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계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회사에 다니고 있던 한 청년이 최근 다른 회사로 직장을 옮겼다.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청년의 입장에서 이직은 조건이 불리했다. 있던 회사에서는 어지간한 대기업 수준의 연봉과 안정된 사원복지 등 비교적 좋은 조건이 보장되었으나, 새 직장에서는 몇 달 간 임시 계약직 신분을 거쳐야 한다는 불안정한 조건인데다 그에 따라 책정된 월 단위의 급여 또한 전보다 못했다. 연봉으로 치면 거의 1/3이 줄어드는 조건이지만 청년은 그러한 조건을 감수했다.
청년이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면서까지 회사를 옮긴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얼핏 가장 큰 이유는 조직 내에서의 인간관계처럼 보였다. 조직이 특정 학연과 개인적 유대관계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그 ‘라인’에 직속하지 않은 사원들은 그 중심 인맥의 ‘들러리’와 같은 분위기가 팽배했다고 한다. 이것만이 문제의 전부는 아니었다. 오히려 문제의 핵심은 따로 있었다. '책임자(상급자)들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를 모른다'는 게 문제였다.
기업은 단순한 친목집단이 아니다. 이익달성을 위해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구체적인 활동 계획을 따라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 계획을 구체화하는 것은 책임자들의 몫일 것이다. 구체적인 계획과 일정이 세워진 다음에야 실무사원들에게 매일 매일, 또는 일정 기간에 해야 할 업무를 구체적으로 지시할 수가 있다. 신입사원을 뽑고 교육하는 일도 구체화된 계획과 일정이 있어야 시작할 수 있다.
그런데 청년이 속한 파트의 책임자와 중간 간부들이 알고 있는 것은 돈이 될 만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는 대전제뿐,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어떤 일정으로 추진할 지 스스로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 간부들이 프로그램 개발 분야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여 실무를 잘 알고 있지 못하다는 데 있었다.
IT 업계에는 배고픈 개발자들이 지하셋방에서 밤새워 만든 프로그램이 성공하여 어느날 갑자기 대기업으로 등장한 회사들이 적지 않다. 배고픈 개발자들은 더 이상 회사의 주인이 아니다. 대박 프로그램을 사들인 대기업들은 이제 더 좋은 교육을 받는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을 채용하여 충분한 보수와 편안한 작업실을 제공하면서 더욱 향상된 새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려고 하지만 그런 시도가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대개 문제는 성공한 프로그램을 사들인 대기업들이 이 부문에 경험 없는 ‘자기 사람’을 책임자로 들어앉히는 데서 시작된다.
배고픈 개발자들은 자기 아이디어를 따라 마음대로 시험 방향을 정할 수 있었고 시나리오부터 프로그램까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수없이 시험을 거듭하며 ‘자기 작품’을 만들었다. 일을 시작하는 시간도 마치는 시간도 자기 개인의 시간사정이나 컨디션에 따라 그때그때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조직화된 대기업 개발실에서는 많은 개발자들이 각각의 담당 부문에 집중하여 일을 해나간다. 만일 이 조직이 한 사람이 움직이듯 척척 손발 들어맞아 돌아간다면 혼자서 하는 것보다 월등 크고 가치 있는 작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손발이 들어맞지 않는다면 아무리 훌륭한 인원으로 막대한 예산과 시간을 투자해도 아무 것도 생산해낼 수 없다. 겉에서 보기에는 무언가 잉태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속에 아무 것도 없이 헛배만 불러오는 ‘상상임신’과도 같다. 각 부문을 원활하게 조직화하고 연결시키며 각 부문 사이 작업속도의 시간차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효율적인 컨트롤 타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충분한 식견이나 자기 구상을 갖고 있지 못한 책임자는 이러한 역할에 실패함으로써 조직을 쓸모없게 만들기도 한다. 조직원들로부터 신뢰를 잃어 권위도 서지 않는다. 잃어버린 권위를 스스로 보상받기 위하여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여 조직을 패거리 집단으로 변질시키거나 자기 직급에 기대서 직원들을 인격적으로 억압하기도 한다. 조직의 매끄럽지 않은 인간관계도 기실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일하는 사람 모두가 힘은 힘대로 쓰면서도 정신적 피로에 시달리게 된다. 급기야 조직에서 이탈자가 늘어나, 팀은 와해위기에 몰리게 된다.
싸움에 무능한 양 한 마리가 이끄는 100마리 사자의 군대와 싸움에 능한 사자 한 마리가 이끄는 100마리 양의 군대가 싸운다면 누가 이길까. 손자병법은 한 마리의 사자가 이끄는 양의 군대가 사자 대군을 이길 수 있다고 답한다.
성공적인 조직은 효율성을 생명으로 한다. 피터 드러커는 ‘조직의 목적은 오직 하나, 평범한 사람이 평범하지 않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갈파한다. 평범한 개인들의 힘을 모아서 그 시너지 효과로 그 기업만의 지속적인 발전과 성공의 동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시스템은 기업 고유의 문화적 토대에서 나온다. 그것이 바로 기업문화다. 넉넉한 예산으로 최고의 인재들을 모아놓고도 소모적인 인간관계에만 집중하는 그룹에서는 효율적인 생산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인재를 중시하되 그들의 능력을 목표달성을 향해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조직만이 조직원 개개인의 성취와 기업의 성취를 동시에 성공시킬 수 있다. 유능한 컨트롤 타워, 책임자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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