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 한류스타는 류시원·장나라 뿐

토요경제 / 기사승인 : 2008-11-10 10:5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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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문화비평


한류스타 류시원의 일본 행보가 순항 중이다. 2005년 일본 첫 싱글 ‘사쿠라’ 이후 8번째 싱글 ‘너와 나’도 10월 3주차 오리콘 위클리 차트에서 4위에 랭크됐다.


이제 류시원의 싱글은 발매 첫 주 톱5에는 안정적으로 드는 추세다. 전국 라이브 투어도 성공적이다. 데뷔 해인 2005년 2개 도시 6회 공연으로 총 5만 관중을 끌어 모은 이래 계속 세를 불려나갔다. 올해에는 18개 도시에서 총 30회 공연으로 9만 관중을 모았다. 역대 최대다. 이미 부도칸은 밟았고, 12월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마침내 일본 도쿄돔에 선다.


류시원의 일본 성공기는 여러 가지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일단 ‘한류’라는 하나의 개념, 또는 전략을 뿌리부터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활동 방식, 활동 인물, 활동 목표 등 갖가지 측면에서 모두 그렇다. 류시원과 흡사한 경우는, 사실 상 일본에는 없다. 중국서 활동 중인 장나라가 그나마 ‘류시원류’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둘을 함께 놓고 보자.


먼저 활동 방식이다. SM-에이벡스 연대라는 특이 케이스를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한류 스타는 2가지 고정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하나는 한국 활동에 뿌리를 두고 주력하며, 이를 해외에 일반적으로 수출하는 형태다. 수출 시 갖는 각종 홍보 행사와 공백기의 팬미팅 등이 한류활동의 전부다. 배용준이 대표적이다. ‘겨울연가’로 일본 최대 해외스타가 되었음에도 제대로 일본 콘텐츠에 출연한 적은 없다. 권상우, 이병헌 등도 같은 라인을 따랐다.


이런 방식은 ‘한국에서 이미 스타’인 아이콘이 ‘일본시장’에서 주로 활용된다. 일본 시장이 탐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을 아예 버릴 정도로 한국입지가 위태로운 것도 아니다. 결국 한류를 ‘부가수익’ 정도로 생각하고, ‘처음 떴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는 것이다. 이 방식의 문제는, 세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일본한류는 이른바 ‘한류 마니아’ 층이 받치고 있는 형태다. 결코 대중화된 형태가 아니다. 그리고 모든 마니아층 전략은 필연적으로 세가 준다. 대중화를 통한 전진적 이미지가 사라지면 오타쿠 라인을 타게 돼있다. 결국 마케팅 활력이 떨어져 팬층이 와해된다.


다른 하나의 활동 방식은 아예 ‘현지용’ 전략이다. 데뷔 자체를 일본에서 하는 식이다. 이 역시도 일본시장에서 주로 활용하며, 배우보다는 가수 쪽이 활용하고 있다. 케이(K), 윤하 등이 이 방식을 택했다. 대부분 한국시장에서는 잘 안 먹힐 콘셉트일 경우 시도한다. 케이는 ‘남자 솔로 발라드 가수’ 콘셉트가 유행에 뒤쳐졌을 때 일본서 등장했다. 윤하 역시 ‘악기를 연주하는 솔로 여성 뮤지션’ 콘셉트가 아직 시장에 없을 때 나왔다. 이 방식은, 지금까지 명확한 성공 사례는 없다. 현지에서도 한류인지 메인스트림인지 헷갈려 한다.


명확한 것은, 이 방식이 ‘역한류’로 기능하긴 한다는 점이다. 윤하가 대표적 예다. 일본 활동 시 인지도를 바탕으로 한국 활동을 재편했다. 고아라 역시 일본영화 ‘푸른 늑대-땅 끝 바다가 다하는 곳까지’ 출연 홍보 시 얻은 미디어 관심을 바탕으로 한국 활동을 새로 썼다. 한류 효과라기보다는, 국내 데뷔의 또 다른 방편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다.


류시원과 장나라는 여기서 벗어난 실질적 ‘제3의 방식’이다. 한국에서 데뷔해, 누구라도 알 수 있을 법한 인지도를 펼쳤다. 그 뒤 해외로 넘어가 현지화 전략을 동원했다. 류시원은 싱글 8장, 정규앨범 5장외에도 NHK 아침드라마 ‘돈도하레’, TBS 드라마 ‘조시데카’에도 출연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장나라 역시 중국에서 가수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고, 드라마 ‘띠아오만 공주’로 대성공을 거뒀다. 이 방식을 택한 것은 둘뿐이지만, 둘 다 괄목할 만한 성과를 얻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방식은 확실히 성공 가능성이 높다. 한류를 통해 얻은 마이너적 팬베이스를 바탕으로 메인스트림에 입성하는 형식이다. 다만, 앞서 언급한 ‘자국시장에의 미련’ 탓에 이 방식을 택하기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여기서 ‘누가’ 이 방식을 택해야 하는지의 문제가 드러난다.
이 방식을 택해야 하는 ‘인물’은, 자국서 스타로 부상했으되 커리어 연장과정에서 오류를 범한 케이스다.


류시원은 1994년 드라마 ‘느낌’ 이래 꾸준히 TV드라마 배우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턴가 버라이어티쇼와의 양립이 시작됐다. 여기서부터가 악수다. 류시원은 버라이어티에 ‘지나치게 잘’ 적응했다. 재잘거리고, 젠 체하고, 어딘지 왕자병적인 그의 ‘버라이어티적 자아’가 드라마 영역까지 침범했다. 캐릭터 간에 충돌이 일자, 먼저 사그러든 것은 상대적으로 카리스마가 약한 드라마 쪽이었다. ‘버라이어티용 퍼스낼러티’로 내려앉지 않는 이상,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장나라도 마찬가지다. 2001년 드라마 ‘뉴논스톱’에서 귀엽고 앙증맞은 엽기 캐릭터로 인기를 모아 다음해 ‘명랑소녀 성공기’까지 성공시켰지만, 거기까지였다. 본래 극단적 캐릭터는 질리기 쉬움에도, 2002년 한 해 동안 무려 18개 CF에 출연하며 자기 이미지를 고갈시켰다. 이럴 땐 영화 등 다른 미디어를 통해 이미지 전환을 시도해봐야 하는데, 첫 영화출연작 ‘오! 해피데이’마저도 ‘뉴논스톱’과 다를 게 없는 캐릭터로 일관했다. 갈수록 캐릭터 효과는 떨어지고, 뒤늦게 이미지 재정비를 시도했으나 한 발 늦었다. 대중은 이미 그녀에게 지루해하고 있었다. 역시, 더 갈 곳이 없었다.


이들은 모두 자국에서의 오류를 반면교사 삼아, 우연찮게 얻은 한류기회를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류시원은 유서 깊은 집안 배경 등을 홍보하며, 국내에서의 ‘왕자병’ 이미지를 온전한 ‘왕자’ 이미지로 교체했다. 까불거리는 이미지를 제어하며, 가끔씩 일본 버라이어티쇼에 나가도 한국에서와 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장나라는 비교적 캐릭터 소진이 덜한 가수 쪽으로 활동 중심을 잡았다. 중국 드라마 역시 다양한 배역을 맡아 이미지 고정을 피하고 있다. 이들에게 한류활동은 일정부분 ‘반성문’ 격인 셈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이들의 ‘활동 목표’도 기존 한류 스타들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기존 한류는 ‘한국’이라는 시장을 계속 의식한다. 한국 활동을 수출하려는 쪽도, 아예 현지화를 생각하는 쪽도 ‘역한류’ 효과를 끊임없이 의식한다. 류시원과 장나라는 자국시장을 ‘아예’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해외에서 얻은 ‘제2의 커리어’에 집중했다. 그 집중도 만큼 효과는 좋을 수밖에 없다.


1등을 배용준으로 놓고, 2등 자리를 놓고 권상우, 원빈, 이병헌, 정우성 등이 각축전을 벌일 때, 류시원은 만년 3등으로 4년을 투자했다. 결국 지금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2등이 됐고, 미래 가능성으로 보자면 배용준과 비등한 수준까지 갔다. 장나라 역시 한국을 돌아보지 않고 중국시장에 천착한 끝에, 이제는 ‘한류’라는 딱지를 떼도 좋을 만큼 현지화되어 있다. 베이징올림픽 D-100기념곡 ‘베이징환잉니’에 동원된 100인의 ‘중국가수’ 중에도 들어갔다.


어쩌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한류’란 이런 것일 수도 있다. 시장을 제대로 관리할 능력도 안 되면서 하이프만 뿌리고 장삿속이나 채우는 ‘국내 정상급 스타의 한류 쇼’는 한계가 뚜렷하다. 이미 악영향도 일어나고 있다. 그보다는 류시원·장나라 예처럼, 한국에서 갈 길을 잃은 연예인들의 현지화 진출이 연예인 개개인은 물론, 국가 문화산업 발판 마련으로도 더 유리한 것일 수 있다.


한류는 이제 이런 방향을 생각해봐야 한다. 국내용 쇼에서 벗어나 현지 안착을 최종단계로 설정, 이를 실행해줄 이들을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10년 뒤 현지에서, 여전히 이름을 기억하고 관심을 가지며 한국에 대한 호기심을 안겨 줄 이들은 정작 류시원·장나라이리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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