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이 줄어들고 사회적 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여성들의 역할에 매우 큰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솔직한 감정을 숨기고 인내를 바탕으로 한 남성의 내조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던 전통적 가치관은 이미 낡은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개발해 경제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여성이 늘어나면서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영향력이 그만큼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가 시작된 것이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커피 산업에 미친 여성의 영향력만큼은 이미 19세기 무렵부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통계자료를 보면 1841년 독일의 함부르크는 36,000톤의 커피를 수입했지만 차는 단지 137톤에 불과했습니다. 같은 무게의 찻잎이 커피보다 6배가량 많은 양의 음료를 만든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커피가 차보다 45배가량 많이 소비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엔나나 파리와는 달리 당시 독일엔 커피하우스가 없었습니다. 또한 당시 독일 문학계를 풍미하던 음료는 차였으므로 도대체 누가 그처럼 많은 커피를 마셨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답은 여성들이었습니다! 맥주 바나 와인 숍을 출입할 수 없었던 중산층 여성들은 남편들이 맥주 바에서 정치와 문학을 이야기 하는 사이 삼삼오오 가정에 모여 ‘카페클라치(Kaffeeklatsch)', '카페슈베스터(Karreeschwester)' 라는 모임을 즐겨했습니다. 전자는 커피 파티에서 여자들이 이야기하는 가십이나 스캔들을 의미하며, 후자는 가십이나 스캔들을 좋아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당시 독일은 남성이 지배하던 시대였으므로 여성들만의 이런 커피 모임이 조롱거리였지만 사실 남성들도 커피를 마시고 여성들의 틈에 끼여 종종 수다를 떨곤 했습니다. 어쨌든 케잌이나 타르트를 곁들여 즐기는 한적한 오후의 즐거움은 베를린 여성들에겐 소중한 것이었고 장차 세계 커피산업을 엄청나게 발전시킨 한 여성을 탄생시킨 배경이 됩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메리타 벤츠여사(1873~1950)입니다. 그 당시 까지만 해도 커피는 끓인 물에 커피가루를 담근 뒤에 옷감이나 철망을 이용해 거르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커피가루가 들어가기도 했고 비위생적이어서 커피를 즐기는 여성들로서는 항상 불만거리였습니다. 당시 독일의 드레스덴에 살며 ‘카페클란츠를’를 자주 갖던 메리타 여사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간단한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립니다. 그것이 바로 종이필터입니다. 종이필터를 사용하자 이전에 사용하던 커피기구들보다 깔끔한 커피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후 개량을 반복하며 오늘날과 같은 깔때기 모양의 필터와 드립퍼를 완성합니다. 종이 필터가 대성공을 거둔 이후 점차 드립커피가 주류로 자리 잡게 됩니다. 이와 함께 메리타 여사가 세웠던 ‘M.Benz'사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간단한 아이디어였지만 남성들이 비아냥거리던 커피파티가 아니었다면 메리타 여사의 종이필터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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