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후진국으로 돌아온 것인가

정해용 / 기사승인 : 2009-09-04 19:2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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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종 플루’라 불리는 유행성 질환이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미 수천명이 플루나 유사증세를 경험한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다. 연말까지 8백만에서 최대 천만명까지 신종 플루를 경험하게 될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최대 2만 명 선까지 사망자를 예측하는 시나리오도 있었던 모양이다. 심각하다.



그런데 정부의 대응책은 미흡하다. 집단생활을 해야 하는 일선 학교에서는 등교하는 학생들을 일일이 체온 측정하여 고열이 있는 사람은 귀가 시키고 열심히 손을 씻도록 한다는 등의 대책이 발표되었다. 신종 플루의 가능성을 의심할 수 있는 고열이란 섭씨 37~38도의 고열이다. 병원에서도 이 정도는 열이 올라야 플루 의심환자로 판정한다는 것인데, 사실 이 정도 열이 오르면 어지간한 아이들은 스스로 등교를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몸살이 나서 열이 높지만 꾹 참고 열심히 공부하고 싶어요. 등교하게 해 주세요”하고 교문을 들어서다가 선생님의 제지를 받게 될 아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등교하는 아이들 붙잡고 ‘잠시 검문’하는 식의 대응이란, 전시효과를 노린 일종의 ‘쇼’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그저 열이 나는 아이들은 다수 학생들을 위해서 등교시키지 말아줄 것을 학부모들에게 당부하는 것이면 족하지 않을까.



신종 플루에 대응하는 정부의 방식을 보면, 우리나라가 과연 선진국 맞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 유럽의 몇몇 국가들이 인구대비 100% 물량의 백신을 확보했다는 뉴스를 들으니, 우리 정부의 대응방식이 비교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초여름 국제시장에서 백신 확보에 나섰다가 실패한 우리 정부는 뒤늦게 비상조달에 나서 11월까지 인구 대비 20% 물량을 확보하는 것을 최상의 목표로 잡고 있다고 한다. 정부가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는 것도 그렇고,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이유가 예산부족 이었다는 말도 그렇다.


2. 우리나라가 가난하던 60~70년대에는 집에 전화가 있는가, TV가 있는가, 냉장고가 있는가, 세탁기가 있는가. 거기 더하여 수돗물이 나오느냐 수세식 화장실이 있느냐를 기준으로 가정 형편을 가늠하기도 했다. 가전제품이 부자의 기준이 되다보니 가전제품 하나하나에 특별소비세도 붙었다. 있어서 더 쓰고 사는 사람들이 국가 재정에도 좀 더 기여하도록 하는 일종의 ‘부유세’ 성격이다. 그러다가 대다수 가전제품이 생필품으로 여겨지게 되면서 특소세도 폐지됐다.



그런데 가전 생필품에 붙던 ‘특별한 세금’이 다시 ‘개별소비세’란 이름으로 부활한다고 한다. 지난 25일 정부가 마련한 ‘2009 세제 개편안’을 통해서다.



정부는 여러 저축 금융상품들에 대한 소득공제 혜택 등을 중단하는 등으로 연간 10조5천억원 정도의 세입 증대를 올리게 된다고 한다. 이 방안 가운데, 냉장고 TV 드럼세탁기 에어컨 등 가전제품에 대한 5%의 ‘개별소비세’ 방침이 포함되어 있다. 개별소비세(개소세?)에 다시 교육세며 부가가치세까지 붙으면 소비자 가격은 거의 7%쯤 올라가게 될 것이란 추정이다.



IMF 금융위기 이후 아주 오랜만에 순채무국이 돌아선데다 경상수지까지 적자살림을 꾸리게 된 정부의 고민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제 다시 생활 속 가전제품들까지 ‘개소세’란 명목의 특별한 세금을 내고 구매해야 한다고 하니, 가전제품을 ‘부자의 상징’으로 여기던 개발도상국 시절로 성큼 되돌아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3. 사실, 나라가 갑자기 적자 타령을 하게 되고, 이 핑계 저 핑계로 가뜩이나 어려워진 국민들에게서 세금을 더 뜯어낼 궁리를 하게 된 건 정부의 오줄없는 살림 솜씨 탓이 크다. 지난 2년 동안 정부는 해마다 두 자릿수 예산 확대를 통해 살림 규모를 키웠다. 그러면 나라살림이 더 풍족해져야 할 텐데도 체감지수는 오히려 마이너스다. 마침 국제적 금융위기도 닥쳐왔으니 어느 정도 양해는 해야겠지만, 어쩌면 우리 정부는 국제적 경제위기 덕에 무능한 살림솜씨를 잘 숨겨왔던 것은 아닐까. 미안하지만 언제까지 국제 위기를 핑계 삼으려는가.



과거 10여년보다 훨씬 규모가 늘어난 국가 예산은 다 어디로 가기에 정부 부처마다, 지자체마다 적자타령을 하게 된 것일까. 그러고 보니 우리가 ‘개발도상국’ 시절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전국적으로 29조의 국가 예산과 지자체 예산까지 동원하여 벌이고 있는 국토개발 프로젝트, ‘4대강 살리기’ 말이다. 정부 관계자는 궁핍해진 나라 살림과 4대강 개발 프로젝트는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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