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사회적 불행으로 배불리는 사람도 있나

정해용 / 기사승인 : 2009-09-28 15: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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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까뮈의 소설 <페스트>는 현대소설의 고전이다. 까뮈는 오링이라는, 지중해 연안의 작은 도시에서 일어난 전염병을 상정하고 그것과 싸우는, 혹은 그것으로 인해 희생되거나 그것으로부터 회피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그러나 실제로 이 소설이 담고자 했던 것은 전쟁이다. 1940년대 들어 점점 그 전망이 분명해지는 유럽 전쟁의 기운을 느끼면서부터 까뮈는 소설을 구상했다. 그리고는 실제 2차대전이 벌어지고 그것이 끝나 살아남은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간 뒤인 1947년에야 탈고되어 소설은 세상에 나왔다. 소설에서는 이 극단적인 전염병으로 인해 외부세계와의 왕래가 단절됐던 도시의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환호하는 모습으로 그 마지막을 그렸다.



전쟁을 전염병으로 비유한 소설이 어떻게 가능할까. 거기에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쟁이든 전염병이든, 어떤 사회에서 시작되었을 때 거기 사는 사람 누구도 그것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무관심하려 해도 무관심할 수 없고, 평온한 척 하나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것에 가담하든 안하든 그것으로 인해 죽을 수 있으며, 혹은 직접 관련이 되었더라도 죽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그것으로 인한 무고한 희생이 발생할 때 처음에는 분노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이상 특별히 놀라거나 분노를 나타내지 않는다. 더 지나고 나면 자신이나 가족이 무사한 것에 감사하게 된다. 전쟁과 전염병의 공통점이다.



그리고 전쟁과 전염병은 그것이 끝났을 때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불행한 사건’이라는 교훈을 남긴다. 누구도 그것을 조장하거나 바래서는 안 되는 일로 치부된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든 다시 벌어진다. 그 배후에는 욕심이 있고 방심이나 무심이 있으며 무지가 있다.



지금 세계를 떠돌고 있는 신종플루의 위협은 물론 소설속의 ‘페스트’에 비할 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 세계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유행성 질병을 대하는 세계 인류의 대응에는 분명 소설 속 오링시에서 일어났던 여러 반응들과 유사한 현상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의 위협이 매우 심각하여 세계적으로 백만 이상이 희생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의사들이 있는가 하면, 그 위험이 너무 부풀려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의사들도 있다. 행정당국은 시민들의 일상적인 활동을 규제할 수도 있는 예방조치들을 어느 선까지 취해야 하는가를 두고 밀고 당기기를 계속한다. 위험을 극도로 경계하여 1천명 이상이 모이는 야외행사들을 취소하도록 요구하는가 하면 위생용품이라든가 감염 예방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를 취하는 조건으로 그것을 다시 허용하기도 한다. 학교에서 감염자가 발생하면 무조건 일주일의 휴교를 하도록 명령했다가 해당 학급만, 혹은 해당 학생만 등교를 중지하도록 지침을 변경하기도 한다. 전국의 주요 병원들을 신종플루 전담 지정병원으로 지정을 하면서도 신종플루 전담 의료진들에게 적당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격리시설을 위한 지원 방침 같은 것은 모른 척한다. 그 결과 병원들은 전담병원 지정을 거부하기도 하고, 해당 환자들을 돌보다가 의료진들이 감염되기도 한다. 그들의 치료에 대한 보상도 없다. 병원 운영의 감독 허가권을 가진 정부가 궂은일을 떠맡겨놓고 뒤책임까지 모두 병원쪽에 떠넘기고 있다는 비난이 뒤따른다.



일부 의원들이 국가필수예방접종의 비용을 국가가 부담한다는 법안을 만들었지만 해당 부처가 예산을 따내지 못해 법안은 국회에서 폐기된다. 의사들이 반발하지만 복건복지부는 대안이 없다. 수십억이나 되는 국가 예산이 때아닌 강 파기 예산으로 들어갔으니 예산이 여유가 있을 리 없다. 병원들은 결국 이 위협적인 질병의 검사부터 치료까지 환자 개인들에게 비용을 요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의 숫자가 두자리 수로 넘어갔다. 아직 큰 위협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앞으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질병으로 인해 희생될 것이란 예상은 그리 특별히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치료와 예방의 혜택은 가난한 사람보다는 있는 사람들에게 좀 더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란 징표는 심증을 넘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올 상반기에 타미플루를 처방받은 사람 4131명 가운데 소득수준 상위 10% 계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하위 10% 계층에 비해 3.4배나 많았다고 한다. 좋은 직장으로 꼽히는 외국계은행 한 곳은 자기 직원들을 위해 1천명분의 타미플루를 미리 처방받아 비축했다고도 한다.



손만 잘 씻으면 된다는 홍보가 이뤄지며 손 세정제가 잘 팔리는가 싶더니, 공기로 전염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허공에 뿌리는 항균 스프레이가 날개돋힌 듯 팔리고 있다. 이 와중에 체온계며 세정제 심지어 마스크 거즈 분무기까지 값이 오르거나 품절 핑계를 대고 사기가 어려워졌다고 한다. 사회적 불행을 이용해 배를 불리는 부류는 50년 전 까뮈의 소설에는 등장하지 않는 21세기 자본주의 시대의 새로운 바이러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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