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경제=김수정 기자] “그때 스물 한 살이었네요. 실감이 나지 않아요. 그때는 이 건물(유니버설 발레단)도 없었어요. 지금 뒤쪽에 있는 (선화예술중고) 학교 연습실에서 발레단을 시작했거든요.”
올해 창단 30주년을 맞이한 유니버설발레단(UBC) 문훈숙(51) 단장은 발레단이 설립된 1984년을 떠올리면서 감회에 젖었다. 그해 한국에는 국가가 설립한 국립발레단(1962년 창단)과 광주시가 설립한 광주시립무용단(1976년 창단) 만 있었다. 유니버셀발레단 창립이 발레계에서 화제가 된 이유다.
남자무용수 층이 얇아 선화학교 인쇄소 직원, 연극배우를 무대에 세우기도 했지만 파격적인 안무와 무대로 주목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수준이 낮았고 의상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지만 그래도 상당한 주목을 받았죠”라면서 “특히 무용수들이 좋은 대학을 포기하고 전업 무용수로 나서는 흐름도 만들었습니다”고 말했다.
당시 수석무용수로 ‘신데렐라’를 공연한 경험도 들려줬다. “12시가 되면 신데렐라가 되돌아가야하잖아요. 도망가는 저의 손을 남자무용수가 잡는 순간, 갑자기 부끄러워져서 탈의실로 얼른 들어가버린 기억도 납니다. 호호호.”
유니버설발레단은 이후 장족의 발전을 거듭했다. 민간 직업발레단으로 가장 오랜 역사를 유지하는 동안 17개국에서 1800여회 공연하며 한국 발레를 세계에 알렸다.
특히 창단 멤버로 프리마 발레리나로 출발해 1995년 단장으로 취임한 문 단장은 이 발레단의 산 역사로 통한다.

- 30년 간 발레단이 굳건히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기본인 것 같다”고 답했다. “화려한 겉치레가 아닌 실속을 다져가면서 기반을 닦을 수 있었죠. 그와 함께 좋은 인연들이 닿았기 때문이에요.”
문 단장이 말하는 첫번째 좋은 인연은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92년 마린스키 발레 예술감독인 올레그 비노그라도프를 초빙하는데 성공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다. 당시 국내 초연한 ‘백조의 호수’로 마린스키 발레의 전통을 국내에 정착시켰다.
1985년부터 한국 발레단 최초의 해외 투어를 시작한 유니버설발레단은 1998년 미국 무대로 진출, ‘백조의 호수’와 창작 발레 ‘심청’을 공연했다.
“굉장한 도전이었죠. 우리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이 부족한 지 파악할 수 있는 자리라는 생각에 사생결단의 마음을 품고 갔죠. 이번에 평이 나쁘면, 다시는 못 온다라는 사명감을 가지고요. 오히려 미국에 있는 한국분들이 걱정을 많이 했어요. 한국 사람의 ‘무 다리’로 어떻게 발레를 하느냐고요.”
그러나 현지 미디어는 호평했다. “LA타임스 루이스 시걸 평론가가 깐깐해서 어떤 팀이든 도마질을 당한다고 들었는데, 공연을 좋게 봤는지 여러번 관람하더라고요. 이후 뉴욕타임스도 세계적인 발레단이 무색할 정도로 군무의 정확성이 좋았다고 평해줘서 감사했어요.”
자신감이 붙은 유니버설발레단은 1999년 유럽에서 공연했고, 2003년에는 마침내 발레의 중심지인 프랑스 파리에 입성했다.
모든 단체는 수장의 성격과 분위기를 자연스레 따라간다. 미국 워싱턴에서 태어나 영국 로열발레학교,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를 거쳐 워싱턴발레단 등지에서 활약한 문 단장은 열린 사고와 마음을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유니버설발레단의 분위기도 자유롭고 따뜻하다.
지난달 28일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펼쳐진 ‘호두까기인형’ 저녁 공연의 커튼콜에서 수석무용수 콘스탄틴 노보셀로프(29)가 애인이자 파트너인 수석무용수 강미선(31)에게 프러포즈를 한 것이 예다. 평소 분위기 그대로다.
문 단장은 그러나 단원들을 지도할 때만큼은 단호하다. “연습할 때 가장 먼저 요구하는 건 기본이에요. 모든 단원들이 함께 추구하는 선과 예술이 있는데, 기본 없이 화려한 기교만 선보이면 그것이 불가능해집니다.”
지난 30년간 발레계에 몸담아오면서 체감하는 가장 큰 변화는, “유학을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물론 다양한 문화를 접하기 위해서 해외 유학을 갈 수 있지만, 이제는 기술적인 부분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배울 수 있어요.”
그럼에도 발레단체들의 환경은 열악하다. “지역에 있는 소규모 발레단이 지자체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하면, 발레 프로그램이 더 활성화되겠죠. 서울뿐 아니라 지방도 발전해야 고르게 수준이 올라갈 수 있어요.”
발레 한류를 위해서는 창작 발레가 라이선스 수출될 수 있도록 작품 수준을 높이고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한국 창작 뮤지컬을 공연하는 일본 도교의 아뮤즈 시어터 같은 장소가 발레에게도 필요합니다.”
- 무대에 다시 서고 싶은 마음은 없나
“이미 버스는 떠나갔다”며 웃었다. “후배들을 지도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해요. 눈 앞에서 좋아지는 게 보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보람 이상이죠.”
앞으로 내실에 좀 더 신경쓰고 싶다.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싶어요. 관객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도 중요하니까요. 무대만 세련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부적인 운영도 세련되게 해야죠. 제가 CEO 출신이 아니라 경영에 대해 잘 몰라요. 전문가들을 자문하고 노하우도 배우고 싶어요.”
문 단장은 그동안 도움을 준 이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힘들 때도 있었지만, 단원들, 직원들의 땀과 열정이 있어서 이 자리에 왔죠. ‘헝그리 정신’이 있었거든요. 도움을 준 해외 발레단들, 발레단을 설립하고 도운 문선명 전 통일교 총재님과 한학자 총재님께도 정말 감사하죠. 30년 동안 변함 없이 지원해준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거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늘 박수를 보내주는 관객들에게 정말 감사해요.”
유니버설발레단은 30주년을 맞아 올해 정기공연 시즌 라인업을 특별하게 꾸몄다. 2월 21~23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30주년 스페셜 갈라 –창단 30주년 특별감사공연’을 펼치는 것을 시작으로 4월 25~27일 LG아트센터에서 ‘나초 두아토 멀티플리시티–몸짓으로 연주하는 바흐 예찬’, 6월 13~17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지젤–한국인이 사랑하는 대표 로맨틱 발레’, 9월 27~2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발레 춘향’, 12월 19일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호두까기인형’를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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