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24시간 편의점. 올해 매출의 최대공신은 삼각김밥이다. 단돈 몇백원이면 밥 한 끼를 먹은 것으로 칠 수 있으니 가장 간단하고 값싼 끼니 수단이다. 식사량이 적고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이들에게 인기다. 좀 더 먹어야 양이 차는 사람들은 식당으로 갈까? 그것도 아니다. 올해 눈에 띄게 장사가 잘된 업종이 바로 도시락 판매업이라 한다. 대표적인 편의점 가운데 하나인 훼미리마트는 올 한 해 동안 월 평균 70만개씩의 도시락을 팔았다. 지난해는 월 8만개 정도였던 것이 열배 가까이 신장세를 보였다. 뿐 아니라 요즘 들어서는 월 150만개까지 다시 배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도시락 전문업체의 대표주자인 H도시락은 지난 봄 이미 전년대비 매출이 배나 증가했다. 도심 빌딩가의 젊은 직장인들 뿐 아니라 외식을 간편히 즐기려는 젊은 주부들까지 도시락을 애용한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점심을 해결하러 가던 사무실 주변의 식당들은 어찌되고 있을까. 확고한 단골이 형성된 집들을 제외하면 대다수 불황의 골에서 허덕이고 있다. 끼니와 관계없는 커피 음료점들은 거의 위기상황이다. 외식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정황증거는 곳곳에서 반영되고 있다.
- 업소들이 식재료를 주문하는 양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재료를 갖고 가보면 모두들 안 된다고 아우성들이에요. (식재료 납품업자)
- 카드 결제 건수는 크게 줄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건수 대비 매출액의 규모는 크게 낮아졌습니다. 주머니에 현금이 없으니 소액결제까지도 신용카드를 이용하는 경우가 늘었다는 걸 알 수 있지요. (신용카드 단말기 관리회사)
당장 현금 흐름의 통계는 몇 달이나 지나서야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경제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유동성의 경색은 이미 위태로운 수준이다. 시민들은 이제 단 몇천원의 음식값 커피값을 계산하기 위하여 신용카드를 꺼내든다. 지갑 속에 돈이 들어오지 않으니 일단 당겨쓰고 있는 셈이다. 커피점의 하루 매출 가운데 신용카드 매출비율이 70~80%를 오르내리는 것도 이제는 새삼스런 현상이 아니다.
- 요즘은 보기 힘든 구권 화폐가 금고에서 막 나온 빳빳한 모습으로 돌아다녀요. 장롱에 비축해두었던 돈들이 흘러나오는 게 아닐까요.
그러면서 사람들은 궁금해 한다.
- 그렇다면 돈들은 모두 어디에 가 있는 것일까요.
정부는 4대강을 비롯한 몇몇 정책사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겠다며 조기집행을 강력히 추진했다. 정부기관이 사업을 앞당긴다는 것은 비용지출을 앞당긴다는 뜻이다. 정부가 써야 될 돈을 조금이라도 앞당겨 쓴다는 것은 당장 시중에 돈이 돌아 경기가 살아나게 하려는 뜻이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정부의 노력도 무위인 것 같다. 돈이 돌지를 않는다. 정말, 정부가 정책사업의 조기집행을 통해 서둘러 풀고 있는 돈들은 대체 어디로 가서 가만히 숨어버리는 것일까. 아니면 큰 단위의 뭉칫돈들이 일반 시민들은 구경도 할 수 없는 별세계에서 그것들만의 은밀한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 불황은 무슨? 100만원대 화장품 ‘불티’
이런 신문기사를 볼 때마다 정말 큰돈들은 그들끼리 어울리는 별세계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조금이라도 일반 서민들의 시장으로 흘러나오지 않으려고 꼭꼭 숨어 잠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책사업 뿐인가. 정부는 지난 6월 5만원 화폐 신권 발행을 시작하면서 두어달 사이에 1억장 넘는 양을 찍어냈다. 적어도 5조원 이상의 새 화폐가 생겼다. 그것이 무상으로 시중에 풀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유동성 증가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원론적으로 상식에 속한다. 적어도 돈이 모자라서 아래까지 안 오는 것은 아닐 듯하다. 돌지 않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돈은 돌아야 돈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라를 인체에 비유하자면 돈은 피와 같은 것이다. 돈이 잘 도는 세상은 사방팔방 유통이 잘되어, 많지 않은 돈으로도 유쾌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예산규모며 화폐발행 규모가 늘어난다 해도 그것이 제대로 돌지 않고 어디선가 정체되거나 특정 부문에 쌓여 공회전을 하고 있다면, 그 사회가 건강해지기는 힘들다. 상위 몇 퍼센트에서는 돈이 남아돌아 잔치를 벌인다 하더라도, 대다수 중산층과 서민들(인체에 비유하자면 수족이나 팔다리 근육)이 힘을 잃고 기력과 희망을 잃어간다면 이윽고 사회가 병들어 눕는 것은 시간문제 아니겠는가.
돈을 많이 찍어내고 정책집행을 통해 빨리 풀어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그것이 제대로 돌 수 있는 자리와 방법을 찾아 돈을 풀어놓는 지혜를 정부가 강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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