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열전]커피와 고집

여선구 / 기사승인 : 2010-02-10 16:3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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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나 이탈리아를 보면 가업을 승계해 오랜 시간동안 대를 이어오고 있는 장인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회사는 일본에 있습니다. 서기 578년 설립한 ‘곤고구미(金鋼祖)’라는 회사로 장장 40대에 걸쳐 사찰과 신사, 불각 건축의 설계와 시공, 성곽 및 문화재 건축물의 복원과 수리를 전문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유구한 역사도 놀랄만하지만 사장이 비서를 두지 않고 항상 현장에 있어야 하며 기본에 충실하라는 기업 이념 또한 본받을만한 일입니다. 종을 만드는 이탈리아 회사 ‘폰테리아 폴티피시아 마리넬리’는 서기 1000년에 창업했습니다. 일본의 전통 여관 ‘법사’는 서기 718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바론 리카솔 리’는 서기 1141년부터 포도주를 만들기 시작한 이탈리아 회사입니다. 이탈리아의 유리 가공업체인 ‘바로비오 엔 투소’는 서기 1295년에 창업했습니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가진 기업들이 존재하는 것은 장인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경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중요할 터이지만 직업의 귀천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평생을 바친 장인들의 고집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일본의 커피 업계에는 유독 가업을 이어온 커피 장인들이 많습니다. 오사카에는 ‘하라오카 커피 집’이 있습니다. 1921년에 개업한 집입니다.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도 ‘터키식 추출법’만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터키식 추출법’이란 ‘이브릭’이라는 터키의 전통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분쇄된 원두를 몇 분간 담갔다가 ‘융’이라는 천에 걸러내는 방식인데 이 또한 오래 전부터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추출법이 투박한 만큼 별로일 거라는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마시는 순간 그 집의 역사만큼이나 깊은 맛에 탄성이 절로 나올 것입니다. 도쿄의 긴자에는 ‘람부르’라는 커피집이 있습니다. 1948년에 개업한 이 커피집의 주인은 가게와 함께 나이가 들어 이젠 여든이 훌쩍 넘어버렸습니다. 이 커피 집은 독특하게도 생두를 숙성시켜서 사용합니다. 1년이나 2년 정도가 아니라 30년, 40년을 숙성시켜 세상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진귀한 커피를 만들어 냅니다. 1970년부터 숙성시킨 콜롬비아의 맛은 평생 잊을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이었습니다. 도쿄 오모테산도에는 세월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낡은 간판의 ‘다이보’가 있습니다. 삐걱이는 2층 계단을 오르면 이젠 머리가 히끗히끗 해져버린 주인장이 낡은 동주전자로 언제나 똑같이 진지한 표정으로 커피를 내리고 있습니다. 긴자에 위치한 ‘십일방 커피 집’ 역시 손때 묻은 가구며, 커피 기구들이 그 세월의 흔적을 말해 주는 듯합니다. 매니저로 보이는 이에게 지금 사용하는 주전자가 얼마나 된 거냐고 물으니 자신이 커피를 처음 시작할 때의 바로 그 주전자이니 30년 정도 되었을 거라는 대답을 합니다. 당장의 이득에 눈멀어 하루아침에 ‘업종 변경’해 버리는 한국의 커피 집들을 보노라면 긴긴 세월 우직하게 고집을 꺽지 않고 지켜온 그들의 세월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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