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은 절정을 지나고 길바닥엔 무심한 낙엽이 쌓인다. 가을바람 세차게 불면 낙엽은 길을 따라 물결치듯 흘러간다. 도심의 아스팔트 거리는 물이 없어도 강물이 된다. 흐르는 물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지만 흐르는 시간은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렇게 무심히 흘러가노라면 청년은 중년이 되고 중년은 노년이 되어 그 어느 곳엔가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게다. 그렇다. 무심하고 싶은 시절이다. 마음을 쓰자니 생각하고 걱정해야 할 일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아무리 머리를 쓰고 생각을 해도 답을 찾기 어려운 일이 너무나 많다.
국제 정세의 변화라든지 세계적인 신종 플루의 유행 같은 것은 고사하고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일만 헤아리려 해도 다하기가 어렵다. 당장은 개개인의 발등에 떨어진 물가며 취업난 같은 일상사만으로도 골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상가가 밀집한 어지간한 곳들은 요즘 손님이 없다고 이구동성 탄식이다. 물론 사람들이 먹고 마시기를 중단한 것은 아니다. 어딘가에서 먹고 무엇인가 마시고 있을 것이다. 다만 언제든 그들을 찾아볼 수 있던 곳에서 지금은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른바 불경기다. 이것이 장기화되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구하려는 학생과 주부들은 법정 최저임금인 시간당 4천원의 아르바이트 자리도 쉽게 얻을 수 없어 여러 곳을 전전하고 있다. 식당이든 마켓이든 손님이 넘쳐야 판매원을 늘릴 터인데, 주말이나 저녁시간 등 특정한 시간대를 제외하고는 거의 한산한 실정이니 아르바이트 자리인들 넉넉할 리가 없다. 벌지 못해 쓰지 못하고, 그들을 채용해 급료를 주어야 할 기업들은 장사가 안 되니 채용할 수가 없다. 악순환이다. 채용이 쉽게 안 된다고 해서 섣불리 제 손으로 장사에 나서기도 용이하지가 않다. 크든 작든 장사를 시작하려면 그만큼 투자할 밑천이 필요한데, 요즘 같은 불경기라면 섣불리 투자해서 밑천을 건질 수 있을까 자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역시 악순환이다.
먹고 사는 일상 자체가 힘들어지면 사람들은 지금 현실에 책임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불만이 커지게 마련이다. 28일 전국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텃밭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패배한 것은 이러한 불만의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그 책임이 명확하게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현실에 책임을 지닌 사람들을 비토하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무엇이 대안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신할만한 답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여당을 버리고 야당에게 투표를 하면서도 그 양상이 그다지 확연하거나 전면적이지 못한 이유일 것이다.
세월이 어수선할 때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은 바로 뚜렷이 대안을 제시해줄 지도자다. 어려운 때에 살 길을 보여주는 사람을 메시아라고 한다. 어지러운 때일수록, 어려운 때일수록, 구원자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은 가열되기 마련이다. 이런 바램이 사이비 신흥종교나 메시아나 미륵 기원사상으로 발전되기도 하고, 그런 기댈만한 존재를 찾지 못할 때는 시대적 염세주의로 변질하기도 한다. 그러면 세상에는 종말론이 등장하고 UFO라든가 신비주의 같은 이상한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도 한다. 난데없는 구세주나 生佛이 이런 즈음에 등장하더라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는 법이니까. 요즘 케이블 TV에는 권위있는(?) 퇴마사들이 등장하여 귀신을 추적하기도 하고, 괴상한 철학이나 취미를 가진 이른바 외계인들을 초청하여 그들의 평범치 않은 정신세계를 분석해 보여주기도 한다.
재미로 하는 것이야 뭐 어떠냐고 할 수도 있다. 역시 신기한 것은 새로운 것만큼이나 재미있는 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들이 새로운 성취동기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단지 기이함에 매료되기 쉬운 요즘 세태를 상업적으로 적절히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재미만큼이나 독성도 높은 마약이 될 수도 있다. 살면서 주의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나 청소년들이 미래에 대한 기대나 희망을 잃는다는 것은 더욱 불행한 일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희망으로 꽉 차있다 하더라도 인생이란 그리 녹록한 것이 아닌데, 젊어서부터 아무런 동기가 부여되지 않는 삶이란 얼마나 더 팍팍할 것인가.
세월이 흘러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다 하더라도, 시간은 어딘가로부터 끝없이 흘러올 것이고, 그 어딘가에는 지금 현실보다 얼마든지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꿈만은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 될지 알지도 못하면서 믿는다는 것은 어리숙한 일 같기도 하지마는, 희망이나 꿈이라는 것은 이 막연한 세상을 항해하는 데 필요하고도 가장 유력한 에너지원이다. 어쩌면 이 시대의 무기력은, 마침 찾아온 가을 탓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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