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오래된 친구는 나눌 얘기가 많아

정해용 / 기사승인 : 2009-09-09 16: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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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오랜만에 독일인 친구 토마스가 전화를 걸어왔다. 서울에 왔다는 신호다. “어, 오랜만!” “응, 한국에 다시 왔지. 잘 지냈나?” “그래. 언제 시간 돼?” “주말에 일본으로 가서 일주일 뒤에 돌아오는데, 바로 함부르크행 비행기를 타야 돼.” “내일 당장 봐야겠군.” “그래, 어떻게 가더라?” “응. 거기 동대문이지? 전철 2호선을 탄 뒤에….” “와아, 갈아타기가 꽤 복잡하군.” “그래. 좀 복잡하지. 35년 전 건설 초기에 토탈 플랜 없이 시작된 뒤 여러 노선이 계속 덧붙여져서 그럴 거야. 이제 와서 어쩌겠어. 내가 역사에 나가서 기다릴게.”



토마스가 처음 서울에 놀러왔던 건 어언 25년 전의 일이다. 그때 우리는 이 색다른 손님을 단칸 셋방으로 맞아들여 모처럼 고기를 굽고 전을 부치며 ‘한국의 맛’을 보여준다고 법석을 떨었다. 토마스는 한국을 좋아하여 거의 매년 휴가에 서울에 왔고, 그를 맞는 건 우리 가족의 연례행사였다. 그가 세 번째인가 서울에 왔을 때는 마침 조카 돌잔치가 있어, 그에게 한국 아기의 첫 번째 생일잔치 풍습을 소개한다고 데려가기도 했다. 그 다음해에는 윤석화의 연극을 같이 보았고, 그날 밤이던가, 신촌 어느 라이브카페에 들어갔다가 우리 세대의 대표가수 노사연의 노래를 들었다. 그때만 해도 이런 카페에 외국인 손님이 그리 흔치 않던 시절이어서, 노사연은 앞자리에 앉은 서양인 손님을 발견하고는 특별히 덕담까지 던져주었다.



강산이 두 번도 더 변할만한 시간이 흘렀으니 그 사이에도 변화가 많았다.
그가 처음 왔을 때는 함께 시내를 걸어 다녔지만, 몇 년 뒤에는 작은 승용차로 마중 나갔고, 승용차의 배기량도 점점 늘어났다. 그가 방문하는 우리 집도 단칸 셋방에서 작은 아파트로, 그리고 좀더 큰 평수의 아파트로, 점점 커졌다. 그가 가져온 독일 인형이나 초콜릿 선물을 받고 기뻐하던 큰 아이는 벌써 대학을 졸업했다.
그도 변했다. 처음에는 해마다 서울을 빼놓지 않고 들렀는데, 뒤에는 2~3년씩 간격을 두고 방문한다. 이번에는 자그마치 5년을 걸렀다.
“그 동안은 어디로 갔었어?” “필리핀, 중국, 몽골 등을 여행했지.” “아시아를 두루 섭렵했네?” “좀더 정확하게는 동북아시아쪽이지.” 그는 내심 한국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싶어했지만, 아직 뜻을 못 이루었다. 지금은 일본에 친구가 있는 것 같다.
오랜만에 왔으니 약간 고급스런 한식 레스토랑으로 데려갔다. 쇠고기가 미국산이어서 칠레산 돼지고기를 주문했다.
“나는 미국산 소고기를 안 먹어. 정부가 뭐라고 하든 여전히 찜찜한 건 사실이거든.”
“그래? 유럽에서도 광우병으로 크게 시끄러웠지.”
“신종 플루는 어때? 여행하면서 좀 걱정되는 일은 없었어?”
“응 괜찮아. 아시아 사람들은 유난히 걱정이 많은 것 같네. 가는 곳마다 손 씻고 체온 재고…. 유럽에선 이런 모습을 보지 못했어.”
“유럽 국가들은 정부가 백신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걱정할 일이 적겠지.”
“그래. 정부가 그런 일을 신속하고도 충분히 대비하지 않으면 시민들이 가만 두지 않으니까.”
백신 확보율 100%의 나라에서 온 토마스에게는, 정부를 믿지 못해 개인들이 유난스러울 수밖에 없는 아시아인들의 몸조심이 새삼스러워 보였을 것이다.
식사 후 공원에 나가 잔디에 앉아서 망중한을 즐겼다. 어느 새 들어선 50대의 인생과 지난 세월을 추억했다.
“내가 어렸을 땐 바쓰 데이(bath-day)가 있었어. 매주 목요일이면 목간통에 물을 데워 부어놓고 아버지와 아이들이 차례차례 목욕을 했지."
“우리 시골에선 매주 손등 검사를 했어. 때가 새까맣게 앉은 아이들이 많았지. 일 년에 서너 번 명절이 돼야 욕조에 들어가 보는 아이들이 많았으니까. 내가 더 긴 세월을 산 셈이군.”
그의 아버지는 건강하셨는데, 2년 전 아우토반을 달리다가 갑자기 길가에 차를 세우고 그대로 심장이 멎어 돌아가셨다고 했다. 마침 그는 필리핀 여행 중이었단다.
“80회 생신을 넘기셨지. 잘 다녀오라고 하던 말씀이 마지막 들은 말이었어.”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하셨구나. 차를 세우셨으니 옆에 어머니가 무사하셨지.”
“그래서 다행이야. 응급의사가 말하기를 ‘나도 이 양반처럼 죽었으면 좋겠네’라고 했대.”
“참, 그 여자들은 지금도 잘 지내?” “어, 윤석화, 노사연? 여전히 액티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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