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동물의 대표로 개미와 꿀벌이 꼽힌다.
꿀벌은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잠시도 쉬지 않고 거의 하루 종일 어딘가를 오가며 꿀을 수집하고 그것을 자기 집안에 비축한다. 벌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꽃이 피지 않아 먹이를 구할 수 없는 계절이 되었을 때라도 안전하게 집안에 은신하며 생명을 유지하려는 데 있다. 일종의 ‘은퇴 이후’에 대한 대비인 것이다.
그들의 바램대로라면, 여름동안 쉬고 싶은 마음도 물리치고, 먹어치우고 싶은 욕망도 참아낸 댓가로 겨울에는 맛있는 벌꿀을 마음대로 먹으면서 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꿀벌들의 생애는, 그들이 바란대로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뜻하지 않은 포식자의 침범으로 집은 무너지고 비축한 양식은 빼앗긴다. 인간도 꿀벌에게는 일종의 포식자인데, 그나마 인간은 벌들에게 집(벌통)을 제공하고 꿀을 가져가는 대신 설탕물이라도 남겨준다. 목숨이라도 부지하게 된 벌들에게는 곰과 같은 야생의 포식자에 비해 인간과의 타협이 그래도 낫다고 판단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열심히 일해 번 꿀을 인간에게 고스란히 바치고 자신들은 겨우 설탕물을 얻어먹는 꿀벌의 신세란, 단적으로 표현하면 노예의 신분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어쨌거나 살아남는다는 것 외에 거의 모든 이익을 포식자에게 바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집단에서 대다수 사람들과 소수 지배층과의 관계가 이처럼 꿀벌과 농부의 관계처럼 형성되는 경우도 있을까. 과거 신분제사회 시대를 돌아보면, 그런 관계는 얼마든지 있었다. 대다수 백성은 꿀벌이나 개미처럼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 미덕이었고, 그들이 거둔 소출 가운데 가장 좋은 것과 가장 값진 것을 차지하는 것은 제 손으로 흙 한번 만져보지 않은 소수 지배층이었다. 이것은 적어도 우리 한국인들의 눈에는 아주 오래전 지나가버린 봉건 신분제 사회 때의 일일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엿하게 누구나 자기가 일한 만큼 정당하게 이익과 권리를 가져갈 수 있는 개화된 민주시대다. 그러므로 지금도 만일 열심히 일한 사람이 제 권리와 이익을 일하지 않은 사람, 제3의 포식자에게 빼앗기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시대착오적이다.
하지만 사회 현실을 정직하게 들여다 본다면, 우리 사회에서도 열심히 일한 꿀벌에게 그에 상응하는 안락한 노후가 정당하게 100% 보장되는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오히려 적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당장 은퇴하여 노후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젊어서 수고한 대가를 충분히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어본다면, 그렇다고 답하는 사람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젊어서 열심히 일한 대가와 결실은 누구의 수중에 들어가 있을까.
며칠 전 서점에 들렀다가 눈에 띄는 책을 한권 발견했다. 오마에 겐이치라는 일본인 문명비평가가 쓴 책으로 <지식의 쇠퇴>란 제목을 달고 있다.
우선 일본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최근 현상들을 열거하고 있는데, 오마에는 이것을 일본 사회의 '低 IQ化'라는 개념과 연관지여 해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책 읽기를 어려워할 뿐 아니라, 어떠다 밀리언셀러가 나오더라도 그것은 남들이 읽는 책이니까, 매스컴이 선전한 책이니까 알아두기 위해 읽는 ‘편승하여’ 읽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내용도 대개 '지금 당장 자기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책에 국한되고 있다. TV 프로그램은 상식적인 문제도 몰라서 엉뚱한 소리로 무식을 경쟁하는 연예인들의 퀴즈쇼나 연예 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이 인기다. 정치선거에서는 어떤 감정적 캠페인에 휩쓸려 투표를 행사하고는 자기가 어떤 정책을 지지했는지 알지 못한다. 이런 것들이 지금 일본에 만연한 현상이고, 그 배경은 일본 사회의 저 아이큐화가 있다. 한마디로 일본 사회의 머리가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마에의 통박은 따끔한 나머지 통쾌하게 들릴 정도인데, 그것이 결코 이웃나라의 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는 느낌에 가슴이 다 먹먹해진다.
사회 구성원의 아이큐가 내려갈수록 이득을 보는 층은 분명히 있다. 다시 꿀벌의 얘기로 돌아가자면, 만일 시민들이 아무 생각 없이 꿀을 모으는 것에만 열중하고 누가 그것을 노리는지, 그것이 누구에게로 돌아가는지 생각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다면 그 사회는 성실한 ‘저지능’의 일벌들과 그들이 모은 꿀을 독점하는 포식자의 관계로 형성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마에는 일본에서 바로 머리 나빠진 국민들 위에서 포식자로 군림하는 몇몇 이익집단들을 명시하고 있다. 국민의 머리가 나쁠수록 행복해(?)지는 정부관료집단과 정치집단, 외국인 투자자들, 사모펀드 같은 금융대리인들을 꼽는다. 그 논리적 증거는 수많은 사례가 뒷받침한다. 열심히 일해서 겨우 설탕물이나 얻어먹는 '저IQ 집단'이 되지 않으려면 국민 개개인이 ‘각성’해야 한다고 오마에가 주장한다. 최소한 이 책의 목차만이라도 한 번씩 훑어봐 두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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