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사람 선택하는 일이 가장 어려워

정해용 / 기사승인 : 2009-09-21 11:2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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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말을 살피는 데는 파리한 것 때문에 좋은 말을 놓치기 쉽고, 사람을 찾는 데 초라함 때문에 좋은 사람을 놓치기 쉽다.”(相馬失之瘦 相士失之貧)는 말이 있다.
고구려 때 유명한 평강공주 이야기는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공주가 마침내 가난뱅이 온달에게 시집을 와서 살림을 차리고 바보 온달을 가르쳐 인재를 만드는데, 하루는 온달에게 많은 돈을 쥐어주며 시장에 나가 말을 사오도록 했다. 온달이 아직 물정을 모르니까 공주가 말 고르는 방법을 가르치는데, “말 장수들이 갖고 있는 잘생긴 말은 쳐다볼 것도 없어요. 가면 비쩍 마른 말이 한 구석에 있을 것이니, 너무 늙은 말이 아니라면 그걸 사도록 하세요.”



온달이 가서 보니 과연 비쩍 마른 말이 초라하게 서 있었다. 속으로야 어째 하필 가장 볼품없는 말을 사라고 했을까 의구심이야 있었겠지만 그동안 공주가 시키는 대로 해서 손해 본 일이 없었다. 말을 끌고 돌아오니 공주가 그 이치를 설명한다.



“말 장수들은 좋은 값을 받기 위해서 말을 잘 먹이고 윤기 나게 잘 씻겨서 시장에 끌고 온답니다. 이것은 흔한 말이니 사실 경주에 나가면 제대로 힘을 못 쓰지요. 그런데, 비쩍 말라서 장에 나온 말은 나라에서 기르던 말입니다. 병이 들었거나 늙어서 제대로 먹지 못해 그렇게 되었을 뿐, 혈통은 좋은 말들입니다. 당장은 군사용이나 의전용으로 쓸 수가 없어 퇴출되었지만, 병을 고치고 제대로 먹여놓으면 그 혈통의 값을 할 겁니다.”


공주는 나라의 핵심에서 자라난 사람이다. 나라에서 언제쯤 마필의 기량을 점검하고 쓸모없는 말을 골라내어 시장에 내다 파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을 터이다. 남편 온달에게 궁중무술 수준의 무술을 가르치려고 하는 공주가 말 시장이 열리는 날을 미리 알아두었다가 온달에게 말을 사오도록 했을 것이다. ‘시장에 가면 비쩍 마른 말이 있을 터이니’라는 식으로 얘기하고 보면 마치 앉아서 천리를 내다보는 도인의 얘기 같지만, 그 천리안의 비밀도 실은 정보에 있다.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을 고르는 식견에 관한 것이다. 보통 사람이 말을 사러 갔다면 필경 윤기가 잘잘 흐르는 상인들의 말에 눈이 갔을 것이고, 비쩍 마른 말보다는 기왕이면 살지고 튼튼해 보이는 말을 위해 비싼 값을 치를 것이다. 이 말에 화려한 안장을 채우고, 혼례나 관례를 치를 것이며 집안의 자랑으로 삼기도 쉽다. 반면 비쩍 마른 말을 사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일 터이니, 이 말을 사서 굴레를 씌우고 밭으로 끌고 나가 쟁기질을 시킬지도 모른다.



옛날 중국 秦나라 사람으로 伯樂이란 이가 있었는데, 백락은 전설 속의 상징적 인물이다. 말을 관장하는 신이라고나 할까. 백락이라 불린 진나라 사람은 좋은 말을 알아보는 눈이 있었다. 그가 시장을 지날 때 그의 눈길을 붙잡는 말이 있으면, 말은 그것만으로도 값이 뛰었다고 할 정도로 그의 選馬眼(?)은 정평이 나 있었다. 여기서 백락일고(伯樂一顧)라는 고사가 생겼다. 오죽하면 좋은 말은 또 백락을 알아보았다고도 한다. 그가 한번은 들길을 가다가 어느 곳에서 말이 밭 갈고 있는 광경을 보았는데, 멀리서도 알아보고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말이 밭을 갈다가 백락이 서있는 앞으로 오자 말도 걷기를 멈추고 백락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백락이 멈춰 서서 살폈다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 이 말은 본래 명마였다. 그러나 이미 나이가 많아서 새삼 발탁한다 한들 명마구실을 하기에는 너무 늦은 말이었다. 백락과 말은 서로를 한참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헤어졌다. 백락의 눈에는 측은지심이 가득했고 말의 눈에는 회한이 가득했다. 그러나 만남이 너무 늦었다.
“말을 살피는 데는 파리한 것 때문에 좋은 말을 놓치기 쉽고, 사람을 찾는 데 초라함 때문에 좋은 사람을 놓치기 쉽다.”



본래 이 속담은 말을 위해 전해진 것이 아니다. 비쩍 마른 것 때문에 명마를 놓치는 일에 빗대어 초라한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인심을 말하려고 한 것이다. 스스로 백락을 기다린다고 말하는 인재들이 중국 사서에는 과장하여 백 명쯤은 나오는 것 같다.
오늘날 출세를 바라는 사람들 가운데는 자신의 외모를 꾸미고 이력을 치장하여 새로운 주인을 유혹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말 장수들은 영악하다. 이제는 백락의 추천서 같은 것도 능히 꾸며 새로운 장식물로 이용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정부의 인재 고르기, 기업의 인재 채용, 국민들의 대표선출 투표 등등, 이 속담을 되새겨야 할 기회는 수없이 많다. 초라한 외모나 초라한 이력서, 초라한 언변 때문에 좋은 인재를 놓치고 허우대만 멀쩡한 잡종 말을 선택하는 실수가 많다면, 그럴수록 기업이든 나라살림이든 내실이 허술해질 터이다. 후반기 채용의 시즌이 왔다. ‘人事가 만사’라는 말도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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