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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북한의 해안포가 서해 공해상을 두드려 잠간이나마 긴장감을 조성했다. 근래 들어 북한이 대외적으로 벌이고 있는 개방와 대화 국면에 비추어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북한은 미국 대통령의 특사를 받아들여 6자회담 재개 등에 관한 대화를 시작했고 북미관계가 급격히 진전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남북한 양쪽에 대한 미국의 권유도 있었겠지만, 남북간에는 그동안 중단되었던 대화에 관한 교섭도 꽤 활발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 남쪽과의 경제교류를 위한 공식 접촉 일정도 잡혀있었다.
그런 북한이 갑자기 남북 경계에 있는 공해상에 포를 쏘아댄 일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근래 북한의 현실상황과 연관이 깊어 보인다. 북한의 경제적 위기는 체제 불안의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들 내부적으로 강경한 단속 정책들이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조심스런 대외 개방정책의 변화조짐 속에 남북 정상회담설도 흘러나왔다. 그런데 마침 그 즈음에 남쪽에서는 일부 유력 매체들이 ‘북한 체제 붕괴 대응 시나리오’라는 걸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것이 언제 적에 만들어진 것이든, 공개 유포되는 시점은 또 다른 중요성이 있다. 대미접촉과 대남 개방 등 유화적인 변화 속에 느닷없이 그들의 체제가 붕괴될 가능성이 크게 언급되는 것은 북한 정권으로서는 마른하늘 날벼락 같은 충격일 수 있다. 게다가 북한이 경제 환경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단행한 화폐개혁은 오히려 시장의 혼란을 초래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시장에서 소요가 일어났다거나 화폐개혁의 책임자가 문책성 좌천을 당한 것 같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이미 코너에 몰린 북한 정권이 대외 개방을 서두르는 것은, 그 체제가 위기상황이라는 것을 북한 주민들이 널리 눈치 채기 전에 조금이라도 먼저 안전판을 찾기 위한 고육지책일 것이다. 아직 버틸 수 있을 때 안전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전략의 기본이다. 그들이 스스로 버틸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안전판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체제의 위기’ ‘붕괴’와 같은 말은 그들 속에서 절대로 언급해서는 안 되는 금기어인 것이다.
남북간의 관계가 진전되면서 북한에서도 남쪽에 대한 정보채널이나 정보의 절대량이 늘었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것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한편, 자기 쪽의 단점이나 약점에 대한 비판이나 공세가 전파될 수 있는 채널도 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북한의 느닷없는 해안포 사격, 군사적 위기감 조성이나 과시행동은 자기들 내부의 체제를 단속하기 위한 정치적 행동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정치사회적 환경은 우리의 유신시대와 비견할 만하다. 당시 ‘북한의 남침위협’이라는 말은 집권자들에게 매우 강력하고도 편리한 체제 안정수단이었다. 대다수 국민들이 외부로부터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정보와 분석을 접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권력자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정보통’이나 ‘정보기관’ 등을 통해 남침 위협이 높아졌다는 발표를 하는 것만으로도 민심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선거 때마다 간첩선이 나타나고 북한의 군사장비가 휴전선으로 이동하는 것이 포착되며 DMZ에서 국지적인 충돌이 일어나곤 했다. 아는 사람들은 이것을 ‘안보논리’라 불렀는데, 폐쇄적인 국가에서 ‘안보’라는 것은 집권 세력에게 더 바랄 것 없이 완벽한 만능의 보약이었다. 지금 북한의 폐쇄성은 70년대 남쪽의 상황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바깥세상이 많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해도 그것은 단편적인 정보들이 유언비어처럼 퍼져 나가는 수준일 터이니 개방의 초기 상황 정도를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다.
모든 정보가 손쉽게 흘러 다니는 바깥세상, 남쪽 사람들에게는 이 포성이 별 의미 없는 일이 되고 있지만, 남북 경계선상에서 연일 대포알이 떨어졌다는 이 상황은 북한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큰 사건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북한 주민들은 물론, 바깥세상의 정보를 취급하는 핵심 요원들 사이에서도 감히 체제의 불안과 같은 말을 입에 올리거나 유포하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우리가 거쳤던 ‘안보논리’의 시대를 거울삼으면 북한의 느닷없는 군사행동도 이렇게 이해가 되는 것이다.
가뜩이나 경제도 어렵다는 북한이 값도 비싼 대포알을 아무 것도 없는 바다 위에 며칠동안이나 퍼부어댄 걸 보면 그들 체제가 얼마나 다급한 상황에 있는지를 짐작하기도 어렵지 않다. 그런데 북한의 체제가 하루아침에 흔들리거나 무너진다고 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좋은 일이 될지 부담스런 일이 될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니 북한의 체제를 흔드는 일이든 좀더 버티도록 도와주는 일이든, 앞뒤를 먼저 계산하지 않은 행동은 자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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