秦誓)
- 주(周)무왕이 주왕(紂王)을 정벌하러 나갈 때 진국 제후와 맺은 서사 가운데서



주왕(紂王)의 학정은 갈 데까지 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기다리던 귀인 여상(呂尙)을 얻은 뒤에도 서백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무엇을 더 기다리는 것인가. 바로 천명(天命)이었다.
은의 왕족이며 주왕의 신하인 조이(祖伊)가 주왕에게 급히 간했다. “하늘이 이미 우리 은의 명을 단절시켜 앞날을 보장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임금께서 음란하고 포악함으로 스스로 하늘과의 관계를 끊어버리셨고, 그 때문에 하늘이 우리를 버리신 것입니다. 이제 백성들은 ‘어찌하여 하늘이 재앙을 내리지 않으며 대명(大命)은 아직 나타나지 않는가’하며 원망하고 있습니다. 이제 왕께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러나 주왕은 “내가 태어나서 국왕이 된 것은 이미 천명이 있어서가 아니오?”라면서 태연하였다.

왕이 되는 데는 천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번 내린 천명은 무슨 일이 있어도 유효한가. 천명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주왕은 감히 이처럼 교만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천명은 무거운 것이어서, 왕이 덕을 잃었다 해도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서백이었다. 온 세상이 그에게 주왕을 심판하고 왕이 되어주기를 갈망하는데도 서백은 움직이지 않았으며, 마침내 수를 다하여 먼저 죽었다. 아들 희발이 뒤를 이어 제후가 되었다. 여상이 그의 사(師)가 되고 아우 단(旦)이 보(輔)가 되었다.

희발이 제후가 된 뒤 9년째에 동쪽으로 정벌을 나갔다. 그가 출병하자 소집하지도 않은 제후들이 각기 병력을 거느리고 동참하였는데, 제후의 수만 800명이나 됐다. 제후들은 스스로 감격하여 말하기를 “이제 두려울 것이 없으니 주왕(紂王)을 칠 수가 있습니다.”하고 그 길로 주왕을 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무왕이 만류하였다. “그대들은 아직 천명을 모른다. 정벌할 수 없다.”

그런데 곧 때가 왔다. 주왕을 보좌하던 신하들이 하나둘 떠나고 왕의 형제인 미자(微子)도 수차례 간언하다 절망하여 떠나버렸다. 삼촌들인 비간(比干)과 기자(箕子)가 아직 남아있었다. 비간이 “신하된 사람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충간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고언을 계속하자 화가 난 주왕은 마침내 “성인의 심장에는 구멍이 일곱 개나 있다고 하더이다”라며 비간을 잡아서 배를 가르고 심장을 꺼내게 했다. 너무 놀라 실성한 기자가 그대로 미친 척하면서 남의 노비가 되고자 했지만 주왕은 그를 잡아 가두었다. 왕의 혈족이라 해도 무사할 수 없게 되었다.

패악이 극에 이른 것을 보고 왕의 스승들인 태사(太師)와 소사(小師)가 왕실의 제기(祭器)와 악기(樂器)를 가지고 피신하여 주(周)나라로 찾아왔다. 왕실의 상징인 제기와 악기가 스스로 찾아왔으니 그것은 곧 천명이었다. 비로소 무왕은 군사를 일으켰다.

출정하는 날 거북 점괘가 불길하고 폭우까지 쏟아졌으나 사상보는 출정을 미루지 말도록 강력히 권하였다. 결심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오래 기다리며 몸을 숙인 것도, 결심이 선 뒤에는 어떠한 조짐이나 악조건도 무릅쓰며 전광석화처럼 행동에 옮긴 것도, 모두가 천명을 받드는 사람에게 필요한 행동이었다. 무왕은 제후들의 군대 앞에서 단결의 서약을 맺었다.

- 옛 사람이 말하기를 ‘나를 어루만져 주는 이가 임금이요, 나를 학대하는 이가 원수’라고 하였다. 독불장군 수(受=紂王)가 오직 위압을 펼치고 있으니 바로 그대들의 원수라. 덕을 심을 때에는 자비롭게 하지만 악을 없앨 때에는 근본까지 제거해야 한다.(<書經> 秦誓 = 진왕과 나눈 서약)

- 옛말에 ‘암탉은 새벽에 울지 않으니 암탉이 울어 아침을 알리면 집안이 망한다’고 하였다. 지금 주왕은 오직 여자의 말만 듣고 행하여 (…) 나라 안에서 악독한 짓이 횡행하니, 나, 발은 오직 하늘이 내리는 벌을 삼가 받들어 행하노라. (<書經> 牧誓 - 목왕과 나눈 서약)

드디어 진군의 깃발이 올랐다. 주왕이 그처럼 폭정을 하면서도 자신만만했던 것은 자신의 능력과 강력한 군대를 믿은 탓이었을 것이다. 과연 그는 ‘숲의 나무들처럼’ 많은 군사들, ‘주본기’에 따르면 무려 70만이나 되는 대군을 총동원하여 반군을 막게 했다. 그러나 군사들은 그를 위해 싸우지 않았다. 오히려 창을 거꾸로 돌려 주왕을 향해 몰려들었다. 폭군 주(紂)가 맞은 최후였다.


- 이야기 Plus
세상을 지배하는 권력을 향하여 반기를 들고 그 체제를 뒤집는 일을 쿠데타라고 한다. 그런데 어떤 것은 반란이 되고 어떤 것은 혁명이 되는가. 성공하면 혁명이며 실패하면 반란이 되는 것인가. 그러나 <사기>에서는 반란과 혁명을 가르는 기준으로 성패 여부가 아니라 천명(天命)을 들고 있다. 군주가 아무리 도를 잃었더라도 하늘은 함부로 그 천명을 바꾸지 않는다. 그러니 함부로 폐할 수가 없다. 무왕 희발은 하늘이 폭군을 완전히 버릴 때를 기다려야 했고, 동시에 그 천명이 자신에게로 분명하게 돌아올 때를 기다려야 했다. 주(紂)를 벌하기에 충분한 명분과 자신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에 충분한 여론의 지지가 바로 그것이었다. 천명을 잘 듣고 받든 까닭에 천년 제국의 창업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저작권자ⓒ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