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역사 속에는 신비로운 인물이 종종 등장한다. 중국 오나라에 살았다는 왕족 계찰(季札)이 그러하다. 19대 왕 수몽에게 네 명의 아들이 있었다. 죽기 전에 가장 재능 있고 현명한 넷째 아들 계찰을 후계자로 세우고 싶어 했다. 그러나 계찰은 이것이 적절하지 않다며 극구 사양하여 하는 수 없이 맏아들 제번을 왕으로 삼았다. 다행히도 왕의 아들들이 모두 선량했던 것 같다. 제번은 왕이 된 뒤에 다음 자기 동생을 다음 계승자로 지명하였다. 본래는 아들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지만, 선왕의 뜻대로 넷째 동생에게 왕위가 돌아가게 하기 위해 왕권을 동생에게 물려주는 원칙을 만든 것이다. 그 후 둘째 여제가 왕이 되어 돌아가고 셋째 여말이 왕이 된 후 돌아갈 때가 되자 이제야말로 계찰에게 순서가 왔다. 그러나 계찰은 왕이 되는 것을 피하여 잠적해버리는 바람에 신하들은 하는 수 없이 여말의 아들 요를 왕으로 옹립했다.
왕 자리를 사양했다 해서 아름답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요순시대 허유라는 명성 높은 은자는 요 임금이 찾아와서 왕위를 맡아달라고 하자 그 청을 물리치고는 ‘못들을 소리를 들었다’며 귀를 씻었다고 한다. 그런 얘기로 ‘대권 욕심’이 없는 현자들의 덕망을 칭송하려는 것도 아니다. 계찰이 왕권을 사양함으로 해서 여말의 아들이 왕이 된 뒤에 본래 장손인 제번의 아들 광이 ‘본래 왕권은 내게로 와야 한다’며 역심을 품게 되었으니, 지나친 사양심이 장차의 화근을 만들었다는 측면도 있다. 맹목적인 선(善)은 없는 셈이다.
어쨌거나 계찰은 신비로울 정도의 재능을 지닌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사기에 흥미로운 기록이 전해온다. 계찰이 왕의 명을 받들어 인근 나라들을 사신 자격으로 순유하였다. 한번은 노나라에 갔을 때 환영 연회에서 노나라의 음악을 듣게 되었다. 먼저 주남과 소남 지방의 노래를 듣고 말하기를 “백성들이 근면하고 남을 원망하지 않는 소리를 나타냈으니 아름답다”고 평하였다. 노나라 왕이 악사들에게 명하여 다른 노래를 들려주자 계찰은 “음조가 깊어서 근심으로 가득하나 곤궁하지는 않다. 위나라 시조의 덕행이 이 같다 하였으니 아마도 위나라 노래일 것이다”고 하였고, 왕실 노래를 들려주자 “근심 속에서도 두려움이 없으니 아마도 주 왕실이 분열된 뒤의 노래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 그 나라의 정세와 민심 동향을 알아챈 것이다. 외교관들이 굳이 정식 회담에서 주고받는 얘기나 문서를 들여다보고서야 정세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유행하는 노래만 듣고서도 정세와 민심을 파악할 수 있다면 상대국은 무엇 하나 숨길 수가 없게 될 것이다.
노나라 왕은 이웃나라 사신 계찰의 신기한 능력에 감탄하여 곧 다른 나라 노래들을 계속해 들려주면서 의견을 구하였다. 정나라 노래가 연주되자 계찰이 말했다. “정서가 섬세하나 섬세함이 지나쳐 백성이 감당치 못하니 나라가 망할 징조가 있다.” 다음 노래는 떠오르는 신흥강국 제나라의 민요였다. 계찰은 “웅대하여 대국의 기상이 실려 있다. 큰 바다를 상징하는 듯하니, 아마 강태공 나라의 노래일 것이다” 하였다. 강태공이 문왕을 도와 주나라를 세우고 천자로부터 봉국으로 받은 나라가 바로 제나라였다. 연회는 계속되어 계찰이 여러 나라의 음악을 들은 뒤에는 무희들이 나와 여러 가지 춤을 추었다. 어떤 춤을 보고는 “아름다우나 한이 서려있다”라든가 “덕행이 극에 다다랐으니 더 이상 보탤 수 없다”는 등으로 평가하였다.
음악을 통해 그 사회 민심을 읽는다는 것은 동서양의 사서에 흔히 나타나는 장면이다. 공자가 노나라에서 승상이 되자 노나라를 공략할 흑심을 품고 있던 제나라 경공은 일이 글렀다고 낙심하였다. 공자와 같은 현인이 정치를 하고 있으니 빈틈을 찾을 수 없게 된 까닭이다. 경공의 대부 여미가 계책을 내놓았다. “공자를 노나라에서 떠나게 할 묘책이 있습니다.” 대미는 곧 아리따운 미녀 80명을 모아 금은보석과 함께 노나라 왕에게 선물로 보냈다. 그 시절에 백성은 왕이 재산이나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노나라 왕 정공은 호색한 사람이었다. 공자의 눈치를 보면서도 간신 계사의 말을 받아들여 미녀들을 받아들였다. 계사도 그 중 30명을 하사받았다. 왕이 미녀와 음탕한 음악에 빠져 국사를 멀리 하자 공자는 곧 짐을 싸서 노나라를 떠나버렸다. 성인 현자들이 한 사회의 음악을 듣고 그 나라의 기운과 미래를 예견한다는 것은 얼마든지 있는 일이었다.
한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음악은 거친 음조와 불협화를 주조로 하는 음악들이었다. 현란한 춤을 곁들인, 가사의 뜻도 애매모호한 음악들이 방송을 장악했다. 그런가하면 최근의 음악들은 70-80음악의 복고와 더불어 애절한 곡조로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나는 가수다’를 비롯한 많은 서바이벌 프로를 보는 관중들은 눈물 자아내게 감성적인 노래와 창법에 아낌없는 지지의 문자 투표를 보내고 있다. 재주를 자랑하기보다 자신의 진심을 다 보여준다는 자세로 정성을 다하여 열창하는 가수들이 매주 수위를 차지한다. 방송의 일방적인 선곡에 의지하지 않고 시청자 스스로가 점수를 줄 수 있는 시스템 아래서 나타나는 이 현상에는 어떤 민심의 반영일까. 무릇 국민의 지지를 필수로 하는 정치 지도자들이 읽어내야 할 민심의 동향이 여기에도 담겨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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