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서울은 다시 뜨겁다. 그동안 시청 앞 광화문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집회와 시위는 이 나라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지켜내는 데 적잖은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번에는 이슈가 다르다. 정치적 반대나 주장이 아니라, 전국 대학의 등록금을 지금보다 크게 낮춰야 한다는 것이 주 이슈다. 일종의 생활 관련 이슈가 쟁점인 것이다.
서울 시내 주요 대학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시작한 등록금 낮추기 요구 시위는 열흘 넘게 계속되었다. 여기에 여야 정당들이 관심을 보이며 ‘반값 등록금’ 실현방안을 법과 제도의 차원에서 검토하고 새로운 민생 이슈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일반 언론의 논조도 크게는 학생들의 편이다. 올해도 등록금을 인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버티는 대학들의 재무구조와 지난해 살림살이를 분석하여 그들이 쌓아놓은 잉여금을 열어 보이는 기획탐사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대학 평균 1인 8백만 원을 넘는 등록금이 과다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학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하다. 보도에 의하면 대학들은 학생들이 내지 않을 수 없는 등록금 덕분에 정교수 1인당 1억 원 이상의 연봉(44개 사립대 기준)과 해마다 사립대 평균 3백억 원에 이르는 잉여금 적립 등으로 탄탄한 부를 과시하고 있다. 반면 다수의 학생들은 그 등록금을 감당하기 위하여 은행 융자를 받고 시급 4천~5천원의 아르바이트에 내몰리고 있다. 그것으로도 안 되어 휴학을 하거나 아예 학업을 중단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서 삶의 용기와 희망을 얻는 것이 아니라 돈이 없이는 자기 발전을 위한 학업도 계속하지 못하고 차가운 생존경쟁에 내몰려야 한다는 혹독한 생존법칙을 배우고 있는 셈이다.
열흘 넘게 계속되는 시위에도 대학들은 끄떡하지 않는다. 급기야 시민단체 사회단체가 학생들과 함께 거리로 나서고 ‘반값 등록금’을 관철하겠다는 학부모 단체까지 등장했다. 정치권과 시민 사회단체까지 들끓게 되면서 이 단순한 생활관련 이슈는 끝내 정치화하는 모양새까지 띠게 됐다. 이럴 것까지는 없었을 텐데. 대학이나 정부가 과다 등록금에 대한 학생들의 요구를 그동안 너무 안이하게 여겼던 탓일 것이다.
사실, 어떤 비용이 과다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반값으로 내리라는 요구는 역시 과한 요구일 수 있다. 그러니 ‘반값 등록금’이란 말은 다소 과장된 요구이거나 전략적 요구(반값을 목표로 내걸어 단 10~20%라도 내리게 하려는)일 것이다. 일반인의 생각에도 그것이 상식일 듯하다.
최소한 연초 새 학기 개강 시기에 대학 학생회 중심의 등록금 인상 반대 요구에 따라 대학들이 이번 학기 등록금을 동결만 했어도 사태가 이 지경으로 확대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것은 ‘반값 등록금’이라는 주장이 애당초 학생들에게서 시작되기 보다는 정치권에서 제기된 목표였다는 점이다. 그것도 바로 한나라당이 원천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당시 ‘반값 등록금’을 공약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대통령이 된 후 TV 국민과의 대화에서 이 대통령은 자기가 개인적으로 ‘반값 등록금’을 공약한 적은 없다고 주장한바 있다(2008. 9. 9). 그의 말은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대선 공약과 관련하여 ‘반값 아파트’와 ‘반값 등록금’을 구체적인 언어로 내세운 것은 사실이다. 200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은 대선 전략의 하나로 ‘경제 살리기 특별위원회’를 설치한다고 발표했고, 이 위원회 산하에 일자리창출위원회, 사교육비절감위위원회와 함께 등록금절반인하위원회, 반값아파트위원회 등을 설치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은 바로 이명박 당시 후보였다. 그 위원회가 실제로 가시적 활동을 했는지는 지금 와서 확인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반값 등록금’이라는 모토가 여당인 한나라당에 의해 처음 등장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같은 해 먼저 치러진 지방선거 때도 한나라당은 선심성 공약으로 영어교육 완전 국가책임제라든가 대학 등록금 반값인하 정책 등을 내걸었고 박근혜 강재섭 김형오 등 전현직 대표들이 직접 이를 언급한 적도 있다.
서울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생들의 ‘반값 등록금’ 촉구 시위에 한나라당이 다소 방관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좋은 대중적 아젠다를 야당이나 시민 사회단체가 아니라 한나라당이 몇 년 전부터 내세웠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잃어버린 민심을 되찾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나라당에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반값 등록금이라는 이슈는, 연간 1억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소수 부자들의 편에선 그리 절박한 소망도 아닐 것이다. 명문대학에 가기 위해 기부입학제도 실시되기를 바라는 부자들의 편에선 등록금 부담이 커질수록 입시경쟁은 완화될 것으로 기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한 켠에선 등록금 인하가 불가능하거나 필요치 않다는 대학 주장에 동조하는 여론도 없지 않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어느 쪽 의견을 ‘민심’으로 믿고 반영하는 게 유리할까. 지난 4월 27일 보궐선거에서의 패배를 상기한다면 그 답은 단순명료할 것이다. 대학재단과 학생-학부모, 입 다무는 여당과 팔 걷어부치는 야당, 이 구도가 좌-우 대립의 성격이 아님은 명백하다. 그렇다면 빈-부 대립일까 상식-비상식의 대립일까.
[상임 논설위원] peace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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