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그래도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정해용 / 기사승인 : 2009-12-21 10:3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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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작가 O.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란 소설은 현대의 고전으로 꼽힌다. 가난하지만 서로를 극진히 사랑하는 젊은 부부가 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선물을 하고 싶은데 둘 다 돈이 없어 고민한다. 젊은 아내는 돈 없는 것이 안타까워서 혼자 애태우다 눈물까지 쏟아내는데, 결론은 둘 다 극진한 방법으로 상대의 선물을 사는 것이다. 아내는 남편 모르게 아름다운 금발머리를 잘라 팔아서 남편에게 줄 시계줄을 사온다. 그날 밤 귀가한 남편에게 선물을 내놓지만 남편은 이제 시계줄이 필요가 없다. 줄 없는 시계를 팔아 아내의 금발을 위한 머리핀을 샀기 때문이다. 적어도 O. 헨리가 작품을 내놓은 1900년 무렵의 사람들은 이 소설을 읽으며 동병상련의 감동을 느꼈다. 그들의 뜨거운 반응으로 작품은 고전의 반열에 오른다.



요즘 사람들은 어떻게 읽고 있을까. 어린 아이들의 논술 교실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은 더 이상 감동적인 부부애 따위의 테마로 읽히지 않는다. 더 이상 머리핀 하나 살 돈이 없을 만큼 가난한 시대가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런 감동은 신파조에 지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동화로는 구두쇠 스크루지영감도 고전 가운데 하나다. 1800년대 중반에 찰스 디킨스가 쓴 ‘크리스마스 캐롤’이란 작품 속의 주인공이다. 부자지만 구두쇠인 스크루지에게는 마음을 터놓을 친구가 하나도 없다. 부자가 되기 위해 너무 각박하게 살았다. 그런 스크루지는 크리스마스라 해서 ‘가난한 것들’이 들떠 지내는 것이 가당찮게 보인다. 평소 삼시 세끼 먹을 것도 없다는 ‘가난한 것들’이 유난스럽게 특별한 음식을 사고, 선물을 사고, 화려한 전등을 밝히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그들의 가난을 더욱 돋보이게 할 뿐이다. 악착같이 모으고 아껴 부자가 된 스크루지가 보이게는 그렇다.



- 12월25일? 일년중 하루, 그저 숫자에 불과한 하루가 아닌가. 가난한 것들은 어째서 한결같이 구실만 생기면 흥청망청 놀기를 좋아하고 아낄 줄을 모를까. 그러므로 그들의 가난은 당연한 것 아닌가. 부자들이 동정해야 할 의무가 없다. 저들은 즐기면서 가난한 것이고, 나 스크루지는 고독과 절약을 감수하기에 부유해진 것이다. 그러면 세상은 공평한 거야.



그날 밤 크리스마스 귀신(靈)들에게 이끌려 스크루지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본다. 그 역시 가난했던 과거와, 이웃을 돌아볼 틈도 없이 악착같이, 그러나 외롭게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덧없이 죽은 자신의 사후,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자신의 죽음 직후를 본다. 돌아보면 세상에 존재한 의미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죽음이다. 살아있는 동안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지도 못했고, 그러기에 죽어도 아쉬워하는 사람이 하나 없다. 더 끔찍한 것은 그 자신조차도 행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2.
크리스마스는 유난스런 추위와 함께 다가왔다.
돈이 잘 돌지 않는 연말은 한층 더 쌀쌀하다. 대통령 말씀이 “서민들이 아직 경기가 좋아졌다는 걸 느끼지 못할 뿐”이란다. 이것을 서민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해석해보면 이렇게 옮기는 게 가능할래나. “경제는 분명 좋아졌으니, 제발 그것을 느끼려고 노력해라. 따뜻해질 것이다.” 신문 방송이 ‘좋아졌다’는 말을 자꾸 반복해 들려주고, 그 말에 귀를 기울이노라면 정말 ‘좋아진 현실’을 느낄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내 지갑에 돈이 들어오지 않았을 뿐 국가 경제는 예전보다, 이전 정권들 때보다 반드시 좋아졌다는 걸, 믿다보면 그것이 현실이 되리라고 기대하란 것일까.



한동안 우리는 머리핀이나 시계줄 하나 때문에 눈물겨운 안타까움이나 감동을 느끼는 것은 오십년 백년 전에나 있는 얘기일 거라고 느꼈다. 그런데 요즘은 이 소박한 신파조 소설조차 새삼스런 감동으로 읽힌다. 한국 사람들이 그동안, 가난의 무서움을 너무 오래 잊고 살았던가 보다. 우리나라 실업증가율이 OECD 국가들 가운데서는 상대적으로 낮아서 비교적 양호한 편이란다. 절대 실업률 같은 건 뒤로 제쳐두고 ‘증가율’이라든가 지역별 상승률 같은 것으로 긍정적 신호만 확대 보도하는 매스컴들은 ‘좋다고 믿어라’는 정부의 최면에 동반하여 춤추는 꼭두각시들 같다. 청년실업이 7.7%고 아예 취업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든가, 돈 쓰는 사람이 줄어 썰렁한 연말을 맞고 있는 중소상인들의 고통 같은 것은 아예 논외로 하자는 것인가.
어쨌든 구세주가 나신 크리스마스에, 사람들은 잠시라도 흐릿한 희망에 기댄다. 스크루지가 회심하는 것 같은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그래, 그런 ‘동화’라도 갖고 있어야 이 추위를 견딜 수 있을 것 같은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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