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독립적 감시 역할 한계...이재용 재판 방패막이용 전락 우려

[토요경제=최봉석 기자] 삼성그룹의 새해 화두로 '준법경영'이 떠오르고 있다.
지난 2009년 그룹 사장단협의회에서 준법경영 기조를 공식화하고 이듬해 '무관용 준법경영'을 선포한 후 11년 만에 '준법경영' 카드를 다시 꺼냈다.
이미 '무관용 준법경영'까지 공개적으로 선포한 만큼 삼성그룹이 지난 9일 이른바 '법원 숙제'의 첫 답안으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를 이달 말 구성한다고 밝힘에 따라 향후 투명 경영의 계기가 될지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이재용 부회장 재판을 위한 방패막이가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주문한 것을 삼성이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통해 재판부는 이재용 부회장의 양형 수준을 낮추는 방패막이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10일 삼성그룹에 따르면 삼성그룹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김지형 전 대법관은 9일 오전 11시 개최된 기자회견에서 준법감시위원 명단을 공개하고 위원회 운영 기본원칙과 향후 일정 등을 발표하는 등 준법감시위원회 출범이 속도를 내고 있다. 위원들은 대부분 외부 인사를 중심으로 구성됐으며 회사 외부에 독립적 기구로 설치된다.
'준법감시제도'는 삼성이 내놓은 사후 대책의 일종이다. 준법감시위는 ▲ 공정거래 ▲ 뇌물수수·부정청탁 뿐 아니라 ▲노조와 경영권 승계, 총수 일가 비리까지 '성역없이' 들여다보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고경영진의 법·위반 행위를 직접 신고받고 조사하고 시정과 제재를 요구하는 권한을 갖는다고 밝혔다.
김 전 대법관은 위원장 자리를 맡기 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직접 만나 어떤 이야기를 들었느냐는 취재진들의 공통된 질문에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받았다"고 수차례 강조하며 "삼성의 최고경영진도 준법감시 대상"이라고 밝혔다.
일단 준법감시위는 위원 면면을 통해 삼성의 윤리경영 감시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위원 7명 가운데 김 위원장을 포함해 6명이 외부인으로, 재벌 비판적 인사들이 포진했다.
김 위원장은 대법관 시절 김영란 대법관 등과 함께 여러 판결에서 진보 성향의 의견을 낸 것으로 유명하다.
대법관에서 물러난 뒤에도 구의역 지하철 사고 진상규명위원장, 삼성전자 반도체질환 조정위원회 위원장,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위원장,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았다.
시민사회에서는 권태선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와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이 선정됐다.
한겨레신문 편집인 출신인 권태선 위원은 언론계 은퇴 후 시민단체로 옮겨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도 맡으면서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재벌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운동을 이끌었다.
고계현 위원은 1995년부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참여해 경실련 사무총장을 최장수 역임한 인사다. 삼성 등 재벌의 지배구조와 경영권 승계, 노사 문제에 비판적 의견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개혁을 주창한 바 있다.
학계 인사로 선정된 심인숙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김우진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기업의 준법경영과 지배구조에 비판적 개선 의견을 밝혀 온 학자들로 평가된다.
변호사인 심인숙 교수는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금융감독원과 공정거래위원회 등에서 설치한 여러 위원회 위원, 금융위원회 비상임위원 등의 경력을 가진 전문가이기도 하다.
김우진 교수는 재벌의 과도한 '사적 편익' 추구의 문제점을 꾸준히 지적해왔다. 이밖에 대검차장을 지낸 봉욱 위원은 대기업 부패범죄를 수사한 경험이 많다.
김 위원장은 위원 선정과 관련 "준법·윤리경영을 향한 유의미한 변화와 진전을 위해 합리적인 비판과 균형 잡힌 견해를 견지해 오신 분들로 채우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공식 출범을 알린 삼성그룹 준법감시위원회는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으로부터 '자율성·독립성'에 대해 '약속'을 받았다고 했지만, 그 약속을 현실화 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위원장인 김지형 전 대법관이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수차례 언급한 바 대로 노동계에서는 출범한 준법감시위가 그룹 총수인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양형 감경을 위한 일회성 '면피'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 중이다.
특히 준법감시위가 독립 기구로 설치되지만, 감시 대상이 되는 삼성 주요 7개 계열사들이 분담해서 운영에 필요한 지원을 한다는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지원 범위는 '최소한'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지만 어쨌든 삼성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점에서 독립적인 감시 역할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준법감시위의 권한이 강제성이 없고, 계열사에서 주는 내부 자료를 가지고 감시를 해야하니 제대로된 견제가 가능하겠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아울러 삼성이 이를 수용해서 실행하는 데 있어서 법적 구속력은 없는 까닭에 재계 일각에선 "의사결정의 최종 권한은 결국 삼성이 쥐고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를 제기하고 있다.
김지형 위원장도 "삼성의 최고경영진에게 의지가 있냐는 부분에 대해서는 완전한 확증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준법감시위원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존중해 글로벌 수준의 준법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도록 필요한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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