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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70년대 한국의 젊은이들이 즐겨 읽은 책 가운데 하나로 일본 소설 <대망(大望)>을 꼽을 수 있다. ‘야망을 가진 사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정도로 여겨졌다.
야마오카 소하치라는 작가가 1950년부터 67년까지 무려 17년에 걸쳐 일본 내 4개 신문에 연재했던 대하 역사소설로 원제는 <도쿠가와 이에야쓰(德川家康)>다.
이 소설은 17세기 일본의 전국시대로부터 막부시대로 옮겨가는 과정에 천하통일을 두고 다투는 사무라이 영웅들의 연대기를 그리고 있다. 일본의 전국시대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와도 같이 각지에 산재한 영웅호걸들이 각자의 영지를 다스리며 각자의 사병을 보유하고 세력을 다투던 시기다.
군웅 할거하는 영웅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두각을 드러낸 사람은 오다 노부나가, 강한 힘과 엄격한 통치술로 인근의 영주들을 병합해 나간다. 노부나가의 막하에서 실력자로 성장한 뒤 실권을 장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잔꾀와 술수에 능한 지도자로 평가된다. 오랜 내전으로 강력해진 병권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조선을 침공하여 임진왜란을 일으킨 당사자다.
그러나 마지막 승자는 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쓰였다. 오다와 도요토미 휘하에서 몸을 굽히면서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던 도쿠가와야말로 최후의 패자가 지녀야 할 모든 덕목을 한 몸으로 보여준다. 자신의 가족을 떠나야 했고, 사랑하는 여인의 자결을 지켜보아야 했고, 오만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도 충성을 바쳐야 했다.
그 긴 연단과 인내의 세월을 보낸 후 기회가 왔을 때도 그는 신중했다. 신중하면서도 결단이 필요한 순간에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후 비로소 일본열도에는 안정된 절대권력 아래 평화가 지켜지는 쇼군의 시대가 열렸다.
도쿠가와 이에야쓰가 가진 힘의 원천 가운데는 그 시대 민중들로부터의 존경과 지지가 있었다. 그는 표독하지 않았고 악독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결단력이 있었고 굽혀야 할 때는 굽히고 싸워야 할 때는 싸울 줄 아는 용기가 있었다. 희생이 필요할 때는 회피하지 않고 희생할 줄도 알았다. 오랜 굴종과 기다림 속에서 터득한 지혜였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를 마지막 쇼군의 지위에까지 이끌고 간 힘의 정체는 ‘권력에의 의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역시 존경받는 영주의 자식이었고, 그 뒤를 이어 가신을 거느리고 백성을 다스리는 지도자로서 양육되었다. 잘난 사무라이라면 누구나 패권을 꿈꾸던 시대였고 그 또한 그 길을 꿈꿨다. 시대의 영웅이 되려는 꿈, 곧 대망(大望)이다.
가난하고 혼란스러운 시대에 지도자의 성패는 ‘영도력’으로 심판을 받는다. 고통스러운 세상을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줄 능력을 지닌 영웅이라면 다소 독재적이어도 용서를 받는다. 70년대 이전까지 많은 아시아 국가에서 ‘개발독재’가 칭송을 받았던 이유가 거기 있다.
좀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유럽의 나폴레옹이나 히틀러가 등장할 수 있는 배경도 그랬다. 가난하고 혼란스러운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당장 배고픔의 해결이 절실하며, 민주주의와 인권 같은 정치적 의식은 아직 사치에 불과하다. 이런 배경 속에서 박정희나 김일성 같은 독재자들도 당당히 그 사회에서 나름의 존경을 받으며 지도력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지금 사람들 가운데 도쿠가와 이에야쓰를 읽으며 감동받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보다는 앨빈 토플러의 지혜와 스티븐 스필버그나 조앤 롤링의 판타지를 즐겨 읽고 본다. 이들은 앞에서 이끌고 갈 ‘카리스마적 영웅’보다는 함께 걸어가며 길을 안내하는 지혜로운 멘토에 끌린다.
스스로의 야심(大望)에 따라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이 아니라 시대의 요청에 따라 자신을 던질 줄 아는 지도자를 원하는 듯하다. 시대와 함께 호흡하며 대중과 함께 소통할 줄 아는 부드러운 힘, ‘스마트 리더십’이 지금 시대에 부합하는 지도력이라 한다. 이제 대선을 앞두고 이 나라에 맞는 리더십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새누리당 유력주자 박근혜 의원이 대중 속으로 내려가려는 노력을 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지난주에는 대전지역 대학생들과 만나 함께 밥을 먹었다. 거기서 “정치가 좋아서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대답했다. “정치하시는 아버지를 보며, 그렇게(자유도 없이) 안 살고 싶었다. 그런데 IMF 사태가 났을 때 충격을 받고, 내 자유를 찾을 때가 아니라는 사명감이 들었다. 좋아서가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안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많았다.”
세상은 그의 유력한 라이벌로 서울대 안철수 교수를 꼽는다. 그 역시 과학자에 뜻을 두었지 애당초 정치에 뜻을 둔 사람은 아니었다. 한 번도 정치판을 기웃거린 적 없던 그가 갑자기 출마를 고려하게 된 건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나라 상황이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걱정을 낱낱이 담은 책이 출간되어 며칠 사이에 책방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기다렸던 듯하다. 바로 대망(待望)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다투는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 여야 주자들이 주로 어려서부터 대망(大望)을 품었던 야심가들이 아니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대는 바뀌었다. 누가 진정 이 나라 대중의 대망(待望)에 부응하게 될 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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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정해용 논설위원이 2009년 1월부터 3년반 동안(43개월간) 집필해온 ‘정해용의 세상읽기’는 필자의 개인 사정으로 인하여 이번 회로 끝을 맺습니다. 시인이기도 한 정해용 논설위원은 앞으로 한 달여 새로운 기획을 준비한 뒤 9월부터 새로운 포맷의 읽을거리를 가지고 독자 여러분을 찾아뵐 예정입니다. 그동안 본 칼럼을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새로 시작할 연재물에도 변함없는 성원과 사랑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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