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아리가 허벅지보다 큰 사람은 잘 걷기 어렵다 (<說苑>君道편)
신하의 세력이 왕을 능가하면(本小末大) 나라가 어지러워짐을 비유한 말
제 환공에게 패하고 화친을 맺은 노나라 장공 때의 일이다. 장공이 죽음을 앞두고 자기 형제들을 불러 후계의 일을 상의하고자 하였는데,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셋째 동생인 계우 뿐이었다.
본래 장공에게는 경보 숙아 계우라는 동생들이 있었고, 부인들로는 맹녀와 애강 숙강 등이 있었다. 본래 장공이 사랑한 여인 중에 첫째는 맹녀(孟女)였다. 그녀의 부친은 당씨(黨氏)라 하는 대부였는데 장공이 그의 집에 갔다가 맹녀를 보고 반하여 정식 부인으로 삼겠노라 맹세하고 결혼하였다. 장공은 맹녀에게서 아들 반(班)을 얻어 태자로 삼았다.
애강(哀姜)은 제나라 양공의 딸이다.
여기서 잠깐 제 양공을 회상해 보자. 양공은 여동생 문강과 불륜의 관계였고, 문강이 노나라 환공에게 시집간 뒤에는 노 환공 내외를 초대하여 대접한다는 핑계로 붙잡아 두면서 문강과 음란한 관계를 지속했다. 그러다가 노 환공에게 들키자 비밀을 감추기 위해 환공을 죽였다.
그 뒤 문강은 노나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친정 제나라에 머물 수도 없어 두 나라의 국경마을에서 지냈는데, 제 양공은 타국에 원정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문강의 마을에 들러 공공연히 머물곤 했다. 노나라에서는 죽은 환공의 뒤를 이어 장공이 집권했지만, 아버지의 원수인 제 양공과 문강을 어찌하지 못했다. 제 양공의 군대가 강하기도 했거니와, 양공과 놀아나는 문강은 어쨌거나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였다.
그 어색한 관계를 회복하려고 꾀를 낸 건 문강이었다. 제 양공이 와서 머무는 동안 아들 장공을 불러들여 인사를 시켰다. 아버지의 원수와 어정쩡한 화해가 이루어졌고, 낯 두꺼운 제 양공은 넉살좋게 장공의 후견인을 자청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제 양공과 문강은 두 나라의 우의를 좀 더 돈독히 하겠다는 구실을 앞세워 제 양공의 어린 딸을 장공과 혼인까지 시켰다. 그 여자 아이가 바로 애강(哀姜)이다.
장공은 거절했지만 음란하고도 끈질긴 두 후견자들(동시에 아버지를 죽인 원수들)의 뜻을 끝까지 거부하지 못했다. 애강은 장공에게서 자식을 낳지 못했다. 아마도 장공이 처음부터 가까이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탓일까. 애강은 시동생인 경보와 사통하는 사이가 된다. 그들의 얘기는 다음 주로 미룬다.
장공은 애강에게서 아이를 낳지 않은 대신 애강을 따라온 동생 숙강에게서 아들을 얻었다. 아들 이름은 개(開, 본래는 啓였다고 함)다.
장공이 나이 들어 병석에 눕게 되자 둘째 아우 숙아를 불러 후계 문제를 상의했다. 숙아가 말했다. “아버지가 죽으면 아들이 계승하고 형이 죽으면 동생이 물려받는 것이 나라의 법입니다. 동생 경보가 살아있어 후계를 이을 수 있는데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곧 장공의 동생인 경보를 후계로 세우겠다는 뜻이다. 본래 경보의 야심을 알고 있는 장공으로서는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셋째 동생 계우를 불러 상의하니 계우가 맹세하며 대답하기를 “목숨을 다하여 형님의 아들이자 태자인 반을 왕위에 세우겠습니다”라며 맹세하였다. 장공은 안도하면서 한편으로 걱정이 되어 숙아가 한 말을 일러주었다.
계우는 물러나온 즉시 대부 침무에게 숙아를 초청하도록 했다. 숙아가 침무의 집으로 가자 침무가 독이 든 술을 바쳤다. 침무가 말했다. “이것을 마시면 후손의 제사를 받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죽어서도 제사지낼 후손이 없게 될 것입니다.” 알아서 조용히 자결하면 단순한 급사(急死)로 꾸며 정상적인 장례를 치르겠지만, 만약 거부한다면 반역죄를 씌워 삼족을 멸하겠다는 경고다. 반역죄라는 사태가 벌어지면 숙아가 옹립하고자 했던 형 경보의 운명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숙아는 조용히 독배를 받아 마시고 죽었다. 노나라는 그의 아들들을 숙손(叔孫)씨로 삼았다.
이야기 PLUS
한 나라에 두 임금이 있을 수 없다. 장공이 계우를 시켜 숙아를 제거하게 한 것은 그의 사후에 닥쳐올지도 모를 권력 다툼을 막기 위한 것이다. 장공에게는 경보 숙아 계우 모두가(어머니는 서로 다를지언정) 한 핏줄을 타고난 아우들이다. 그러나 국가 법통의 중요성에 비쳐보면 형제의 정이란 사사로운 감정에 지나지 않았다. 법통을 무너뜨릴 의도를 갖고 있는 사람을,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는 용인할 수 없다고 장공은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소란스럽게 국가 반역죄를 내세우는 것은 다음 권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부적으로는 피를 보면서 이루어졌을망정 적어도 백성들에게는 그러한 사실이 알려지지 않는 것이 낫다. 순조로운 계승으로 보여야만 다음 군주는 백성과 역사 앞에서 정치적 채무를 갖지 않는다. 기회를 잃은 숙아는, 죽음 이후의 명예와 자손의 안위를 보장받는 조건으로 죽음을 받아들였다.
<설원(說苑)>에 관중의 말이라면서 이런 비유가 소개돼 있다. ‘권력은 둘이 양립할 수가 없고, 정치는 문이 두 개일 수가 없다. 종아리가 허벅지보다 큰 사람은 잘 걷기 어렵고, 손가락이 팔뚝보다 큰 사람은 잘 잡을 수 없다(脛大於股者 難以步 指大於臂者 難以把). 이처럼 근본이 작고 말단이 크면 서로 부릴 수가 없느니라(本小末大 不能相使也).’
형제간의 살해도 불사하는 노력이 이루어졌지만, 끝내 계우가 바라던 권력의 안정은 물거품이 된다. 태자도 죽고 그를 죽인 경보도 죽는다. 이때로부터 이들 삼형제의 후손들이 각기 권문세가를 이루며 군주의 권력을 견제하며 나아가 농락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대부가 제후를 능가하게 되었으니 종아리가 허벅지보다 굵어진 격이다. 노나라는 내내 허약해졌다.
“조용히 죽는다면 후손의 제사를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죽어서도 제사지낼 후손이 없게 될 것입니다.”
숙아는 변명할 겨를도 없이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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