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이 오명을 쓰고 도망한다면 누가 나를 받아주겠는가 (<史記> 晉世家)
아버지 헌공을 시해하려 했다는 누명을 쓴 태자 신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진(晉)나라는 무공(武公)이 혼란을 바로잡기까지 67년 동안이나 내란이 이어진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BC746년 진 문후가 아들 소후에게 군위를 물려주었을 때, 소후는 숙부이자 나라의 원로이던 성사를 우대하고 동시에 민심이 둘로 나뉘는 것을 막기 위해 숙부에게 기름진 곡옥(曲沃)땅을 떼어주어 사실상 자치령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이후 본국은 쇠약해진 반면 곡옥은 번창하여 곁가지가 본줄기를 위협하는 정변이 지속되었던 것이다. 성사의 후손들은 호시탐탐 본국을 침략하여 마침내 소후의 자손들이 모두 전사하고 곡옥의 무공이 권력을 장악하자 천자인 주 환왕은(약간의 뇌물을 받은 뒤) 무공을 진의 새로운 주인으로 인정했다. 이로써 둘로 갈라졌던 진나라는 다시 하나가 되었다.
통합 2년 만에 무공이 늙어 죽고 아들 헌공(獻公)이 뒤를 이었다. 아직 나라는 혼란이 채 수습되기 전이었으므로 많은 숙제가 남아 있었다. 제위 8년째에 헌공의 오른팔인 대부 사위(士蔿)가 헌공에게 건의했다. “진나라에 공자들이 너무 많아서 그들을 다 죽이지 않으면 환란이 발생할 것입니다.” 헌공은 건의를 받아들여 체제에 잠재적 위협이 될 만한 혈족, 공자들을 모두 불러들여 제거했다. 체제 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는 하나 이렇게 잔혹하고서야 유지될 수 있는 권력의 앞날이란 보나마나였다.
헌공이 여(驪)라는 나라를 정벌하러 갔다가 그 두령의 두 딸을 선물로 받고 돌아왔는데, 두 여자 모두 예뻐 첩으로 삼고 총애하였다. 언니인 여희(驪姬)가 아들 해제(奚齊)를 낳았다.
헌공에게 이미 여러 아들이 있었는데, 제 환공의 딸 제강으로부터 낳은 큰 아들 신생과, 적(翟)나라 출신의 두 부인에게서 낳은 중이, 이오가 그 중에 영리했다. 게다가 맏아들 신생은 이미 태자로 책봉되어 후계에 관한 한 더 이상 왈가왈부가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젊은 새 부인 여희는 맹랑한 야심가였다. 재앙이 싹텄다.
헌공이 여희의 조종을 받는 측근들로부터 어떤 암시라도 받았던지, 어느날 여희에게 “태자를 폐하고 해제를 태자로 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여희는 펄쩍 뛰면서 태자를 폐한다면 자기는 죽고 말 것이라고 반대했다. 그것은 헌공의 신임을 얻으면서 동시에 신생을 안심시키기 위한 연극이었다. 여희는 해제를 태자로 만들기 위한 계교를 꾸미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이미 신생에게서 마음이 떠나고 오로지 여희를 기쁘게 하고 싶었던 헌공은 신생을 다른 두 형제들과 함께 변방으로 보내버릴 계획을 세웠다. 국방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을 각기 곡옥과 포읍, 굴읍으로 보내려고 성을 새로 쌓게 했다.
세 공자들이 도성을 떠날 날이 가까운 어느 날 여희가 신생을 불러 말했다. “군주께서 꿈에 돌아가신 어머니 제강을 만나셨다 하오. 태자는 곡옥으로 가는 즉시 제사를 올리고 제사지낸 고기를 군주께로 보내시오.”
신생은 그 말을 따라 곡옥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고기를 보냈다. 헌공은 마침 사냥터에 나가, 수일 뒤에야 고기를 먹게 되었다. 여희가 문득 ‘여러 날 지난 고기이니 시험해 봐야 한다’면서 고기를 떼어 곁에 있던 개에게 던져주자 개가 먹고 즉사했다. 여희는 “태자가 군주를 시해하려 하다니, 이렇게 잔인한 사람인줄 몰랐습니다. 군주께서 돌아가시고 나면 앞으로 저나 해제의 운명도 알 수 없게 되었으니, 이제 저희는 다른 나라로 피해야겠습니다.”라면서 자못 슬피 흐느꼈다. 사랑하는 여인이 흐느낄 때 감동받지 않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 가뜩이나 죽을 뻔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헌공이었다. 그 즉시 신생의 사부를 죽이고 곡옥에 있는 신생을 잡아오게 하였다.
신생은 군대를 통솔한 경험이 많은데다 이 모두가 여희가 꾸민 짓임을 알면서도 대적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미 늙어서 여희가 아니면 잠도 편히 잘 수 없고 밥도 편히 드시지 못한다. 만약 내가 해명한다면 군왕께서 여희에게 진노하실 것이니 불효가 된다.” 고민하는 신생에게 수하들이 망명을 권했다. 그러나 신생은 “아버지를 죽이려 했다는 오명을 쓰고 도망한다면 누가 나를 받아주겠는가. 길은 오직 하나 뿐이로구나.”하고는 성 안에서 자살했다.
중이와 이오가 헌공을 알현하러 갔는데, 여희가 또 참소하여 “신생이 고기에 독약을 넣을 때 두 공자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중이와 이오는 각기 그들의 성으로 달아났다가 나라밖으로 망명하였다. 헌공이 해제를 태자로 삼았다.
이야기 PLUS
사람들은 각자의 인생에 주어진 운명이 있다고들 말한다. 각 사람이 제 나름의 구실을 갖고 태어나 그 값을 하고 죽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 운명을 미리 알아보려고 사주를 풀어보고 점을 쳐보기도 한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운명인지를 내다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한들 주어진 운명을 피해갈 수는 있을까.
진(晉)나라 헌공(獻公)의 운명은 지독했다. 그 자신의 삶이 구차하거나 비루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26년을 군주자리에 있으면서 숱한 사람을 죽여 피를 보았다. 시절이 어수선하여 전쟁을 치르느라 적을 죽이는 일이라면 많은 군주들이 피해갈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적이나 반란자가 아닌 형제와 자식들까지 죽여야 하는 운명이란 비운(悲運)이 아닐 수 없다. 나이 들어 젊은 처첩들에게 현혹되어 사리분별을 못하게 된 데서 비롯된 비극일 것이다.
“태자가 아버지를 시해하려고 고기에 독을 넣다니, 이렇게 잔인한 사람인줄 몰랐습니다. 저희 운명도 알 수 없게 되었으니 저희는 다른 나라로 피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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