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글 아이’라는 미국 영화(2008)는 고도의 인공지능 시스템을 통해 국가 안보가 기획 관리되는 미래의 가상세계를 그리고 있다. 중앙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슈퍼컴퓨터가 국가 안보에 관한 모든 정보를 통합하고 스스로 분석하면서 안보에 위협이 되는 위해요소를 찾아내고 이를 억제, 제거하는 계획을 세운다. 더 나아가 계획을 실행할 작전을 세우고 이를 직접 명령하는 권리까지 갖고 있다. 단 한 가지, 컴퓨터의 권리를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억제장치가 있다. 바로 컴퓨터 관리자의 최종 승인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공군 장교인 이 관리자는 교통사고를 당해 죽는다. 그리고 이 관리자의 쌍둥이 동생인 제리 쇼(샤이아 라보프)에게 의문의 택배가 배달된다. 듣도 보도 못한 각종 무기와 거액의 현금카드들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FBI 테러대책반이 들이닥치고 우여곡절 끝에 제리는 도망자가 된다.
그가 가는 길은 누군가에 의해 조종된다. 지하철의 전광판, 옆 사람의 핸드폰, 교통신호등, 빌딩 위의 상업 전광판 등을 통해 계속 새로운 지시가 내려온다. 도시 안에 설치된 모든 CCTV 카메라들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하나 빠짐없이 관찰하면서 경찰이나 FBI의 추적으로부터 그를 엄호하거나 격리하여 어딘가로 몰아간다. 대 소동을 겪은 끝에 도달하는 곳은 바로 국방성. 미국의 안보를 총괄하고 있는 중앙컴퓨터실이다. ‘이글 아이’라 불리는 이 컴퓨터 시스템의 요구는 하나다. 이 컴퓨터가 국가안보를 목적으로 계획한 중대한 요인 암살계획에, 죽은 형 이든을 대신하여 승인 명령을 내려달라는 것. 이 승인 명령은 관리자의 등록된 음성으로만 가능한데, 관리자 이든이 승인을 거부하자 컴퓨터는 교통사고를 조작하여 그를 살해한 후 이든과 음성지문이 같은 쌍둥이 제리를 이곳까지 들어오게 만든 것이었다.
이 영화는 외계인의 출현이나 지구문명의 위기 같은 미래의 문제에 대해 탁월한 식견을 자랑하는 스티븐 스필버그 사단에 의해 제작된 영화다. 문명 비판적이라고 할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뾰족이 솟아오르는 인류 문명의 허상과 문제점을 그들은 날카롭게 지적하며 경고해왔다. 이 영화의 메시지도 다르지 않다. 기계의 노예가 되는 것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얼마 전 어떤 젊은 엄마가 여덟 살과 여섯 살의 어린 두 딸을 여관방에서 차례로 살해하고 그 스스로 자살할 곳을 찾아다니다가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그 엄마가 아이들을 죽이기로 마음먹은 것은 놀랍게도 들고 다니는 핸드폰을 통해 내려온 명령 메시지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엄마는 이 메시지가 누구로부터 혹은 어디서부터 내려오는 것인지도 모른 채, 자신의 행복을 책임져줄 신의 명령과 같은 것으로 여기고 복종했다고 한다. 어느 야만국에서 벌어진 해외토픽 뉴스가 아니다. 바로 IT기술이 세계 최고를 달린다는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가장 빠른 통신기술 덕분에 누구나 이용하고 있는 모바일통신기기를 통해 벌어진 사건이다.
큰 딸을 초등학교에 보낸 K씨는 학교 자모회를 통해 또 다른 학부모 Y를 알게 됐다. 평소 친구도 없이 살았던지 K는 성격이 활달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Y에게 매력을 느꼈고 곧 그녀와 친해졌다. 다소 우울하며 순진한 성격의 K는, 나이는 자기보다 어리지만 언제나 발랄하고 자신감 넘치는 Y를 부러워하면서 철썩 같이 그녀를 믿고 따랐다. 문제는 Y가 그리 착한 여자가 아니라는 데 있었다. 모 대학에 근무하는 워킹맘이라는 자기소개부터가 거짓이었다. 어리숙할만큼 순진하게 자신을 믿고 따르는 K를 Y는 종종 골려먹었다.
“언니, 사실은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결이 있어. 이건 비밀인데….” 행복하게 사는 비결을 묻는 K에게 Y는 있지도 않은 ‘시스템神’을 소개했다. “시스템이 핸드폰 문자를 통해 모든 것을 가르쳐줘. 시스템이 하라는 대로만 하면 언니도 나처럼 행복해질 수 있다고.”
Y의 특별한 안내로 K는 이후 시스템의 명령을 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0시에 자라, 0시에 일어나라 같은 단순한 명령에서 시작되었으나 점점 더 그 지시는 구체화되어갔다. Y에게 밥을 사줘라, Y의 집 앞에 피자를 배달시켜라 같은 명령도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은 신기하게도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있어서 감히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전지전능한 ‘시스템’의 축복으로 곧 Y처럼 행복해지기를 기대하면서 K씨는 고분고분 명령에 따랐다. Y씨에게 거액의 돈을 주라는 명령도 고금리 대출까지 받아가며 이행했다. 그렇게 진 빚이 1억 원을 훌쩍 넘었다. ‘시스템’의 약속과는 달리 빚에 쫓겨 삶이 더 각박하게 되었을 때, 마침내 시스템은 “두 딸을 죽이고 너도 자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을 따를 정도로 K씨는 있지도 않은 ‘시스템敎’에 홀려 있었다.
대명천지에 개화된 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 같지만,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통신기술이 고도화될수록, 그것을 이용하여 자기 이익을 차리려는 ‘악덕교주’와 그 신비한 힘에 압도되어 노예적 맹신으로 복종하는 단순 소비자의 간극은 더욱 깊어진다. 젊은 대학생들에게 취업이란 미끼를 던져 노예적 삶을 강요하던 세칭 ‘거마대학생’이란 피라미드 조직이나 지금도 육신의 영생을 약속하며 추종자를 모으는 사이비 종교가 한국 사회을 휩쓸고 있는 현상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물질문명의 첨예한 발전과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정신적 공허사이의 간극이 깊을수록 인간사회의 안녕은 더욱 위태로워지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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