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열전]커피와 가을

여선구 / 기사승인 : 2009-10-19 10:5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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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깊숙이 양 손을 꽂은 채, 낙엽이 지는 거리를 한 남자가 걸어가고 있습니다. 불현듯, 단단히 여민 베이지색 트렌치코트 자락이 바람에 흔들립니다. 낙엽도 따라 흔들립니다. 낙엽을 쫓던 남자의 시선이 먼 하늘 어딘가에서 멈추고 운명처럼 온몸으로 전해오는 고독을 맞이합니다. 그렇습니다. 바야흐로 남자의 계절, 가을인 것입니다.



유치한 유행가 한 자락도 가을에 내리는 빗소리를 배경 삼아 부르면 멋진 가수의 목소리 로 들립니다. 서툰 옛사랑의 기억도 가을밤에 이야기 하면 영화와 같은 추억이 됩니다. 유독 가을을 노래한 시인들이 많은걸 보면 가을은 분명 사람의 감정을 풍부하게 하는 오묘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가을은 커피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커피의 맛이 절정에 이르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한국의 기후는 커피를 볶는 사람들에겐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닙니다. 똑같은 조건이라도 그 날 그 날의 날씨나 계절에 따라 기압이 달라지는데 바로 이런 외부 기압이 커피를 볶는데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이동성 고기압이 지나는 가을이 커피를 볶기엔 최적의 계절입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가을엔 커피가 더 맛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습니다. 특히 비오는 가을날에 마시는 커피라면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비오는 가을날의 커피가 화창한 봄날에 마시는 커피보다 훨씬 맛있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온도와 기압의 영향 때문입니다.



커피를 마시게 되면 체내의 에너지 가동률이 10%정도 상승합니다. 기온이 내려가기 시작하면 인간은 겨울을 대비해 활동량을 줄이게 되는데 커피는 이러한 유전적 본능에 활기를 불어 넣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추워진 날이면 어김없이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간절해지는 것이지요.



또한 비가 오는 날이면 낮은 기압으로 인해 커피의 향은 더욱 진하게 느껴집니다. 기압이 낮으면 강한 휘발성의 향이라고 하더라도 공중으로 쉽게 흩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산 정상에서 마시는 커피가 맛있게 느껴지는 것도 찬 공기와 낮은 기압의 영향이 있기 때문인 것이죠. 핀란드와 같은 북유럽 국가의 커피소비량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것도 그런 이유일 것입니다. 재밌는 것은 프랑스의 커피입니다. 유럽을 여행했던 사람들 가운데 프랑스에서 마셨던 커피가 가장 맛있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프랑스의 기후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실 프랑스의 호텔 커피는 유럽에서 최악이라는 평을 듣고 있는 실정이니 말입니다.



이유야 어떻든 올 가을엔 필자가 볶는 커피 향을 배경삼아 희미한 옛 사랑이 아닌 현재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가을 남자의 모습이 더 자주 눈에 띄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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