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이란 고전이 없었다면 로맨스 작가 셰익스피어는 없었을 것이다.
서로 사랑하지만 그것을 이룰 수 없는 애절함, 그 애절함을 보면서도 냉혹하게 돌아선 마음을 풀지 않은 채 결국은 소중한 자식들을 잃고 마는 어리석은 두 가문. ‘비극’에 그칠 뻔한 이 스토리가 로맨스로 승화된 것은 그나마 자식들이 죽은 뒤에라도 로미오의 몬테규 가문과 줄리엣의 캐플릿 가문이 감동을 일으켜 서로 화해하고 더 이상의 복수극을 그치게 되었다는 로맨틱한 결말이 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걸작들은 대부분 순수 창작물이 아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의 기원을 그리스신화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를테면 ‘로미오와 줄리엣’은 스토리가 매우 유사한 피라모스와 티스베의 슬픈 사랑 전설(Pyramus and Thisbe)에서, ‘리어왕’의 처절한 최후는 자기 인생을 자학하며 빈들에서 방황하는 오이디푸스왕의 전설에서 뿌리를 찾을 수가 있다.
아주 오랜 고전 신화의 이야기를 본떠 또 다른 세기적 고전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은. 이런 사건들이 어느 한 세대에만 일어나는 별스런 사건이 아니라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닌 사건이기 때문이다. TV드라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독자를 열광케 하는 작품에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가 들어있다. 누구나 겪는 이야기거나 누구나 꿈꾸는 이야기가 있을 때 사람들은 쉽게 감동하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지난 10일 미국 대통령의 특사 스티븐 보즈워스가 사흘간의 평양 방문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북한과 미국 사이의 관계 개선과 관련된 미국 특사의 북한 방문은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60년 전 전면적인 전쟁을 벌이고 끝을 맺지 않은 휴전상태로 서로 적대해온 두 정부 사이의 화해나 어쩌면 수교까지도 전망할 수 있는 직접 교섭은 많은 면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만하다. 우선 ‘전쟁과 평화’라는 인도적이고 고전적인 관심에서도 그러하지만. 이러한 관계진전이 가져올 주변 정세의 변화(그것은 필연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정치역학이나 경제구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북한의 경제적 곤란은 그들 내부의 정치적 경직성과 후진성에서 자초된 면이 큰데, 그 못지 않게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견제에 의한 고립의 여파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었을 것이다. 이제 미국과 정식 수교를 하게 된다면 북한은 국제시장에서 보다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벌일 수 있다. 가난한 동남아 국가들이 그들의 값싼 경작지와 땅과 인력을 이용해 선진국과 경제 거래를 하고 있는 형태를 참조한다면, 북한 또한 어떤 형태로 국제시장에서 그들의 역할을 찾아나갈 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언어와 문화가 크게 다르지 않은 한국을 비롯하여, 역사적으로 교류가 많았던 중국 일본 등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 낮은 곳의 물이 높은 곳으로 흘러들어가기는 어려워도 높은 곳의 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드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 북한이 미국과 수교할 경우 경제적 변화는 급격하게 진행될 것이다.
경제 여건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정치 사회적 변화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것이 북한의 체제에 미치는 영향은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당장 굶어죽을 정도의 가난한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뜸을 들이며 주저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지금까지 대세는 북한과 미국의 화해가 주류를 이루고, 그동안 두 정부 사이를 가로막았던 냉전의 여운이 이것을 가로막는 정도로 작동해 왔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대북화해를 전제로 내세운 이상 이 흐름은 더 이상 지체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북한의 관계는 그렇다 치고, 남북관계는 또 다른 관심사다.
사실, 우리로서는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순간이다. 몇십만이라 하던가. 60년 전에 헤어져 생사도 모르고 지내온 남북 이산가족이 아직도 수십만인데, 이 가운데 서로 생사를 확인했거나 단 한번 재회하여 이산의 한을 푼 이산인은 아직 절반도 되지 않는다. 이들은 한을 품은 채 늙어 죽어가고 있지만 아직 전화 한 통, 편지 한 줄 주고받지 못하는 처지다. 인권이 살아있고 인도주의가 살아있는 나라라면 이해되기 어려운 일이다.
고전 신화와 셰익스피어 희곡 속의 철천지원수 가문은 그들의 귀한 자식들이 하나씩 죽는 꼴을 보고 로맨틱한 화해를 이루었지만, 이 못난 남과 북은 수십만 노인들이 한을 품고 죽어가는데 가슴아파할 줄도 모른다. 한동안 진전되던 화해의 기류조차 냉전시대로 되돌리는가 싶더니,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미국이 북한을 돕겠다는 이즈음에야 뒤늦게 대북지원을 논하는 정도가 아닌가. 부끄럽다. 로맨틱한 화해의 스토리에 감동하는 것이 인류의 감정이라면, 지금같은 남북간의 대립과 냉전은 조소의 대상일 게 뻔하다. 정치적 통일까지는 알 바 아니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소통의 길을 여는 일이라면 지금도 일순이 급한 것이다.
[저작권자ⓒ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