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부와 성공 - 부끄러운 시청각 교재

정해용 / 기사승인 : 2009-09-21 11: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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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어떤 책을 가장 많이 읽을까. 독서의 계절인 가을이 돌아왔으니 일시적으로 문학서들이 많이 읽힐 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나 소설에서 베스트셀러가 나오는 것은 그 발행되는 양에 비하면 극히 적다. 그보다는 돈 버는 법, 성공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소위 실용서적이 우선이다. 이 시대는 실용주의가 득세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밥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 무엇을 하든 이 질문이 우선이다. 자녀들의 미래를 가르치는 데서부터 이 질문은 시작된다. 어떻게 하면 보람있게 살 것인가, 어떻게 하면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한심하게 여겨진다. 대학의 전공을 선택하는 데서부터 장차 돈 잘 벌고 안정적인 직업으로 가기에 유리한 전공이 항상 우선이다. 물론 그러한 선택의 지침은 부모로부터, 선배들로부터 내려진다. 가끔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고 자기주장을 앞세우는 아이들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 아이들은 부모의 당부를 따른다. 밥과 돈이 우선인 세상은 그렇게 확립되어 왔다.



대다수 직업인들 사이에서 자기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조사결과 따위는 새삼 거론하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이 점점 더 ‘살기에 재미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이나 스스로 행복을 느끼는 일을 하기보다는 돈을 벌거나 최소한 먹고살기 위한 일에 목매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자기 생활에 얼마나 재미나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재미를 느끼지 못한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에는 또 무슨 재미가 존재하며 무슨 활력이 흘러넘칠 수 있을 것인가. 재미없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은 논리적으로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잘 팔리는 책들 가운데는 실용서 아닌 것이 드물다.
자녀들의 머리를 좋게 하는 책, 자녀들의 시험공부, 논술공부에 도움되는 책부터가 실용성을 염두에 두고 고르는 것들이다. 성인들이 보는 책도 다르지 않다. 시간보내기에 도움되는 흥미로운 책이거나 남들과의 대화에서 빠지지 않기 위해 보는 유행성 문학서 정도를 빼고 본다면 거의가 돈을 벌거나 성공하는 데 도움될 정보와 지침을 담은 책들이 대다수다.



실용서의 장르도 다양하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실용서래봐야 성공한 기업인의 자서전이거나 카네기 처세술 같은 것들이 고작이었지만, 지금은 좀더 노골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성공의 비결을 가르치는 것들이 인기다. 성공한 인물의 자서전이나 평전에는 그 인물 나름의 고상한 철학 같은 것도 강조되어 있지만, 요즘 재테크 서적에서는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은 돈을 벌수 있는가’라는 것이 유일한 철학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이제 ‘돈 벌이에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격언으로 바뀌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젠 돈벌이 비결을 담은 책들조차도 굳이 읽을 필요가 없을 듯하다. 실제 상황을 통해 보고 들을 수 있는 생생한 ‘시청각 교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요즘 정부는 고관 요직의 교체인사로 분주하다. TV에서 생중계로 보내주는 국무위원 및 주요 기관장 인사 청문회라는 것을 보면 재테크 지침서가 따로 없다. 부동산 투자는 기본이고, 투기를 하면서 세금까지 적게 내기 위한 다양한 절세기법들이 골고루 등장하고 있다. 위장전입, 친인척 명의 차용, 공직의 특수성을 이용한 사전 정보 이용 등등. 듣고 있다 보면 이런 기법들이 부도덕하거나 불법이라는 상식에 충실하여 정직하고 착실한 방법만 고수하고 사는 사람들로서는 배신감이나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난 정권 당시 야당으로서 다수 공직 후보자들을 소소한 부동산 투기나 심지어 아파트에 구조 변경 같은 ‘불법’까지 문제 삼아 낙마시켰던 권력이 집권한 이후 그들이 내세운 공직 후보자들에게서는 더 한층 다양한 재테크 전과(?)들이 아무렇지 않게 노출되고 있다. 국민이 느끼는 배신감은 더한층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권력은 이제 오히려 후보자들의 재테크 기법을 두둔하고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투기나 편법적인 탈세가 불법이나 부도덕이 아니라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슬기로운 기술’이라 개념을 바꾸는 게 어떨까. 그 기술을 고교과정 등에 신설하여, 누구나 똑같이 재테크 경쟁에 나설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게 차라리 공정하지 않을까. 만일 돈 버는 것을 최상의 정의로 삼고, 그러기 위해서는 투기든 탈세든 법망에 걸리지만 않으면 다 용인될 수 있는 것으로 공인한다면 이 정부가 지고 있는 총체적인 도덕 논쟁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겠는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은 사람들에게 도덕적, 법적 책임을 따지기는커녕 명예와 권력까지 허용하는 국가가 결국 어느 곳으로 굴러가게 될지 상상하는 것은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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