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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葛藤)의 葛자는 칡 갈이다. 藤자는 등나무 등이다. 갈(葛)은 칡이요. 등(藤)은 등나무인 것이다. 그런데 갈등의 한자를 왜 하필이면 칡 갈(葛)자와 등나무 등(藤)자를 사용한 것일까?
칡을 살펴보면 줄기가 나무등을 왼쪽으로 휘감으며 자란다. 등나무는 반대로 오른쪽으로 감으며 성장한다. 칡은 좌측방향, 등나무는 우측방향으로 돌기 때문에 그야말로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갈등이 가장 심한 곳이 국회다.
국회는 이념이 다른 정당들이 모여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특히 좌파와 우파가 만나면 갈등을 겪게 마련이다. 그러니 국회는 늘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시끄럽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국회가 조용하기를 바라는 것은 모순(矛盾)이다. 가끔은 갈등이 극에 달해 국회가 폭력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으로 변할 때도 있다. 비단 우리 국회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의회도 시끄럽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견을 조율하는 방법과 이를 수용하는 마음, 관습이 좀 다를 뿐이다.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은 먼저 다수결의 원칙이 있다.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투표를 하여 다수가 찬성하는 데로 법과 정책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 그보다 좋은 것은 타협과 절충을 하는 것이다. 다수당은 소수당을 배려하고, 소수당은 무지막지하게 생떼를 쓰지 말아야 한다. 합리적으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점을 도출해야 한다. 다수결의 원칙 못지않게 정치인들의 타협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타협의 기술자가 바로 정치인이어야 한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36년의 일제강점기와 정통성없는 독재치하를 겪으며 타협은 곧 상대를 인정하는 꼴이 되어 회색분자라고 매도하였다. 결사반대하는 것이 은연중에 명예롭게 느껴지는 관습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러니 국회에서 정치는 사라지고 전투만이 판을 치는 것이다.
사실 정치는 타협과 협상이 기본이다. 적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강자가 약자를 배려하는 것이 정치다. 약자를 배려하지 않으면 사사건건 결사적으로 반대하게 되어 국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 책임은 다수당이 먼저 질 수밖에 없다.
옛날부터 기근이 들면 정부는 물론 부자들이 곡식을 내어 놓는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아름다움으로 보이기도 한다. 뒤집어 생각하면 기근을 방치할 경우 폭동이 일어나 부자는 물건을 강탈당하고, 정치체제는 무너지게 된다. 이를 사전에 방지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다. 약자에 대한 배려는 곧 강자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국민들은 약자에 대한 동정심이 강하다. 약자를 배려하는 넉넉한 정치인은 인기가 좋다.
국민은 스포츠경기에서 관중과도 같다. 관중은 냉철하다.
누가 반칙을 하는 지도 잘 안다. 국회를 운영하는데 상대정당이 억지를 부리면 국민들에게 정확히 홍보하고 다수결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부터 솔선하여 법을 준수하여야 한다. 항상 법을 지키며 살 수밖에 없는 국민들은 국회법조차도 지키지 못하며 볼썽사납게 싸우는 의원들을 싫어한다. 싸워도 법을 지키며 운치있게 싸워야 한다. 억지를 부리거나 생떼를 쓰는 상대정당이 아닌 국민을 염두에 두고 정치를 하여야 한다.
오는 12월 대선을 앞에 두고 정당끼리 기(氣)싸움이 불붙었다.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양보하며 넉넉한 모습을 보여야 다음선거에서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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