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경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예멘을 정복합니다. 이로써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아프리카의 리비아와 이집트에서부터 아시아의 이란과 이라크, 동유럽의 그리스와 유고슬라비아를 포함하는 발칸반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합니다. 이 시점부터 이디오피아의 아비시니고원에서 발견되었던 커피가 예멘의 모카항을 거점으로 홍해를 건너 동유럽에 걸친 제국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합니다. 아랍에서 돌아온 성지순례자들은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 신비한 검은 음료에 대해 이야기를 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제국의 수도였던 터키의 이스탄불에 까지 전해집니다. 13세기까지 구도자들만의 음료였던 커피는 17세기 말이 되자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음료가 되었습니다.
16세기경 카이로에서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문을 연 이래로 불과 수십 년 사이에 천여 개로 늘어납니다. 비록 커피하우스가 남성들의 전유물이긴 했지만 사람들은 이곳에서 휴식을 찾고 친구를 사귀고 시와 음악을 즐겼습니다. 궁정으로만 향하던 화가와 시인들이 커피하우스의 문을 두드리게 되면서 커피하우스는 문학과 예술을 발전시키는 메카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권력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이런 상황을 탐탁하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낯선 음료가 가져올 변화가 애써 구축한 지배 질서를 급속히 무너뜨릴까봐 전전긍긍했습니다. 먼저 종교 지도자들이 볶은 식음료를 금지한 코란을 근거로 커피를 금지하도록 요구했습니다. 급기야 무라트 3세(1574~1595)와 무라트 4세(1623~1640)는 이스탄불에 있는 모든 커피하우스를 폐쇄시켰습니다. 무라트 4세는 커피를 마셨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문화로 자리 잡은 커피하우스는 이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곧 강한 저항에 부딪치게 됩니다. 결국 권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커피문화를 용인할 수밖에 없었고 고작 변장을 하고 커피하우스에 숨어들어 반대세력을 찾아내는 소극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요즘 미디어법과 관련해 정치, 사회적으로 혼란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당과 정부에선 어떻게든 이번 기회에 친 정부적인 신문사에게 방송진출의 기회를 주려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높은 비난여론과 국회 통과과정에서의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미디어법에 전력을 기울이는 데에는 입맛에 맞게 여론을 통제하고 싶은 달콤한 유혹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마치 커피하우스를 폐쇄함으로써 반정부세력을 무력화시키려고 했던 오스만투르크의 권력자들처럼 말이죠. 하지만 커피의 역사가 말해주듯 강압으로 민의(民意)를 왜곡시키려고 시도한 권력은 결코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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