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사과 묘목을 심겠노라
내 개인의 삶이 빈한하여 그런 것인지 몰라도, 요즘 마주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한다. “사업이 잘되시나요?” “어려워요.” “직장 일은 편안하신가요?” “요즘 편한 일이 어디 있어요?” “아드님이 대학 졸업했죠?” “취직이 안돼서 걱정이에요.”
안 되는 사람이 있으면 되는 사람도 있는 법. 어딘가는 사업이 잘 되는 사람, 취업에 성공한 사람, 직장에서 빛을 보는 사람들이 있을 법도 하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어렵다’ ‘힘들다’는 말을 달고 사는 것 같다. 좀 돌아간다 싶은 사람들도 조심스럽긴 매한가지일 것이다. 주변에 힘들다는 사람이 많으니 혼자 잘 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가 미안할 뿐 아니라 주변의 어려움이 언제든 자신에게도 여파를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은 정신적 고통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곧 사회 전반의 음울로 이어진다. 밤이 되어도 유흥가의 음악소리는 들리지 않고 주말이 되어도 관광지의 인파는 예전 같지 않다. ‘흥청망청’은 사치와 낭비라는 부정적 성격을 지니는 것이지만, 지나치게 가라앉은 차분함은 사회적 우울의 징조다.
사람의 일만 그런 건 아니다. 인류가 의존해 살고 있는 행성, 지구 전체가 예전에 없던 불길한 자연현상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수년전 동남아 해안을 휩쓴 대형 쓰나미와 미국 남부의 한 도시를 삼켜버린 대폭우를 비롯하여, 지구촌 곳곳에서 인간이 견디기 힘든 대재난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겨울도 다 지난 3월에 유럽 대륙이 폭설로 뒤덮이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큰 화산 폭발로 유럽 대도시의 공항들이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히말라야 줄기에서 연달아 일어나고 있는, 남미대륙에서 일어나는, 대지진으로 많은 인명피해도 일어났다.
재난 지역의 사람들이 겪는 인명의 상실과 재산피해 등은 뭐라 위로할 수 없는 비극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근래 일어나고 있는 재난현상들이 단지 국지적 사건이 아니라 지구라는 행성이 겪는 대변화와 연결된 현상이라는 점이다. 몇 번의 화산 폭발이나 지진 등으로 지각변동이 감지되고 있으며, 일부 과학자들의 분석에 의하면 지구 자전축의 기울기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지구별에 일어날 대 지각변동을 예측한 여러 예언서들에도 관심을 가질 만하다. 물론 종말론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지구의 종말은 곧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인류의 종말과 무관치 않다. 종말에 대한 두려움이나 비참을 경험하거나 분석할 인간 자체가 멸절되는 마당에 그 뒤의 일을 따지는 것은 과연 의미있는 학문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떠도는 종말론들에 의하면 지금 지구촌에 잇달아 일어나고 있는 자연재앙 현상들은 이 예언서나 도참설 등에서 예고된 각종 종말론적 현상들과 이미 유사하다. 아직 어느 예언서들이 예언한 ‘외계인의 출현’이나 ‘대형 전쟁’만 일어나지 않고 있을 뿐이다.
17세기 철학자 바루흐 스피노자(1632-1677)는 아직 중년에 불과한 44세에 폐병으로 죽었다. 시대가 인정하는 철학적 위업에도 불구하고 교사나 교수 같은 안정된 직장을 거절하고 손수 노동을 하는 것으로 생업을 삼았던 실천지성의 철학자였다. 그는 안경에 쓰이는 렌즈 깎는 일을 했다. 아마도 렌즈를 깎을 때 생기는 유리가루가 폐에 스며들어 진폐증으로 죽었을 것이라고 후대인들은 추정하고 있다. 스피노자가 이미 쇠약해진 때에 뜰에 사과나무 묘목을 심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물었다. “사과나무는 심은 지 몇 년이 지나야 열매가 맺힙니다. 지금 심어서 언제 먹겠다고 사과나무를 심습니까?” 그러자 스피노자는 말했다. “내가 먹을 수 있는 것만 심으란 법 있나요? 내가 따먹지 못하면 내 자식이 먹을 것이고, 내 자식이 거두지 못한다면 내 손자가 거둘 수 있지 않겠는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 사과 묘목을 심을 것입니다.”
불안정한 지구별의 변화가 과연 종말을 의미하는 것인지, 일정한 변화 뒤에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많은 예언자들이 ‘종말’이라는 의미로 대재앙을 예측했지만, 80년대까지 생존했던 우리나라의 대 선각자 탄허 스님은 이러한 재앙을 예측하면서도 그것이 한반도와 우리 민족에게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예언했다. ‘지각변동의 여파로 강대국에서는 지하에 감춰두고 있는 막대한 양의 핵폭탄들이 자체 폭발하여 막대한 재난을 자초하게 된다. 대신 한반도에서는 서해안이 융기하고 만주 요동지역까지 한반도에 귀속되며, 한반도는 후천세계의 중심으로 새롭게 출발할 것이다.’와 같은 내용들이 그의 저서와 강론을 통해 설파되었다.
우리에게, 또는 지구촌에 앞으로 어떤 일이 더 벌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무의미한 종말론으로 포기를 준비하기 보다는, 역사가 내일도 이어질 것이란 희망으로, 우리는 오늘도 묵묵히 사과나무를 심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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