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고전읽기] 권력자의 간통 쿠데타로 이어져

정해용 / 기사승인 : 2014-03-10 09:4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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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魯-삼환의 탄생(2)

諱莫如深 휘막여심
(어떤 사실을) 깊이 감추어 은폐함 (春秋 穀梁傳)
노나라 경보가 제나라로 달아난 일을 <좌씨전>에서 단지 ‘갔다’고 기록한 데 대해

8월에 장공이 죽었다. 계우가 태자 반(班)을 군주로 옹립했다. 계우는 태자의 순조로운 계승을 위해 자기 손으로 친형인 숙아를 죽이기까지 하였으나 화근이 온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었다. 숙아가 장공의 후임자로 지지했던 경보가 여전히 살아있었다. 경보는 장공의 바로 아래 동생으로, 장공 오랫동안 국사에 관여하며 무시 못 할 자기세력을 구축한 터였다.

그들은 반이 권좌에 오르기 전 국상을 치르는 동안 외가인 당씨 집에 머물게 했다. 경보에게는 그 짧은 국상기간이 자기 목숨을 지키고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경보는 당씨 집에 드나드는 사육사 낙에게 은밀히 명령을 내려 태자 반을 죽이게 했다.

사육사 낙(犖)은 예전부터 반에게 원한이 있는 사람이었다. 태자 반은 청년이 되어 양씨라는 대부의 딸을 좋아하였는데, 어느 날 그녀를 보려고 양씨 집에 찾아갔다가 일개 사육사인 낙(犖)이 그 딸과 놀면서 희롱하는 것을 보았다. 질투심에 사로잡힌 반은 분을 참지 못하고 낙을 결박하여 채찍형을 가했다. 서로 비슷한 청년의 나이에 같은 여자를 좋아했다. 그러나 낙이 일방적으로 채찍형을 당한 것은 단지 신분 차이 때문이었다. 낙이 원한을 품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버지 장공이 아직 살아있을 때라, 그 사실을 전해 듣고 반을 불러 말했다. “낙은 힘이 있는 사람이다. 기왕 원한을 만들었으니 반드시 죽여 후환을 남기지 말도록 해라.” 그러나 반은 그를 죽이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장공이 병들어 죽었고, 교활한 경보는 낙의 사적 감정을 이용하여 태자를 제거했던 것이다.

태자가 죽자 계우는 자기 외가인 진(陳)나라로 달아났다.

경보는 장공이 숙강에게서 낳은 아들 개(開)를 군주로 세웠다. 노 민공(湣公)이다.
그러나 민공의 지위는 오래 가지 못했다. 당초 경보의 최종 목표는 그 자신이 군주가 되는 것 아니던가. 2년째 되던 해 경보는 민공을 습격해 죽이고 정권을 장악했다. 경보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는 죽은 장공의 명목상 부인인 애강의 협조가 있었다. 남편 장공과는 나이 차도 큰데다 사랑을 받지도 못했던 애강은 예전부터 시동생 경보와 통간(通姦)하는 사이였다. 그들 손으로 반을 죽이고 권력을 장악한 뒤로는 관계가 더욱 빈번하고도 공공연했던 것이다.

자신들의 손으로 세운 민공마저 죽이고 스스로 군주가 되려 하자 민심은 그들을 떠났다. 진나라에 있던 계우는 마침내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민공의 동생 신(申)이 마침 진나라로 망명해오자 그와 함께 진나라 군대의 호위를 받으며 노나라로 갔다. 노나라 사람들이 안에서 호응했다. 자기 백성과 군사들을 믿을 수 없게 된 경보는 황급히 거나라로 달아나고, 홀로 남겨진 애강은 주(邾)나라로 달아났다.

계우가 노나라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입성하고 공자 신을 군주로 옹립했다. 희공(釐公)이다. 제후의 즉위식이 끝나자 계우는 곧바로 거나라로 가서 선물을 주고 경보의 신병을 인수했다. 본국으로 끌려온 경보는 동생 계우에게 제삼국으로 망명을 허락해 줄 것을 청했다. 그러나 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경보가 초조하게 답변을 기다리고 있을 때 문 밖에서 곡(哭)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부 한 사람 대부의 이름은 해사(奚斯)다.

이 곡을 하면서 지나갔다. 나라의 대부가 백주에 큰길에서 저리 곡을 하며 지나가다니. ‘누가 죽었는가?’ 경보가 궁금해서 묻자 누군가 말했다. ‘곧 공자(公子)께서 죽을 것입니다.’ 경보는 그 뜻을 알아차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애강의 친정인 제나라는 사악한 양공이 죽어 환공이 즉위한 뒤였다. 노나라의 사태를 파악한 제 환공은 노나라 밖에 피신 중인 애강을 불러들였다. 애강은 제나라 여인이지만, 제나라의 명예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남편의 나라인 노나라를 심히 위태롭게 만들었다. 게다가 제나라 사람들이 증오하는 폭군 양공의 딸이 아닌가. 환공은 음란한 짓으로 두 나라를 욕보인 죄를 물어 애강을 처형한 뒤 시신을 노나라로 보내 조리돌렸다.

이야기 PLUS
노나라의 중반 이후는 제후의 권력이 약화되고 삼환(三桓)이라 부르는 세 귀족 가문의 세도정치가 이어졌다. 곧 등장하는 공자(孔子)가 노나라 재상이 되었을 때, 무엇보다 심혈을 기울인 일은 삼환의 기세를 꺾어 군주의 위신을 바로세우는 일이었다. 그러한 삼환이 시작된 때가 바로 장공의 죽음 직후다.

태자 반을 몰아내고 왕이 되고 싶어 했던 첫째 동생 경보의 후손들은 맹손씨가 되고, 경보를 지지하다 죽은 숙아의 후손들은 숙손씨가 되었으며, 장공의 뜻을 따라 태자를 지키고 공실의 위계를 바로잡으려 노력한 셋째 동생 계우의 후손들은 계손씨가 되었다. 이들을 ‘3환’이라 부른 것은 모두 한 아버지, 노 환공(桓公)의 후손들이기 때문이다.

한편 춘추 <좌씨전>에서는 경보가 외국으로 달아난 일에 대해 간략하게만 언급한다. 공자 경보가 제나라로 갔다(公子慶父如齊)고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춘추의 또 다른 해설서인 <곡량전(穀梁傳)>이 비판했다. “달아난 것을 갔다라고 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것은 경부가 군주를 죽인 죄를 드러내지 않기 위하여 깊은 얘기를 꺼린 것이니, 곧 은폐하려 한 것이다(此奔也 其曰如 何也. 諱莫如深 深則隱).” 어떤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은폐하는 일에 대하여 위막여심(諱莫如深)이란 고사가 생겼다.

태자 반이 좋아하는 처녀를 사육사 낙이 희롱했다. 반이 분개하여 채찍질을 가하자 아버지 장공이 듣고 말했다. “낙은 힘이 장사니, 반드시 죽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반은 죽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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